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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AJUNG May 05. 2023

예비창업패키지 발표 대면평가 후기

창업일기 #8 - 2019년 7월 13일

7월 9일 화요일,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로 예비창업패키지 발표 대면평가를 다녀왔다. 결과부터 말하면 비참할 정도로 폭망하고 말았다. 멘탈이 산산 조각나서 다시 붙이는데 한참 걸려 이제야 글을 쓴다.


5분 발표 10분 질의응답,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서류합격자 48명 중 최대 30명은 합격이니 경쟁률이 2:1도 남지 않은 셈이었다. ‘정부지원금을 받는다면 월세 내는데 사용할 계획입니다!’같은 개념 없는 말만 하지 않으면 웬만하면 붙겠지 하고 오만하게 생각했다. 그래도 발표 연습은 정말 많이 하고 갔다. 못 잡아도 50번은 넘게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발표 자료를 달달 외웠다. 어려울 것 같진 않았지만 후회 없이 발표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발표 평가장을 나오고 싶었다.


발표 평가장에는 발표 시간보다 두 시간 일찍 도착했다. 혹시 모를 천재지변을 고려해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았다. 경기예비창업패키지 담당자들이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왜 이렇게 일찍 왔냐며 놀라는 눈치였다. 생각보다 그렇게 떨리지도 않았다.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내 앞에 있는 발표자가 불참한 모양이다. 담당자가 내게 15분 먼저 시작해도 괜찮은지 물었다. 기다리면서 살펴보니 생각보다 불참하는 발표자가 많아보였다. 그렇다는 건 경쟁률은 더 줄어든다는 의미였다. 떨리긴 했지만 그런대로 차분한 마음으로 발표장에 들어갔다. 넓은 회의실에 심사위원 다섯 명이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진행자가 PPT 발표 자료를 켜주고 준비되면 시작하라고 했다. 굳이 시간 끌어서 좋을 거 뭐 있나 싶어 심호흡 크게 한 번 하고 바로 발표를 시작했다.


시간은 촉박하고 할 말은 많고 심장은 쿵쾅거리는 바람에 숨이 좀 차긴 했지만 지금껏 연습해온 대로 4분 58초에 발표를 끝냈다. 시간을 보고 속으로 외쳤다. ‘그렇지!’ 그러나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이어 첫 번째 질문이 들어왔다. “발표에 플랫폼에 관한 설명만 있고 콘텐츠에 관한 내용이 없네요?” 준비한 대답을 했다. 그러나 심사위원은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니 그러니까 질문을 잘 이해 못하신 것 같은데, 처음 플랫폼을 런칭할 때 들어갈 콘텐츠는 뭐가 있냐는 말이에요” 이때부터 말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 이상은 준비된 대답이 없었다. 어불성설, 대체 내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심사위원은 다음으로 사전조사에 관해 물었다. “실제로 말씀하신 그런 서비스를 시니어들이 원한다는 데이터가 있나요?” 나는 그동안 온라인으로 찾은 자료와 개별적인 인터뷰 내용을 대답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심사위원은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며 내게 되물었다. “아니요, 그렇게 개인적으로 물어본 거 말고요. 당신이 조사한 객관적인 수치의 데이터가 있냐는 말이에요” 그런 거 없다. ‘설문조사 해야지’ 하고 생각은 했었지만 인터넷에 더 정확한 설문조사 데이터가 있는데 굳이 같은 설문조사를 또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이번에도 헛소리만 지껄였다.


다음으론 우리 팀에 관해 물었다. 우리 팀은 총 세 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와 개발자 동생 두 명. 그러나 개발자 동생 두 명은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사업에 올인하는 건 나 혼자고 두 친구는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 개발을 맡아서 하기로 했다. 심사위원 입장에선 이 부분이 마음이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 심사위원이 내게 물었다. “이 사업 무조건 된다고 확신하셔서 정부사업화자금 지원하신 거 맞죠? 그런데 팀원은 확신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요? 이러면 저희 눈엔 모순처럼 보일 수밖에 없어요. 사업계획서에는 무조건 되는 사업이라고 확신한다면서 퇴사는 하지 않겠다니. 팀원이 전부 붙어서 올인해도 안되는 게 스타트업인데. 안 그래요?” 이 부분에선 완전히 무너졌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엉켜버렸다. 그래서 생각난 대로 대답한 게 이거다. “저희 입장에선 최대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 번에 다 투입되면 너무 위험하니까…” 이렇게 말하다가 웃어버렸다. 위험해서 다 같이 투입하지 않는다니. 이 말이 벌써 망할 걸 예상하고 모두 투입하지 않겠다는 말 아닌가. 완전히 말렸다.


질의응답 시간이 1분 남았다. 발표한 사람들에 따르면 질의응답을 하는데 10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진행자가 아직 1분 남았으니 더 질문하셔도 된다고 했다. 심사위원들의 눈은 다 자기 노트북 모니터를 향해있었다. 한참동안 정적이 흘렀다(진짜 한참이었을까?). 진행자가 내게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하라고 했다. 나는 또 거기서 “이런 상황을 대비해 준비한 말이 있습니다”라며 마지막까지 개소리를 날려줬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발표 평가가 끝났다. 정말이지 비참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더 화나는 건 분할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심사위원들의 질문이 틀린 말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아이템을 구체화 시켰다고 자신했는데, 이렇게도 부족했을 줄 몰랐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칠흑 같은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예비창업패키지에 떨어지면 나는 준비한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고 생각했다. 다시 아이디어 구체화 단계로 돌아온 것이다. 잠깐이나마 사업이 진행된다고 생각했는데 내게 남은 건 실패한 서류와 발표 자료뿐이었다. 나는 앞으로 무얼 해야 하나. 이렇게 또 시간을 통째로 날려버렸나. 자괴감이 치밀었다. 이 나이에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는 건 그 자체로 너무 위험한 일이다. 시간은 그런 거 봐주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니 말이다.


아무튼 너무 걱정하진 마시라! 내가 다시 글을 잡았다는 건 무기력 상태를 극복했다는 의미다. 지금은 저 이후로 진행된 일이 조금 더 있다. 그건 글이 너무 길어지니 다음에 적어야겠다.


이 글은 예비창업패키지 대면 발표평가에 관한 후기가 없어도 너무 없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조금 자세히 적어보았습니다. 예비창업패키지 발표 평가 하러 가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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