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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욜에게서 에치고의 용을 보다

피치 위의 예의, 센고쿠 시대의 의리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고 인품이 좋은 선수라고 해도, 라이벌 팀의 팬들의 마음까지 잡아두기란 어려운 일이다. F1의 전설 아일톤 세나는 고국 브라질에서 웬만한 축구 스타들 이상의 인기를 누렸으나, 세나의 라이벌인 알랭 프로스트의 팬들은 세나를 극도로 싫어했다. NBA의 코비 브라이언트는 유타 재즈에게 플레이오프에서 만날 때마다 악몽을 선사하며, 재즈 팬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 FC 바르셀로나의 전설이 된 요한 크루이프를 레알 마드리드 팬들이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다.


그런 면에서 보면, 카를레스 푸욜은 특이한 존재다. 1999년 1군 데뷔부터 2014년에 은퇴할 때까지 줄곧 FC 바르셀로나에서 뛰었고, FC 바르셀로나의 전성기를 이끈 수비수다. 바르셀로나의 철천지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에게서 피눈물을 뽑아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또한, 스페인 대표팀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면서 스페인 대표팀의 황금기를 열어젖힌 주역이기도 하다. A매치에서 푸욜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한 공격수들의 한숨을 참 많이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욜은 안티 팬이 없다. 심지어 리오넬 메시에게 엄청난 욕설과 야유를 퍼부어왔던 레알 마드리드 팬들조차 푸욜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 정도로 응원팀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푸욜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무장이 있었다. '에치고의 용'이라는 별칭으로 센고쿠 시대를 풍미했던 우에스기 겐신이다. 푸욜과 겐신은 묘하게 닮아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적에 대한 예의다.


푸욜은 비신사적 플레이를 보면 같은 팀 선수라도 가차없이 지적했다. 일부러 시간을 끌려는 헤라르드 피케를 직접 제지하는가 하면,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과도한 골 세레모니를 중지시키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골을 넣었을 때에는 굳이 세레모니를 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거나, 요란한 세레모니는 지양한다. 바르셀로나의 티아고 알칸타라, 다니 알베스가 이를 무시하고 5-0으로 이기는 상황에서 과도한 세레모니를 하자, 푸욜이 즉각 중지시켰다.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싸움으로 분위기를 흐리는 일도 없었다. 엘 클라시코 도중에 세르히오 라모스가 시비를 걸어도, 경기 도중 상대의 트래쉬 토크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사실 푸욜이 경기 도중 상대 선수와의 충돌이 많지 않은 편인데, 거친 몸싸움을 마다할 지언정 더티하게 막아서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공을 향해 몸을 던지는 수비수가 싸울 일이 별로 없을 터.


겐신 또한 그랬다. 겐신의 평생 적수였던 다케다 신겐에게도 이를 증명하는 것이 포위로 인하여 소금을 얻지 못하게 된 신겐에게 이것을 비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겐신이 소금을 보냈다는 일화가 있다. 이 고사에서, 적의 약점을 이용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곤경에서 구해준다는 뜻의 '적에게 소금을 보내다(敵に鹽を送る)'라는 관용구가 탄생했다. 숙적이라도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다. 



오죽하면, 겐신과 간토 지역을 두고 치열하게 싸웠던 호조 우지야스도 겐신의 신의만큼은 높게 샀다.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다이묘는 겐신밖에 없다고 여겼다. 다케다 신겐조차 후계자인 다케다 카츠요리에게 '자신이 죽은 다음에 곤경에 빠지면 겐신에게 의탁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전장에서는 필사의 라이벌이지만, 선을 지킬 줄 아는 겐신만큼 믿을 이도 없었다는 의미다. 권모술수와 뒤통수 치기가 난무하는 센고쿠 시대에서 겐신의 의리는 빛이 날 수밖에. 


경기, 혹은 전쟁의 우선 목적은 승리라지만, 그 와중에도 최소한의 룰은 있다. 그 룰을 어기면 경기를 제대로 치를 수 없고, 전쟁은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 된다.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는 암묵적인 약속을 이행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 세계 유지를 위한 도리의 하한선이기 때문이다. 축구장에서 암묵적 약속을 깨면 경기는 걷잡을 수 없는 난장판이 된다. 전쟁터에서 양국 간의 암묵적 규칙이 깨지면, 그 전쟁은 멸망전이 되고 만다.


우리는 이기는 것에만 신경을 집중한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푸욜이 강팀에서 뛰었기 때문에 심적 여유가 있었을 수도 있고, 겐신은 간토 지역의 강자였으니까 다른 센고쿠 다이묘들처럼 아등바등거릴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을 터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이들이 보여준 예의, 혹은 의리는 분명히 생각해 볼 만한 가치다. 더구나 코로나의 창궐로 전세계 국가들이 범지구적 협력을 잊고 사는 지금, 강호의 도리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승부를 가려야 하더하도,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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