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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으로만 May 23. 2023

청담동 사모님을 사로잡은 3천년 전통, 코지 타벨리니

익숙한 듯 낯선 이름, 퓨터


350도로 가열해 액체가 된 퓨터를 몰드에 붓고 있는 모습


퓨터(Pewter, 백랍)는 단단하지만 압력에 의해 잘 부서지는 주석에 구리와 안티몬을 더해 내구성을 강화한 금속입니다. BC 1450년 경으로 추정되는 퓨터 조각이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되어 그 기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종교적 상징용으로 뿐만 아니라 부유한 상인과 왕족들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내구성이 뛰어나 접시, 커트러리 등 가정용품의 주요 재료가 되었고, 당시 유럽 전역에서 발전한 공예 길드에 의해 품질이 엄격하게 관리되었습니다.


코지 타벨리니의 퓨어 퓨터(Pure Pewter) 아이템들


16, 17세기는 퓨터의 황금기로, 접시, 촛대 등 유럽 전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식기 및 의식 용품의 주재료로 활약했습니다. 특히 당시 최신 음료였던 커피와 차의 유행에 힘입어 크리머, 찻주전자, 튜린(tureen, 채소·수프를 담아 상에 낼 때 쓰는 뚜껑이 있는 큰 그릇, 합)과 같은 식기류와 와인, 에일의 필수품인 카라페, 큰 맥주잔 등이 정교해진 주조 기술에 의해 매우 아름답게 만들어졌습니다. 심미적으로 발전된 상품들이 선을 보이면서 퓨터는 실용적인 목적 뿐 아니라 장식적인 아름다움과 예술 작품으로 높이 평가 되었습니다.


검박한 듯 화려한 퓨터 소품들


코지 타벨리니, 퓨터의 변신을 이끌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퓨터가 현재에 와서 새삼스러운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이유는 전통적인 스타일을 넘어서는 혁신적이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으로 재탄생될 수 있다는 점인데(물론 장인의 기술에 따라 그 수준은 차이가 납니다), 이를 절묘하게 활용해 전개하고 있는 브랜드가 바로 이탈리아의 코지 타벨리니(Cosi Tabellini) 입니다.

코지 타벨리니는 1954년에 브루노 코지(Bruno Cosi)와 그의 조카이자 현 오너들의 부친인 세르지오 타벨리니(Sergio Tabellini)가 설립 후 현재까지 3대째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수세기 동안 퓨터 공예로 유명한 지역인 이탈리아 북부 도시 브레시아(Brescia)에서 고도로 숙련된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제작해 왔습니다.

현재 소유주인 알베르토 타벨리니(Alberto Tabellini), 다니엘라 타벨리니(Daniela Tabellini)는 회사 초기의 생산 방식을 지속하며 여전히 퓨터를 손으로 주조하는 오래된 기술을 사용하지만, 디자인을 발전시키고 퓨터를 다른 금속과 결합하는 복잡한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브레시아에서 생산되는 스테인리스 스틸, 이탈리아 세라믹, 이탈리아 크리스탈 유리, 유럽 체리우드와 같은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의 현대적 버전을 만들어 전통 가정과 현대 가정 모두에 어울리는 제품을 탄생시켰습니다.


매치 설립자 데이빗 라이스


유럽, 미국, 아시아 등 전세계 그릇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브랜드가 유럽을 넘어 세계적인 인기를 모으게 된 데에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 출신의 데이빗 라이스(David Reiss)의 공이 큽니다. 1995년부터 이탈리아 퓨터의 아름다움에 심취한 그는 뉴욕 국제 선물 박람회에서 이 브랜드를 데뷔시킨 후, 비벌리힐스의 기어리스(Gearys)와 바니스 뉴욕(Barneys New York), 니만 마커스(Neiman Marcus) 등 미국의 하이엔드 소매 업체에 이 브랜드를 입점시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남다른 성과 때문인지, 라이스가 운영하는 브랜드 매치(Match)는 단순히 코지 타벨리니의 지역 공급처 중 하나가 아니라 디자인과 제조를 협업하는 파트너로서, 제품의 인장(touch marks)에도 대문자 ‘M’으로 당당히 등장합니다.


매치의 M과 95% 순도의 퓨터를 뜻하는 코지 타벨리니 인장


가질 수 없어 더 갖고 싶은…

아닌 게 아니라 코지 타벨리니의 폭발적인 인기는 2002년 매치와 함께 출시한 퓨터와 크리스탈이 결합된 바 컬렉션(Bar Collection), 바로 이듬해인 2003년 세라믹 접시류에 퓨터 테두리를 두른 콘비비오(Convivio) 컬렉션이 출시되면서 본격화 되었습니다. 순백의 도자기에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퓨터가 결합되어 더없이 특별해지는 콘비비오는 원형과 타원형 플레이트, 샐러드볼, 파스타볼, 커피잔 등 가장 쓰임새 많은 아이템 구성으로 코지 타벨리니의 명실상부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콘비비오의 탄생에 대해 브랜드는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식기의 진화에 매우 중요한 재료인 도자기와 퓨터를 단일 제품으로 결합하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접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에, 두 재료를 완벽하게 맞추기 위해서는 각 아이템을 수작업으로 조정한다고 합니다.


콘비비오 컬렉션


단순하지 않은 공정 때문이겠으나, 요즘 코지 타벨리니를 얻으려면 상당한 참을성이 필요합니다. 백화점은 말 그대로 쇼룸으로서 상품이 진열은 되어 있되 재고는 없는 상황이고, 결제 후 몇 개월 기다린 후에야 실물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현지, 미국, 일본, 홍콩 등도 어느 정도의 대기는 기본입니다. 인스타그램 핫템으로 인지도가 상승하며, 일찌감치 컬렉팅을 시작한 청담동 사모님들의 떼샷 피드에는 그 영롱함을 추앙하는 댓글이 쇄도합니다.


입문템으로 인기 많은 콘비비오 머그


테이블 세팅을 더욱 특별하게 하는 버터케이스



여기까지 읽으면서 예상하셨겠습니다만, 코지 타벨리니 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고급스럽다. 어떤 음식을 담아도 갑자기 고급 레스토랑이 되는 것 같다’

‘퓨터 재질 자체는 고풍스러운데 디자인이 간결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적당히 멋스럽다’

‘클래식, 빈티지, 모던을 다 갖췄다. 비싼만큼 대물림각’

어떻게… 동의하시려나 모르겠습니다 :)


퓨터가 고대부터 쓰이던 금속이라는 걸 모르더라도, 분명 고풍스러운데 또 모던한 독특한 분위기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일단 마음을 빼앗기고 나면, 비싼 주석 가격 때문에 일반적인 도자기 그릇 몇 배의 금액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너무 비싸서 못 사겠다고 포기하는 대신 하나씩 사 모아야겠다는 다짐, 브랜드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지는 돌이킬 수 없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디저트가 더 달달해 보이는 콘비비오 디저트 플레이트


옛 것+새 것=전혀 다른 무엇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논쟁하는 시대에 기원전부터 써 왔던 금속을 쓰고 중세 시대의 스타일을 재해석하는 모습은 조금은 낯설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론 이 모습이 여태까지 새로운 물질을 수없이 찾고 만들어 내던 인류가 역설적으로 도달하게 될 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2023년을 사는 사람에게 BC 3000년 것은 옛 것이 아니라 몰랐던 새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뜬금없기는 한데, 저는 붉은 노을을 빅뱅으로 처음 들은 사람이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들었을 때, 풍선이 동방신기 노래인줄로만 알다가 다섯손가락의 원곡을 들었을 때 가질법한 생경함이 떠오르네요. 만약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코지 타벨리니의 퓨터와 도자기가 결합된 머그컵을 본다면, “이게 내가 쓰던 그 퓨터라고?” 하며 놀라지 않을까요?


옛 것과 새 것의 정의가 모호해지는 지점들을 우리는 이미 목도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질려서 식상한 무엇이 누군가에게는 옛 것이라고는 하는데 처음 보는, 너무도 신기한 그 무엇이 되는 세상.

원래 존재해 왔던 것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각광받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밀가루 상표로만 알던 곰표가 맥주로 나왔을 때 신기해 했던 건 MZ만은 아니었습니다. 기성세대도 ‘이렇게 풀어낼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고 그 맥주를 열심히 사 먹었습니다. 초고도화된 사회에서 과거를 동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능력은 상당히 중요한 덕목입니다.


테를리찌(Terlizzi) 화병, ‘화병이란 모름지기 이렇게 우아해야지’ 라고 말하는 듯하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으로 말할 것 같으면 수많은 시도가 있어 왔지만, 전문가나 업계 사람들의 자기 만족이 아니라 대중들의 마음을 얻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미 3천년 전부터 쓰였던 물질에 대한 재해석과 재활용이 한 디자이너의 취향에 머물지 않고 요즘 그릇 덕후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최신 트렌드를 바라보며, 역시 트렌드란 남들과 조금 다르게 볼 줄 아는 자, 고정관념 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자, 어떤 식으로든 창의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자가 주도하는 것임을 새삼 기억합니다. 아마도 요즘 고객은 이런 브랜드에게 지갑과 함께 마음도 여는 것 같습니다.


사진 및 자료 출처: 코지 타벨리니 공식 홈페이지(https://www.artofpewter.com/en/), 매치 공식 홈페이지(https://www.match199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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