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윤형근 展을 다녀와서
이번에 이사를 하게 될 집 리모델링 공사 현장을 방문 차 광화문을 들렀다가 아주 오랜만에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미') 서울관을 방문했습니다. 덕수궁관 개관 20주년 기념 전시 상품 디렉팅을 위해 일주일에 3~4번은 들렸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19년이 밝았네요. 오랜만에 가는 광화문은 여전히 높고 맑았습니다. 뒤로 보이는 북안 산은 쾌청하게 보이고 곳곳에서 보이는 관광객들과 건축물들은 아주 잘 어울렸어요.
오랜만에 들러본 국현미 서울관에는 윤형근 선생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이런 행운이!). 사실 윤형근 선생님의 작품을 알게 된지는 오래지 않았습니다. 국현미 수장고에 있는 윤형근 선생님의 작품을 우연히 보게 되어 그 매력에 빠지게 되었죠. 그러다가 '김환기 사위'라는 것을 알게 되어 더더욱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유영국, 김환기, 박서보, 하종현, 윤형근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특히 이번 전시를 통해서 왜 윤형근이 하늘, 땅을 여는 문을 그릴 수밖에 없는지 선생님의 일생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암울했던 현실을 온몸으로 겪은 윤형근은 진리에 사는 것을 외쳤습니다. 알록달록한 표피의 아름다움보다는 진리에 생명을 거는 것에 아름다움을 정의하였습니다. 진실하고 착한 사람은 내면세계가 아름답다고 한 그는 인간이 바로 서야 작품도 가치 있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탓이었을까, 그의 작품은 거침없이 내려 그은 검은 터치가 가득했고, 우뚝 솟은 문에 압도당하였습니다.
감동이란 인간사 희비애락과 같다. 희는 곧 차원을 뒤집으면 비가 아닌가? 즉 가장 아름다운 것은 희요 곧 비이다. 그래서 예술은,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슬픈가 보다. 그래서 가장 슬프면 눈물이 나고 가장 기뻐도 눈물이 나오게 마련인가 보다.
전시는 총 3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001은 윤형근 선생님의 일생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나열하였고, 002는 그가 '천지문'이라고 말한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73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서대문형무소를 갔다 온 이후 '천지문'이라고 명명한 작품을 그렸습니다. 하늘의 색인 블루(Blue)와 땅의 색인 엄버(Umber)를 섞어 검정에 가까운 색채를 만들었고, 거기에 오일을 타서 면포나 마포에 내려 그으며 문을 완성했습니다. 이어서 003에서는 더 깊어지고 간결해진 작품들이 등장했습니다. 검은색의 오묘한 변주가 사라진 채 '순수한 검정'에 더욱 가깝고 물감과 함께 섞었던 오일의 비율도 줄어들면서 화면은 한층 더 건조해졌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앞에 서면 왠지 모를 '심연의 세계'로 빠져들 것만 같았습니다.
이 땅 위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시간의 문제이다. 나와 나의 그림도 그와 같이 될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의 일생은 한국전쟁과 민주화 운동 등 한국의 격변기로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일까, 윤형근의 작품은 단지 마포 위에 그어진 검은 면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그의 일생을 엿볼 수 있는 윤형근 전시를 꼭 방문해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