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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과 예술의 미니멀리즘

단순함 속에 담긴, 복잡성과 최적화

미니멀리즘이라는 말을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며, 최소한의 수단으로 감정과 느낌을 복잡하지 않게 담아낸다. 1960~70년대부터 퍼지기 시작했던 예술 사조를 일컬었지만, 이제는 생활 전반까지 미니멀리즘이 퍼지고 있다. 0과 1의 디지털 세계도 구성 요소만 놓고 보면 참 단순하고, 현대인의 일상 생활도 직장 생활과 직장 외 생활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겠다.


미니멀리즘이 이토록 간결함을 추구하는 까닭은 본질을 직접 드러내기 위함이다.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주변의 군더더기를 최대한 치운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미니멀리즘 예술은 캔버스 위에 뭔가를 그려야 한다는 관념을 탈피하여, 사람과 사물 주변의 공간까지도 캔버스처럼 활용한다. 평면 위의 시각적 표현에 집중했던 추상표현주의와 분명히 거리를 두는 작업이기도 하다. 추상표현주의는 내면의 감정 표현에 충실한 반면에 자연의 사실적 재현을 거부하였는데, 이는 인물을 그리면 관객이 회화를 드라마처럼 바라보게 되고, 풍경을 그리면 관객이 그림을 건축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여기에 반발하여 평면성을 벗어난 그림을 내놓았다. 이들은 전시 공간 안에 흰 상자를 무심하게 놓아두거나, 벽에 별의별 사물들을 걸어두는 식의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는 입체적 특성의 사물, 어떤 예술적 장르 고유의 특징을 살리기 위한 압축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음악은 소리와 시간의 흐름이라는 특성에 집중하여 예술성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인데, 이를 지키기 위해 의도적인 시각화를 최소화시켰다. 회화를 드라마로 보면 어떻고, 풍경으로 보면 어떤가? 단순하게 바라보면서, 내 눈 앞에 펼쳐진 작품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느끼면 그만이다.



미니멀리즘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세계는 비단 예술만이 아니다. 요즘에는 야구에서도 점점 미니멀리즘이 보이고 있다. 승부의 기본 본질인 승리에 가까이 가기 위한 지표들로 야구의 공식이 정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 선수에 대한 평가, 야구 팀에 대한 평가, 야구 경기에 대한 분석 등을 위한 지표를 점점 단순화시키고 압축해 나가고 있다. 당장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야구가 가장 확실한 승리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면 되겠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데이터가 모였다. 투수가 매번 공을 던졌을 때의 결과, 경기장의 지리적 위치 및 날씨의 영향, 투수와 포수의 조합, 타자의 순서 배치와 승률의 상관관계 등 액셀 파일을 빼곡히 채울 숫자들이 기반이 된다. 빅 데이터에 가까운 원재료를 바탕으로 선수나 팀의 퍼포먼스의 실상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한 것인데, 이를 우리는 세이버메트릭스라고 부른다. 그 세이버메트릭스의 이론을 실제 경기에서 구현하는 야구를 머니볼 (Money Ball) 이라고 하는데, 영화 <머니볼>의 실제 주인공인 빌리 빈이 주역 중 한 명이다.


압축의 과정은 전혀 단순하지 않지만, 그 결과는 간결하다. 놀라우리만큼 주변과의 조화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도 준다. 나는 이것을 최적화라고 부르는데, 머니볼은 이러한 야구 데이터의 최적화를 대중화시켰다. 복잡성의 세계를 보기 좋게 최적화시킨 셈이다.  



사실 미니멀리즘 예술도 겉으로는 참 단순해 보이지만, 그 실상은 전혀 단순하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공간을 살리기 위하 시각의 편집, 사물의 위치와 빛의 상관관계, 사물과 그 주변의 색깔에 따른 느낌의 차이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한 끝에 탄생했으니, 과정은 꽤나 복잡하다. 사물과 주변 사이의 빈 공간마저도 여러 차례의 계산과 직감을 거쳐서 얻어낸 결과이니, 단순하다고 말하기도 다소 민망하다. 미니멀리즘이라고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투입되는 자원은 맥시멈에 가깝다.


단순함을 보여주기 위한 최적화에 방점을 찍기 위해서는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기업의 인적 자원 관리와 성과 관리가 최적화되려면 여러 가지 시행 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는 것과 매한가지다. 최적화는 단순히 직원의 적성을 맞추고, 그에 따른 성과의 파이 크기만 늘리는 것이 아니다. 성과가 어떻게 보상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업무 흐름을 어떻게 바로잡는지까지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최적화는 그러한 일련의 복잡하고 지저분한 실험의 결과다. 예로부터 과학자의 실험장은 지저분하지 않던가. 


예술이든, 스포츠 경기든, 기업이든, 미니멀리즘의 본질은 최적화다. 최적화 속에는 간결함을 찾기까지의 복잡성이 담겨 있다. 시각과 육감을 즐겁게 만드는 최적화된 미니멀리즘에 이르려면 숙련과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미니멀리즘은 어떤 경지를 위해 도달해야 하는 인생 숙성의 과정을 하나의 예술품으로 보여주는 비유법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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