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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AJUNG May 05. 2023

2020년 회고

창업일기 #14 - 2021년 1월 3일

2020년 4월 3일에 마지막 글을 올리고, 2021년 1월이 되어서야 새 글을 올린다. 작년은 셀 수 없이 많은 일이 있었고 숨 쉴 틈 없이 격동적인 해였다. 사업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사로도 정말 어려웠다. 살면서 이렇게 빨리 지나간 해가 있었던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성장을 체감하는 내게는 가장 의미 있는 해이기도 했다.


바바정 홈페이지는 도메인만 살려두었을 뿐 사실상 거의 들어오지도 않았다. 글을 쓸 시간이 정말 없었던 것 아니고 단지 하루 업무 우선순위에서 상당히 뒤로 밀려나 있었을 뿐이다. 당장 해결해야 할 눈앞의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잠시 멈춰 글을 쓴다는 게 사치로 느껴졌다. 그렇게 2020년이 지나고 2021년을 시작하며 팀원들에게 공유할 비즈니스 회고록을 작성하는데 문득 나 자신의 회고록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별안간 바바정에 글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한국 나이로 34살이 되었다. 이제 30대 중반이다. 내겐 언제나 먼 단어일 줄 알았으나 ‘불혹’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매일, 매월, 매년 내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얼마나 성장했는가’이다.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했는지, 지난주엔 몰랐으나 이번 주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이나 깨달은 건 없는지,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지가 내게 가장 중요한 지표다. 그리고 2020년 1월의 나와 2021년 1월의 나는 다른 사람인가? 자문해보았을 때, 스스로 만족스러울 만큼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  


서비스 시작

서비스를 만든다. 서비스는 무엇인가? 객실승무원으로 근무하며 비행기에서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인터넷 플랫폼을 개발하여 보이지 않는 불특정 다수에게 하는 서비스.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서비스의 핵심은 세심함이라며, 고객이 묻거나 요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다녔다. 서비스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항공 객실승무원 서비스의 핵심은 세심함이 아니라 시스템에 있다. 수년간의 비용 투자와 시행착오를 통해 구축된 완벽한 안전 & 서비스 시스템. 즉, 서비스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세심하게 잘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객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완벽한 각본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것이다. 나는 그걸 몰랐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게 머리끄덩이를 잡고 끌어온 서비스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서비스에 대해 이 글에서 다 설명할 순 없지만, 현재 서비스는 실제로 구동 중이며 결제하고 참여하는 사람들도 꽤 생겼다. (서비스에 관한 내용은 다른 글을 통해 풀어보겠습니다) 처음에 한두 건의 결제가 일어났을 땐 마냥 신기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구매 전환을 늘릴지, 어떻게 해야 구매부터 리뷰까지 완벽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지 고민하고 있다.



팀 바바그라운드

2019년 5월, 소프트웨어 개발 공부를 같이하던 후배 웅이에게 찾아가 막연히 “우리 같이 창업해보자”라고 한 게 시작이었다. 그 날 대전에서 영등포로 올라온 웅이에게 5시간을 내리 떠들며 우리가 같이 창업해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얼마 후 웅이는 같이 하면 좋은 친구가 한 명 더 있다며 다니고 있던 회사의 개발자 상훈이를 소개해주었다. 그렇다고 팀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팀이란 건 그렇게 간단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는 이 두 친구에게 확고한 의지와 믿음을 보여주고자 매달 대전에 내려가 회의했다. 물론, 중간중간 화상회의도 하며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또한 모든 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코로나가 심해져서 노가다를 뛸 땐, 할 수 없는 일이 없어 용돈벌이 중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리더로서 멋지고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았다. 리더의 진정한 기지는 멋진 모습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처절하게 어려울 때 무너지지 않고 극복하는 멘탈에서 나온다. 두 친구가 임원으로 등록된 건 아니었지만, 법인 자금의 사용처는 투명하게 공개했고, 사소한 의사결정이라도 모두의 의견을 들었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난 2020년 3월, 드디어 팀원 상훈이가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서비스 개발에 합류했다. 하지만 사무실이 없던지라, 퇴사하고 나서도 6개월을 떨어져 각자 집에서 일했다. 그리고 10월, 마침내 서울에 사무실이 생겼고 상훈이가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와 본격적으로 함께 일을 시작했다. 이 무렵 영업 & 콘텐츠 기획을 맡아서 해줄 동진이까지 합류하며 3명의 팀원이 모였다! 하지만 2020년 12월, 그 사무실마저도 빼야 하는 상황이 생겨 현재는 부천에 모여 셋이 합숙하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

2020년 내게 가장 큰 성과를 하나 꼽으라면 팀 바바그라운드가 구성된 것이다. 혼자 진행하던 때와 셋이 진행하는 지금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 부분은 ‘팀원이 꼭 있어야 하는 이유‘로 글을 따로 빼야 할 정도이다. 지금은 팀원 모두가 평일/주말, 낮/밤 가릴 것 없이 미친 듯이 학습하고 일하고 있다.



연애

2020년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여자친구 예은이다. 지난주 월요일이 예은이와 600일이었다. 우린 너무 바빠서 같이 있으면서도 600일인지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 화요일이 돼서야 달력에 600일이 적혀있는 걸 보고 알았다.


남자친구라고 하나있는 놈은 서른넷에 창업한다고 가진 돈도 없고 데이트도 거의 집에서 한다. 평일은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만 하다가 잔다. 그나마 주말에 만나면 사랑스러운 대화가 오가야 하는 연인의 시간에 잠시만 방심하면 일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오죽하면 예은이가 “성장, 발전 발언 금지령”을 내렸을 정도일까.


예은이는 93년생, 올해로 스물아홉이다. 나이에 비해 침착하고 이해심이 많은 여성이다. 보통의 여자라면 만나지 않는 나 같은 남자를 거둬준 고마운 친구다. 사실 예은이는 나의 가장 오랜 팀원이기도 하다. 우리가 만나기 시작한 게 2019년 5월이니 창업 이야기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예은이가 함께 관통한다. 예은이는 내가 창업을 시작하던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온전히 다 지켜보며 항상 곁에 있었다. 일반적인 직장인 또는 돈 많은 누군가를 만났더라면 누렸을 즐거운 경험을 뒤로한 채 정말 허정이라는 사람 하나만 보고 600일이라는 시간을 함께 있어 준 고마운 여자다. 예은이가 곁에 없었다면 지금의 바바그라운드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삶은 일과 예은이, 둘 뿐이다.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않는다. 꼭 성공해서 보답해주겠다는 허황된 꿈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처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함께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렇게 나도 모르게 성장 이야기를 하고 나면 꼭 한 번 혼난다)

무엇보다 나는 요즘 무척 행복하다. 항상 내 곁엔 팀이 있고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새벽 6시까지 일을 하고 아침 9시에 일어나도 스트레스받는 일이 없다.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더, 더 노력해서 더 큰 사람이 되고 더 큰 기업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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