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미정은 이혼 후 처음으로 맞이한 새벽에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혼 서류에 사인한 그날 이후, 그녀의 삶은 마치 멈춘 것 같았다. 남편 석우와의 끝없는 싸움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홀가분했지만, 동시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감이 그녀를 덮쳤다
.
아이들은 이제 주말마다 아빠 집에 갔다. 그들이 떠난 조용한 집 안은 낯설고, 어쩐지 쓸쓸했다.
전업주부로 오랫동안 살아온 미정은 이혼 후 처음으로 자신의 생계와 삶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감과 마주하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는 어릴 적부터 꿈꾸던 가정이 이렇게 무너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결혼 당시에는 사랑이 가득했고, 서로가 함께라면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시댁 문제와 끝없는 갈등, 그리고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쌓여간 오해들이 결국 결혼을 파국으로 몰고 갔다.
미정은 자신이 옳았다고 믿고 있었지만, 이제 혼자가 된 현실 앞에서는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었다.
"이제 정말 혼자야."
전업주부였던 미정은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석우가 보내주는 양육비로 생활을 유지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제 일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오랜 기간 가정주부로만 살아온 그녀에게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막막한 일이었다. 경력도, 특별한 기술도 없었기 때문이다.
미정은 인터넷으로 구인 공고를 뒤지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나이를 먹었고, 사회에서 다시 자리를 찾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한 경력 개발이나 자기 계발을 미리 해두지 않았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
아이들을 돌보며 가정주부로서 살았던 그 시간이 이제는 그녀에게 큰 장애물이 될 줄은 몰랐다.
결국 미정은 작은 카페에서 파트타임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끄러움이 많았다. 자신보다 어린 동료들과 일하며, 사회에 다시 발을 디디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그 일조차도 감사한 상황이었다.
돈을 벌고, 다시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미정은 조금씩 자신감을 찾아갔다.
아이들과의 관계는 이혼 후 더욱 중요해졌다. 미정은 아이들이 주말마다 아빠에게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쓰였다. 자신이 결혼 생활을 지켜내지 못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아이들이 자신을 원망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아이들은 가끔씩 미정에게 "왜 아빠랑 다시 같이 살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때마다 미정은 그저 미소 지으며 "엄마와 아빠는 이제 다른 길을 가기로 했단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 말을 할 때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고통이 피어올랐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그녀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고,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 애썼다.
"엄마는 언제나 너희 곁에 있을 거야."
아이들은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미정은 온전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아빠의 새로운 가족에 적응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은지라는 여자가 아이들과 친해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미정은 마음 한구석에서 질투심과 상실감이 뒤섞인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감정을 아이들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아이들이 행복하면 된 거야."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면서도, 미정은 아이들이 아빠의 새로운 가정에서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정은 조금씩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갔다. 카페에서 일하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삶의 원동력이 되었고, 일을 하면서 자신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자존감을 찾아주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아르바이트였지만, 조금씩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카페 운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내 삶을 찾아가야지."
미정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했다. 비록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졌지만, 그녀는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 했다.
과거의 미정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고 느꼈지만, 이제는 자신을 위한 삶을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었다.
어느 날, 미정은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수현과 민재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웃었고, 미정은 그들의 밝은 모습을 보며 작은 위안을 느꼈다. 그 순간, 그녀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혼이 그들에게 상처를 남겼을지언정, 그들은 그 속에서 나름대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미정은 그렇게 자신을 위로했다. 과거의 실수와 후회를 딛고, 이제는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경제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위해. 미정은 비록 결혼 생활은 실패했지만, 그 실패가 자신의 인생의 끝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녀는 앞으로의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위해,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힘을 키워가고 있었다. 홀로서기를 시작한 미정은 이제 새로운 삶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