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이 알고 싶다 (2)
군데군데 유약이 발리지 않아 갈색 점토가 드러나고, 표면에 요철이나 기포가 있는 건 예사며, 뒷면에는 두세개의 건조용 받침 자국이 어김없이 나 있는 그릇. 좌우 비대칭, 유약 뭉침도 불량이 아닌 수작업 공정의 결과물인 그릇. 의도적으로 완벽하지 않게 만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브랜드. 바로 프랑스의 아스티에 드 빌라트(Astier de Villatte) 입니다.
이런 그릇 브랜드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 만큼 놀라운 것은 이렇게 완성도 떨어져 보이는 그릇의 가격입니다. 작은 앞접시 하나가 10만원을 훌쩍 넘고, 손잡이에 장식이라도 달려 있다면 머그컵 하나가 50만원을 넘기도 합니다. 명품 가방에는 금칠이 돼 있느냐는 소리를 곧잘하는 저희 남편같은 분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가격이 이토록 비싼 이유는 대량 생산을 하지 않고 장인들의 수작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인들에게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아름다운 오브제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제조 공정 사이의 건조 시간까지 충분히 지키다 보니 컵 하나에 15일 이상 걸립니다.
이따금씩 명품 브랜드를 다룬 다큐멘터리나 공식 홈페이지의 영상에서 옷감이나 가죽을 가위로 직접 재단하고 단추 같은 장식들을 골무를 낀 손으로 일일이 바느질 하는 장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죠. 아스티에 드 빌라트도 70여명의 티베트 장인들이 석고 틀에 손으로 점토를 꾹꾹 눌러 모양을 만들고 나서 한번 굽고, 유약을 바른 후 한번 더 굽는 전통 방식을 사용합니다.
1996년에 설립되어 30년이 채 되지 않은 브랜드지만 제조 방식만은 전통적인 방식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장인들이 점토를 손으로 조물조물 만지고 있는 모습은 흡사 학창시절 미술 시간에 찰흙으로 항아리 같은 것들을 만들던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핸드메이드 그 자체 입니다.
1996년 메종 오브제 박람회에서 데뷔한 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리빙샵 수 피셔 킹의 오너 수 피셔 킹(Sue Fisher King)의 눈에 띄어 미국에 진출합니다. 이미 안목 좋은 전문가였던 수가 처음 주문한 상품은 가장 유명한 라인 중 하나인 리젠스(Regence) 였는데, 수는 ‘프랑스 귀족이 썼던 접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런 상품을 과연 미국 고객들이 살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구심은 괜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아주 적은 종류의 그릇만 있던 이 브랜드에 ‘디저트 플레이트는 없나요? 스프 그릇은요?’ 이런 식으로 고객 요청이 쇄도했고, 브랜드는 고객의 요구에 대응하면서 상품 구색을 하나하나 늘려 나갔습니다. 수 피셔 킹의 고객이었던 조지 루카스 감독이 접시에 어울리는 컵을 요청하자 부랴부랴 컵을 만들었다는 일화는 이 브랜드의 초창기를 잘 설명해 줍니다.
수요는 폭발했지만 공동 창업자 베누아 아스티에 드 빌라트(Benoît Astier de Villatte)와 이반 페리콜리(Ivan Pericoli)는 서두를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해 서울에 해외 첫 플래그십을 오픈할 만큼 1990년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인 지금까지 생산량 할당에 대해 한 번도 논의 해 본 적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두 창업자 덕분에, 기존 벤더들 조차도 주문하려면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합니다. 새로운 벤더가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고, 유통하고자 연락해 오는 업체들을 거절하는 것이 영업팀의 주된 일이라고 하니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창업자의 ‘사업하는 예술가’ 다운 면모는 기능 보다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의 철학에서도 드러납니다.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상품은 대부분 관상용이 아닌 실사용을 위한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용성은 이 브랜드가 지향하는 원칙이 아니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아름다운 오브제를 만들고자 했지, 실용적인 오브제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는 두 창업자의 당당함이 부러울 지경입니다.
비싼 가격과 미완성인 듯, 중고품인 듯한 외관 외에, 이 브랜드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 중 하나로 결코 튼튼하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브랜드 철학이 그렇다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이 값을 주고 이렇게 잘 깨지는 그릇을 왜 사냐며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정교하게 빚어진 동물 오브제, 우아하기 그지없는 화병의 곡선, 황금빛 리본과 구슬로 장식된 포장만 봐도 심쿵한다며 결코 착하지 않은 가격을 무릅쓰고 여유가 생길 때마다 하나씩 사모으는 팬들은 어쩌면 이 브랜드의 고집스러운 철학을 이해하고도 남는 분들일지 모릅니다.
그 모든 단점을 넘어 아스티에 드 빌라트 옹호론자(?) 시각에서는 최근 더욱 가속된 이 브랜드의 인기를 현대 마케팅의 가장 큰 조류인 콜라보레이션과 연결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브랜드의 근간은 심플한 화이트 라인으로, 고대 로마와 프랑스 옛 지배 계급의 스타일, 심지어 신석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어느 시대든 모든 과거의 산물을 사랑한다는 창업자들은 과거에서 날아온 것 같은 소박하다 못해 투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화이트 도자기에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덧입혀 위트있는 콜라보레이션을 완성하고, 고객들은 환호합니다.
데쿠파주(Decoupage, 종이장식) 예술가 존 데리안(John Derian)의 대담한 드로잉을 적용한 컬렉션, 프랑스 조각가 세레나 카로네(Serena Carone)의 정교하게 채색된 반지를 손잡이로 붙인 컵 시리즈, 일본의 화가이자 도예가인 세츠코 클로소프스카 드 롤라(Setsuko Klossowska de Rola)와 함께 만든 고양이 모양의 차 주전자는 더욱 강력한 팬덤을 만들며 이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갈망을 키웁니다. 콜라보 상품은 기본 라인보다 더 높은 가격이기에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어 ‘앓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집니다.
두 창업자 이반과 베누아는 콜라보레이션에 매우 적극적이고 열정적입니다. 두 창업자의 전공인 도자기에서 시작해서 이미 향수, 조명, 가구, 문구류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이들은 앞으로도 한계가 없고 무엇이든 포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미 출시한 바디 제품과 주방 세제 외에도, 예를 들면 호텔이나 자전거 같은 것들로도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오히려 반문합니다.
이쯤 되니 ‘앤틱한 듯 모던한’ 이 브랜드만의 독창성은 전통 생산 방식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협업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는 태도에서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대의 소비는 브랜드가 주장하는 바를 소비자가 동의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고, 동의의 깊이와 넓이에 따라 폭발한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그 원리를 매우 영민하게 이용하고 있는 브랜드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 철학이 맞든 틀리든, 누가 뭐래도 지켜내는 확고한 신념에 동의하는 소비자들은 조금 잘 깨지고 비싼 그릇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우아한 자태와 거친 마감이 자아내는 이 브랜드 특유의 은근한 고급스러움을 이해하는 경지, 정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찐팬이 되면 특정 상품이 재생산될 때까지 몇 달씩 기다리는 것 쯤은 예사입니다.
에르메스 같은 명품 브랜드의 후광이 있거나, 로얄 코펜하겐처럼 왕실의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닌 작은 도자기 브랜드가 콧대 높은 가격과 엄격한 공급 정책을 구사하면서도 진한 팬덤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은 작은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저 같은 사업가들에게 도전인 동시에 용기를 줍니다. 자기 주장을 꿋꿋하게 펼치고 소수라도 그 주장에 동의하는 고객이 있다면 사업은 성립한다는 게 또 한번 검증된 셈이니까요.
취향을 키워가는 소비자로서, 작은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아스티에 드 빌라트 같은 ‘매운 맛 브랜드’가 종종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전혀 새로운 맛을 선보이는 브랜드를 만난다는 건 사는 사람, 파는 사람 모두에게 꽤 즐거운 일이거든요.
사진 및 자료 출처: 아스티에 드 빌라트 공식 홈페이지(www.astierdevillatte.com), 뉴욕타임즈(www.nytimes.com/2022/03/09/style/astier-de-villatte-ceramics.html), ‘하우스 오브 트림’ 유튜브 (www.youtube.com/watch?v=0vqOzyq5w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