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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으로만 Feb 15. 2024

2024.2.14

너무 피곤해서 못 할 줄 알았는데 영상 편집을 하다 보니 피로감이 온데간데 없어졌다. 사람 몸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이런 게 몰입의 힘인가?


그러고보니 영상 편집같이 곧잘 날밤을 꼴딱꼴딱 새우게 하는 일들은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각성되는 경향이 있다. 컴퓨터의 블루라이트도 일정 부분 작용을 할 것이고, 영상의 특성이 또 그러하니 작업을 하다 보면 한도 없이 길어지고 그러다 보면 밤 새우고.


영상 편집이 파워포인트 작업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회사에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만들 때 이런 생각을 종종 했다.


'이 놈의 시간 먹는 하마, 만든 놈을 찾아가서 진탕 패주고 싶다!'


고치고 또 고치고 요거 좀 손 보고, 조거 좀 맞추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디테일들을 챙기다 보면 시간이 훌쩍훌쩍 가 있는데 돌아서면 고칠 게 또 보이고, 틀어진 게 또 보여서 도대체 끝이 있긴 있나 싶었다. 막상 보고 자리에 가면 하나도 안 중요한 사소한 것들에 자의, 타의에 의해 30분, 1시간씩 매달리고 있다 보면 커다란 기계 속 아주 작은 나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아무튼, 오늘은 명절에 찍어놨던 영상을 편집해 릴스를 완성해서 올렸다. 연휴 동안 할 일로 적어놨던 편집과 유튜브 업로드를 연휴가 끝나고도 미루고 있었다. 오늘도 저녁이 되니 졸음이 쏟아져 또 미루고 자려다가 그러면 기분이 너무 안 좋아질 것 같아서 일단 PC 앞에 앉아 캔바를 띄웠었다. 그러기를 잘 했다.


아직 진짜 잘 못 하지만 그래도 반복해서 편집 작업을 하다 보니 시간도 단축되고 요령도 조금 생기는 것 같다. 전진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이 컨셉이 맞나?' 하는 의문은 잠시 접어 두었다.




너무 오래 못 만난 것 같아서 중학교 동창 친구들을 집으로 불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든 행사. 밥 시간도 피한 어정쩡한 시간이라 과일, 커피 정도만 준비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도 집으로 누군가를 부른다는 게 이리 피곤한 일인지 나는 또 잊고 있었던 거다. 손님 맞을 생각을 하니 먼지는 왜 이렇게 많으며 너저분한 것들도 왜 이렇게 많은지.


준비야 형편껏 하면 되는 것이고, 혹여 좀 지저분하다 해도 흉보고 그럴 사이도 아니고, 그저 반가워 서로의 근황을 묻고 듣고 하다 보니 두어 시간이 훌쩍. 만난 것 만으로도 참 감사했는데 뭔가 웬지 좀 공허하다. 뭔가 각자 자기 얘기 말고 남편, 자식, 부모님 등 얘기만 잔뜩 한 것 같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지냈는데?' 라고 물을 생각도 못한 채 그저 우리 남편이, 우리 애가, 우리 엄마가 이랬던 것 같다. 친구 하나가 아파트 재건축 때문에 10년 후에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생각해 봤다는 아주 좋은 주제를 던졌지만 그 이야기를 이어나가지는 못했다. 나는 정말 그것에 관심이 많은데 그렇다는 말 조차 꺼내지를 못하고 흘러갔다.


나는 늘 그렇다.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가 궁금하다. 상대방도 나의 그런 걸 궁금해 하고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 그런 일이 잘 없으니까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각자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다.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닌 것 같은데 왜 잘 안 될까? 오늘 만난 내 친구들도 다 일견 진지한 엘리트들인데?


(+)

글을 다시 읽다가 내가 너무 큰 걸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친구는 그 존재 자체의 가치가 있는 것인데, 하도 여기저기서 만나는 사람을 바꿔라, 영양가 없는 관계에 목 매지 마라 이런 소리를 많이 듣다 보니 기존 관계에 대한 회의가 왔던 것 같다. 무의미한 관계에 얽매인 경우에 대한 조언에 내가 과몰입 했던 거다. 어제 그 친구들은 3년만인가 만날 정도로 느슨하다 못해 풀어질 지경이니 막 너무 의미 따지고 그럴 필요 없었는데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좀더 진하고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나머지 부린 과욕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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