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교보 아트스페이스 <낫띵 NOTHING> 전시를 다녀와서
광화문 교보문고의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낫띵 NOTHING> 전시를 보고 왔다. 교보문고에 들릴 일이 있어 지나던 참에 잠깐 들리게 되었다. 아트스페이스는 언제나 접근성에 항상 큰 강점을 가진다.
낫띵 NOTHING은 개념미술가 솔 르윗이 했던 말로, 때로는 최종적인 산물보다, 미술가의 사고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형식으로는 완결되지 않았지만 준비 중인 단계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드로잉 drawing 작업들을 선택한다. 완결된 작품이 아닌 그리던 중의 것, 작가가 그리려던 것의 중간과정인, 비어있고 흔들리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 낫띵.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전시에는 심래정과 이은새 두 명의 국내 작가의 작품들이 걸려있다.
심래정 작가의 작품은 흑색 잉크나 페인트 마카 들을 이용한 거칠고 구불구불한 선의 드로잉 작품들이었고, 이은새 작가의 작품들은 흑색뿐 아니라 다양한 색상의 유화 형태의 드로잉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곳을 방문하며 내 머릿속 사고의 키를 쥔 건 작품들보다는 낫띵이라는 개념과 전시 아이디어였던 것 같다.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작품들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인데,
그게 꼭 나를 비롯한 수많은 미생들의 삶과 비슷하지 않은가 싶더란 말이다. 그리고 정적인 상태에서 바라보면 낫띵이지만 동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는 곧 something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반대로 everything인 게 아닐까. '아직' 낫띵인 거니까.
심지어, 낫띵은 낫띵 그 자체로도 이렇게 전시장에 걸려있더란 말이다. 그 자체가 아무것도 아님을 스스로 외치면서.
서른 살이 넘어가면서 타고난 기질이 무언가 되고 싶은 욕구와 뭔가를 만들어내겠다는 욕구와는 거리가 멂을 깨달아 가면서, 내가 얻고자 하는 쾌감은 파도가 뭍에 닿음이 아니라 뭍에 가느라 넘실대는 그 시간임을 하루하루 느끼며 살고 있다.
내가 그 끝에 닿아 무언가로 결정이 나기 전까지 나는, 낫띵인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아닌 정말 별 거 아닌. 하지만 내가 전시장에서 지긋이 낫띵들을 바라보고 생각을 하고 작가를 느껴보고 이 글을 적듯, 누군가는 인생에서 지긋이 선채 내, 우리의 아무것도 아닌 지금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싶다.
그럼 우리는 nothing인 걸까. something인 걸까. 아니면 인생은 그냥 이대로 이게 의미의 전부인 everything인 걸까. 내일이 전시 마지막 날이다. 한 번쯤 지나는 길에 살포시 들려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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