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비다이아 Oct 03. 2024

사랑과 상실의 끝에서 9 - 멀어지는 공감

멀어지는 공감

미정은 이혼 후 몇 달이 지나도록 그동안 자신이 의지해왔던 사람들로부터 한 통의 전화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생활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혼 당시, 친한 엄마 친구들은 그녀의 결정에 열렬히 공감하며 곁에서 응원해줬다. 특히 그들이 시댁 문제나 석우와의 끝없는 갈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미정은 친구들의 말에 힘을 얻고 자신이 옳은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너 정말 참느라 고생 많았어. 나라도 이혼했을 거야.”
“그런 남편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네가 맞아, 이혼해. 넌 더 나은 삶을 살 자격이 있어.”


미정은 친구들의 말에 힘을 얻었다. 그들은 미정을 이해하고, 그녀의 아픔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며 공감해주었다. 그녀는 이혼이 자신에게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이혼을 결정할 때 그들은 미정을 향해 힘껏 지지의 손길을 내밀었다. 친구들은 그녀에게 확신을 주었고, 미정도 그 확신에 기대어 자신을 옳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혼 후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차가웠다. 서류에 도장을 찍고 시간이 흐르자, 친구들이 하나둘씩 미정의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자주 연락하고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조차 이제는 그녀를 멀리하는 것 같았다. 전화도 점점 줄어들었고,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그들의 대화는 겉도는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미정은 처음에는 그저 바빠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들이 그녀를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왜 아무도 나한테 연락을 안 하지?.....


그녀는 점점 외로워졌다. 이혼 당시에는 모두가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들이 그녀를 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혼자 아이를 데리고 있을 때, 친구들은 가족끼리 함께 있는 모습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다정한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한층 더 쓰라리게 만들었다.



어느 날, 미정은 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는 동네 친구들을 우연히 마주쳤다. 예전 같으면 그녀도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겠지만, 이제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들 쪽으로 다가갔지만, 친구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예전처럼 반갑게 인사하는 대신, 그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대화를 끝내고 자리를 떠났다.

미정은 그날 밤 혼자서 생각에 잠겼다.



"왜 그들이 나를 멀리하는 걸까?"

그러던 어느 날, 미정은 우연히 남편과 함께 있던 한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요즘 남편이랑 자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 중이야. 너도 알잖아, 가정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 순간 미정은 깨달았다. 친구들이 자신을 멀리한 이유는 그녀가 이혼한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정과 거리를 두며 자신들의 가정을 지키고, 남편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혼 전에는 미정의 아픔을 이해한다며 격려하던 그들이, 이혼 후에는 그녀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 그들의 눈에 가정을 위협하는 존재처럼 보이는 듯했다.


"내가 위험해졌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남편들을 빼앗아갈까 봐?"


그 생각은 미정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친구들이 진심으로 자신을 공감하고 이해해주었다고 믿었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의 가정과 남편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미정을 지지했던 것은 그녀의 고통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자신들의 가정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지도 모른다. 미정은 그들의 관심이 진정한 연대가 아니라, 일시적인 위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친구들이 떠난 자리에는 깊은 상실감만이 남았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이혼이 그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꼈다. 더 이상 미정은 그들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없었고, 오히려 그들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느껴졌다.


미정은 이제 이혼 후의 삶이 단지 남편과의 관계 종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이 의지하던 사회적 관계의 변화, 그리고 사람들이 그녀를 보는 시선의 변화를 동반한 것이었다. 예전에는 함께 웃고 공감해주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녀를 피하고 멀리하기 시작했다.



미정은 차가운 현실 속에서 새로운 결심을 했다. 

이제 더 이상 남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로. 그녀는 비록 혼자가 되었지만, 그 사실이 자신을 약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미정은 그날 이후로 자신을 둘러싼 벽을 하나하나 허물며, 스스로를 다시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과 상실의 끝에서 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