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메리온은 1960년 영국의 도예가 수잔 윌리엄스-엘리스(Susan Williams-Ellis)가 영국 스톡-온-트렌트(Stock-on-Trent)의 작은 도자기 장식 회사를 인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수잔은 1960년부터 몇 가지 컬렉션을 선보였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건 1972년에 출시한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이었습니다.
포트메리온 설립자 수잔 윌리엄스-엘리스 여사
보타닉 가든에는 약 30종의 꽃들이 사용됩니다. 각 사이즈의 접시들은 6종류의 다른 꽃들로 만들어지고, 컵에는 또 다른 6종류의 꽃송이가 수놓아 집니다. 거기에 나비들과 나뭇잎 테두리가 추가로 배치되면서 하나의 패턴이 완성됩니다.
보타닉 가든의 식물 그림은 1970년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습니다. 당시 인쇄 기술로는 식물들을 정교하고 현실감 있게 표현하기에 무리가 있었고 이 때문에 이전까지는 도자기에 단순하고 추상적인 디자인이 주로 사용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포트메리온 보타닉 가든
이 전설적인 패턴은 1970년 어느 날 독일의 한 인쇄 회사가 수잔에게 색채와 브러쉬 작업이 아주 섬세하게 표현된 스케치를 제안하고, 몇 달 후 수잔이 런던의 한 서점에서 토마스 그린의 식물, 의학 및 농학 사전(The Universal -or -Botanical, Medical and Agricultural Dictionary)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탄생하게 됩니다.
수잔은 이 사전에 들어 있던 식물 삽화들을 모두 사용해서 접시, 컵, 샐러드볼 등을 디자인 하기로 결심하는데, 수잔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전통적인 접시 세트는 모두 동일한 무늬가 적용되어 있었고, 보타닉 가든을 본 1972년의 백화점 바이어들은 ‘디자인이 너무 많아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잔은 ‘왜 하나의 컬렉션에 다른 패턴을 사용하면 안 되지?’ 라는 혁신가 다운 생각을 했고 그의 선견지명은 적중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에 크고 작은 족적을 남긴 사람들은 당대의 고정관념을 깬 일종의 이단아들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입니다.
영국 본토에서의 공전의 히트는 이역만리 대한민국까지 이어져 지금까지도 커다란 서빙볼부터 머그, 티스푼까지 한꺼번에 세트로 구매한 후 평생 이 그릇 하나로 나는 집들이 꽤 있을 정도입니다.
각기 다른 식물이 그려진 플레이트와 보울
보타닉 가든은 국민 그릇이라 불리는 동시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대표적인 브랜드 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취향이 갈리는 이유는 화려한 색채의 꽃 그림이 주인공인 이 그릇의 특징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정교하게 묘사된 꽃과 나비를 보고 있노라면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릇이란 모름지기 음식을 돋보이게 해야 하니 수수하고 미니멀한 것을 선호하는 편에서는 이 스타일이 탐탁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보타닉 가든이 포트메리온의 명실상부한 컬렉션이기는 하지만, 포트메리온에는 이외에도 아름다운 컬렉션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타닉 가든의 명성이 너무 강해 다른 제품들이 묻혔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새로운 라인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모험을 해야 하는 수입국 입장에서는 비주류 라인을 만나기가 더 어렵죠.
콘란샵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테렌스 콘란 경의 딸 소피 콘란과 콜라보한 ‘소피 콘란(Sophie Conran)’ 컬렉션은 포트메리온에도 이런 면이 있나 싶을 정도로 모던하고 심플합니다. 완벽한 베이직 라인인 ‘소호'(Soho)는 이제 막 독립을 하거나 이것저것 고민하기 싫은 소비자들을 위한 상품이고, 식물의 잎을 고급스럽게 각인한 ‘보타닉 가든 하모니'(Botanic Garden Harmony)는 세련된 카키, 브라운, 그레이 컬러를 과감하게 사용해 화이트 일색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배려했습니다.
소피 콘란과 소피 콘란 컬렉션
포트메리온 소호 컬렉션
몇 해 전 보타닉 가든 하모니를 처음 봤을 때 제일 처음 제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은 ‘내가 포트메리온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구나’ 였습니다. 아마 보타닉 가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 보타닉 가든 외의 다른 컬렉션들을 조금 살펴 본다면 포트메리온의 다른 면에 적잖이 놀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포트메리온 보타닉 가든 하모니
‘식기는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이어야 한다’
좋은 그릇을 고르고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수잔 윌리엄스 엘리스 여사의 너무 기본적이어서 진부한 이 말은 여운이 깁니다.
그릇장에 세워 놓은 수집품으로서의 그릇도 사랑스럽지만, 누가 뭐래도 그릇은 음식을 담아 식탁에 올렸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새삼스러운 생각을 해 봅니다.
어쩌면 늘상 하는 ‘플레이팅그램’도, 매일 편하게 쓸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기 위해 열정을 쏟은 수잔 여사 같은 분들 덕분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