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만에 이직하게 된 이유
6개월 만에 이직을 하게 됐다. 좋은 동료와 서비스, 괜찮았던 보상, 훌륭한 대표를 가진 회사라 생각하지만 나는 빠르게 떠날 수밖에 없었다. 회사 생활도 연애와 비슷하다고 했던가. 다니면 다닐수록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를 더 알아갈 수 있었다. 위에서 말한 좋은 조건을 가진 회사였지만(남들이 보면 좋은 회사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 스스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어려웠다.(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은 입사한 지 한 달 때 가졌고, 리더에게 퇴사를 말하니 회사는 팀을 바꿔주면서 내가 잘 맞는 팀과 역할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 배려를 받으면서도 결국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건 크게 2가지 이유다.
1. 정말 프로덕트 오너가 맞아?
첫 번째는 직무적인 관점에서 맞지 않았다. 나는 솔루션 엔지니어를 거쳐 프로덕트 매니저/프로덕트 오너로 일을 하고 있다. 국내는 현재 기획자/PO(프로덕트 오너)/PM(프로덕트 매니저) 직무에 대한 역할 정의와 차이에 대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단계다. 최근에는 많은 회사들이 PO를 PM의 상위 호환으로 바라보고 있다.(해당 직무가 들어온 실리콘밸리와는 다르게 K- 로 해석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6개월 동안 두 팀에서 했던 역할이 프로덕트 오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회사에서 프로덕트 오너의 역할은 실행이 업무의 중심이었으며, 흔히 프로덕트 오너라고 말하는 역할은 PO리드가 맡았다. 즉, 제품과 제품팀에 대한 책임과 리더십은 PO리드에게 있었다. 나의 역할은 어느 정도 정해진 목표 아래, 지금 주어진 리소스 내에서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을 찾고 실행하는 것이었다. (물론 팀마다 바텀업 - 탑 다운의 조화 정도는 차이가 있었다.)
이는 필요 역량이 데이터 추출, 분석 및 기획서 작성이 된다. 데이터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프로덕트 오너가 '꼭 해야 할 일'보다 '하면 좋을 일'을 주로 하게 되는 것이 문제라 생각한다. 많은 프로덕트 오너 분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힌트를 찾기 위해 쿼리를 짜는 일이었다. 제품의 전략과 방향, 제품팀의 속도와 문화에 대한 고민의 무게보다 기능 최적화에 무게가 더 실린 것이다.
그래서 핑계를 대자면 나는 내 제품에 온전히 오너십을 갖지 못했다. 오너십을 갖지 못하니 몰입이 어려웠다. 적당히 하게 되고, 워라밸을 찾게 됐다. 그러면서 투잡 같은 다른 생산적인 일을 고민하게 됐다. 이런 반복되는 생각의 흐름은 나를 그저 그런 회사원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물론 내 연차를 생각하면 실행부터 착실히 배워서 전략으로 점차 넓혀갈 수 있다. 허나 이전 직장에서 전략까지 고민하던 프로덕트 매니저였다가, 더 큰 조직에서 실행만 하는 하나의 부품이 되어보니 나와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2. 공감하기 힘든 목표
내가 몸 담았던 곳은 버티컬 커머스다.(더 과거도 그렇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커머스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GMV(거래액)인데, 프로덕트가 일정 궤도에 오르면 기능 최적화를 고민하게 된다. 기능을 최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선순위를 결정하기 위해 임팩트라는 잣대로 예상 기여 거래액을 증명하라고 한다. 이 문제는 프로덕트가 일정 궤도에 오르면, 성숙기의 제품 단계에서 기능을 최적화하는 부분과 시장이 기대하는 혁신의 부분이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문제다.
많은 회사가 이 문제를 대응하는 방식은 조직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혁신(새로운 비즈니스)을 리드하는 팀, 거래액을 만드는 마케팅/프로모션/제품 팀, 주요 핵심 기능을 최적화하는 팀으로 구성한다.(이 방식이 기능 조직, 목적 조직 관계없이 대부분이 그렇다.)
그럴 때마다 기능을 최적화하는 팀원들은 항상 의문을 갖게 된다.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우리 제품, 고객, 비즈니에 기여하는 게 맞을까? 클릭률을 1% 올리는 게 정말 가치 있는 일일까?
리더는 팀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안정감과 확신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이 문제가 정말로 해결되는 일은 많이 없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목표와 그에 맞는 지표, 우선순위를 잘 선정했다면 이런 의문이 안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물론 이 일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덕트 매니저/오너가 어려운 것이다.)
린스타트업에서,
스타트업에서 중요한 것은 서비스나 기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어떤 유효한 학습을 해 내야 하는가에 있다.
라고 말한다. 나는 초창기 스타트업(PMF를 찾는)보단 시리즈 C, D 수준의 스타트업에 몸을 담았다. 이 단계의 조직은 많은 전문가들이 합류하면서,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능을 최적화하는데 몰입한다.(기능을 최적화하는데 모두 전문가다.) 나도 기능을 최적화하는 이터레이션을 하면 할수록, 고객이 진짜 겪고 있는 문제/비즈니스의 혁신과 동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결과적으로 돌아봤을 때 기능/서비스 출시 자체가 주목적이 되었던 것이다.
모두가 교과서적으로는 알고 있는 개념이지만, 제품과 조직이 복잡해지면서 풀고자 하는 문제가 실제 고객의 문제와 멀어지게 된다. 허무 지표와 핵심지표를 구분하지 못하고, 실패한 기능에 대해선 '학습'이라는 좋은 방패로 위안을 삼는 것이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문제지만, 위 두 문제를 양 팀에서 다 겪다 보니 결국 이직의 결심을 하게 됐다.
마이크로 매니징, 상사(리드)와 불협화음은 이직을 결심하는데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에서 나의 최고의 모습(몰입할 수 있는)을 보여줄 수 있는 동기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내가 더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