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에서부터 다가온 나의 취향
어느 순간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자연을 기록하는 일이 많아졌다. 문명의 발전으로 잊고 있던 자연의 색과 물성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자세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골에서 지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고, 회색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서 살고 있는 지금 해방구가 되기도 하였다. 이런 생각은 지금 내가 지내고 있는 광화문이라는 동네를 선택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나의 시선은 매체를 통해 소비하는 이미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시스템의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와 비슷한 이미지를 나에게 추천해주었다. 평소 박서보, 하종현 선생님의 작업을 인상 깊게 보았던 터라 늘 보고 있자니 비슷한 작업을 하는 이미지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추천받은 이미지를 둘러보다가 인상 깊었던 작업이 하나 있었다. 하종현 선생님의 <Conjunction 시리즈>와 비슷하게 캔버스 위 그림이 아닌 캔버스 위에 올려놓아진 물질과 회화 공간을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단지 4.7인치 디스플레이 속 느껴진 작업의 물성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작가님께 메일을 보내었고, 작업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문의를 드렸다. 정말로 운 좋게도 2일 남은 전시를 서둘러 가서 길진 않지만 나름 충분히 음미하며 작업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되어있던 Imperfection 시리즈의 첫인상은 거침없음이었다. 멀리서 보아도 가까이서 보아도 재료적 물성에 의해서도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거침없음을 보고 있노라니 호기심과 어딘가 모를 불편함,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친근함이 느껴졌다. 판 위에 한지와 모래라는 재료가 섞여있는 모습은 마치 imperfection 하면서도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신비로움이 담겨있었다. 평소 알고 있던 곡이 변주를 통해 새로이 들리는 것처럼 머릿속에 있던 재료의 물성에 변주를 준 작업처럼 보였다.
우리가 사물이 영속적이다 여기고 이에 집착하는 순간부터, 이것들이 우리에게 즐거움이나 고통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Impermanence, 비영속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전 작품 시리즈에서 비영속성에 대해 탐구하기 위해, 나는 페인트와 모래를 섞어 작품 표면 위에 발라 시간의 지남에 따라 발견된 부스러기와 탈락한 석고의 흔적을 있는 그대로 남겼다. 작업의 과정을 통해 발생한 이런 잔해들을 유지하고 표면에 남겨진 흔적들을 보존 함으로써, 나는 의도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작가는 불교에서 기인한 비영속성에 기반한 작업을 진행해왔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발견되는 크고 작은 흔적들과 자연스러운 현상을 통해 변화하는 아름다움을 작품에 투여했다.
단지 기계의 알고리즘, 매체의 알고리즘을 통해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발견한 나의 취향으로 추천된 하나의 작품. 이제는 자신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기술은 뗄 수 없는 필수적인 방법이 되었다. 우연찮게(물론 나는 우연찮다고 생각하겠지만 데이터는 나를 항목화했겠지) 본 작품과 그 작가를 통해 시선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만 강조한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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