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 읽는 것을 싫어한다.
아니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읽고 싶은 책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sns에 올라오는 예쁜 글들을 싫어한다. 달콤한 말과 말랑말랑한 껍데기 같은 단어를 흩뿌려 놓은 글들을 싫어한다.
글은 전투고 전쟁이었다. 몇 자 끄적이기 위해 펜을 든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인생을 복기하는 투철한 싸움이었다.
깊은 곳 바닥에 침전되기를 반복해 굳어진 무언가를 긁어 올려내는, 그러기 위해 몇 번이나 속을 뒤집어 놓으며 내 뱃속에서 베어 나온 핏덩이와 뒤섞인 딱딱한 무언가를 끌어올려 밖으로 토해내는, 그러기 위해 펜을 휘두르는 투쟁 같은 거였다. 내겐 그랬다.
중학교 때 독서부에서 읽은 한국 문학 단편 몇 권보다 더 큰 충격을 준 책은 많지 않았다. 책들이 넘쳐 나는 세상인데 읽을만한 ‘진짜’ 책은 많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기도 싫어졌다. sns에 올리는 것들은 문득문득 든 생각이나 충동적인 감정으로 일기 쓰듯 끄적이는 낙서 같은 것이지 그런 것 말고 진짜 글을 쓰기가 무서워졌다.
글을 쓸 때 역시 괴롭다.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글들에 간단한 추천사를 부탁받았다. 담담히 고민해보고 적어 내려가 보려 했지만 이젠 글을 읽고 충동적인 감정으로 휘갈기는 즉흥적인 글이 아니면 무서워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단어 하나하나의 선택과 문장을 이어가는 바느질이 무척 어려워서 고통스럽다고 느꼈다. 완성된 글을 보면 부끄럽고 숨고 싶고 너무나 빈틈이 많이 보여 괴로웠다. 그 틈과 구멍을 보는 일이 너무 괴로웠다. 그럼에도 교수님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했다.
사실 지금도 이 배설물을 끄적이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지간히 답답해왔던, 꽉 막혀왔던 것 같은 기분 때문인 것 같다. 무언가를 써 내려가지 않으면 터질 것 같은 꽉 막힌 갑갑함. 사실 책 읽을 시간도 없다. 물론 핑계지만 그 핑계가 먹히는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바쁜 내게 누가 책을 읽으라 하겠어. 이렇게 바쁜 내가 무슨 책을 읽으며 살겠어. 언젠가부터 점점 책과 글과 멀어져 가는 이십 대를 보내고 삼십 대를 맞았다. 다시 한번 책을 펴고 싶은데. 두 손에서 놓지 않았던 총 한 자루를 다시 쥐고 싶은데. 참 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