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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번째 4월 19일

4.19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까지

2020년 4월 19일은 4.19 혁명 60주년이다. 동아시아 국가 역사상 최초로 시민들의 힘으로 권력을 바꾼 시민 혁명이자,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바꾼 의미 있는 날이다. 이승만-이기붕 독재 정권을 종식한 것을 넘어, 정부의 간판이 언제든지 시민의 힘으로 바뀐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4.19의 힘은 훗날 1980년 5월의 광주, 1987년 6월의 전국적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는데, 아직 동아시아 국가에서 시민들의 목소리가 정치 권력을 바꾼 사례는 한국밖에 없다.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다


고인 물이 썩듯이, 정치 집단이나 경제 집단은 거버넌스가 같은 형태로 유지되면 부패한다. 아무리 선의지로 세워진 조직이라 해도, 미션과 실무의 변화 없이는 부패를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친일 세력을 그대로 비호한 상태로 세워진 이승만 정권은 처음부터 도덕적 정당성에 문제가 많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민심을 잡을 목적으로, 북한을 겨냥한 '멸공' 캐치프레이즈만 유지했으니 정치의 집행이 제대로 유지될 리 없다. 처음부터 도덕적 해이 상태에 놓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전쟁 위기를 겨우 넘긴 이승만 정권의 도덕적 해이는 극에 달하여, 정치 주먹들까지 동원하여 정권 유지에 열을 올렸다. 민주주의 정부에서 정치 인사를 폭행하거나, 이승만의 대통령 연임을 위협하는 이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죽게 만들거나, 집회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의 전후 상황을 효과적으로 수습하기 위한 대책 실행은 뒷전이었고, 전쟁통을 넘긴 정권을 어떻게든 유지하려는 발악만 남았다. 정부는 엄연히 국민의 대리인이었지만, 대리인 역할을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4.19 혁명은 이러한 이승만 정권의 도덕적 해이를 잠재운 동시에, 민주주의 정부에서 시민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각인시켰다. 정책에 대한 옴부즈맨 역할을 넘어, 선거로 성립된 정부의 부패에 대한 날선 벌이었다. 동시에 정부가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정무와 정책에서 도덕와 혁신을 모두 챙겨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집단 행동으로 전달했다.


대리인이 자신의 이득만 취하려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엄중한 심판이 가해지면, 도덕적 해이를 1차적으로 방지 가능하다. 시민의 집단 행동만으로도, 민주 사회에서 언제든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1차적인 차단을 할 수 있다. 1차 저지가 있어야, 도덕적 해이를 위한 상세한 해결 방안을 구상 및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4.19 혁명은 그 행동의 값어치를 증명해냈다.


개인주의의 함정을 피하다


19세기 이후 근대 사상의 기반에는 개인주의가 있다. 외부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신분에 의한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며 나타난 개인주의는 개인의 사유 재산 축적을 옹호하는 자본주의의 사상 기반이기도 하다. 개개인의 목소리, 선거권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역시 개인주의와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개인의 인권과 행복 추구권이 걸려 있기에.


그러나 개인주의가 과하면 함정에 빠진다. 과격한 개인주의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모든 정책을 간섭으로 여기는 데에 있다. 미국 건국의 토대가 되었던 토마스 페인의 <상식>을 보면, 정부를 필요악으로 규정한다. 개인의 자유를 가로막는 악한 존재이면서도, 사회가 돌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존재해야 하는 집단이 정부라는 논리다.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조치마저도 사생활 간섭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정부의 힘이 필요한 상황을 통째로 부정한다.



코로나, 메르스와 같은 국제적인 질병을 관리해야 하거나, 중동처럼 전쟁의 위험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개개인의 판단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정부가 국민의 안전 및 국익 보호를 위해 일선에서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과도한 개인주의는 이마저도 자유를 침해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품게 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 진압에 그토록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정부의 방역 지침을 침해라고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개인주의의 함정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공동 행동이다. 


공동의 행동은 결코 강제적이지 않다. 필요에 의해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벌이는 행동이다. 4.19 혁명은 그러한 자발적 공동 행동의 필요성을 남겼다. 개인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사회 전체의 선을 추구하는 공동 행동이 개인주의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동 행동은 4.19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유산이며, 지금의 사회적 거리두기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공동 행동은 경제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프라인 소비의 감소, 온라인 소비의 확대,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의 소비 사회 활동의 활성화에 이르기까지 소비자 개개인의 생활 패턴도 바뀐다. 수요와 공급 균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외생 변수다. 

 

민주화,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


지금의 사회적 거리두기도 민주화를 위한 공동 행동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 가능하다.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다같이 실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것도 정부가 무력을 사용하면서 통제하는 것이 아닌, 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공동 행동이다. 모범 사례로까지 꼽힐 정도의 현재 한국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60년전에 생긴 또 하나의 DNA다.


1960년 4월 19일은 정권을 바꾼 것만으로 기억하기에는 가치가 너무 크다.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주체를 바꿨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를 지키기 위해 구성원들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제시했다. 1970년대의 유신 반대 투쟁, 1980년의 광주 민주화 운동, 2017년의 촛불 시위에서 지금 코로나 진압을 위한 공동 행동에 이르기까지, 한국 국민들의 집단 행동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나아가 집단 행동은 행동경제학의 큰 변수로 작용할 뿐더러 비즈니스의 생태계도 바꾸는 요소가 됐다.


4월 19일, 한국의 사회와 경제를 바꾼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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