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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으로만 Jan 27. 2023

나오미 와츠

여배우 패션 열전 (4)

사실 이 배우는 리스트에 없었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보면서 옷 잘 입는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넷플릭스 시리즈 '어둠 속의 감시자(The watcher, 2022)'에서 나오미 왓츠는 작정이라도 한 듯 내내 눈을 사로잡는 스타일을 선보인다. 연말 시상식에서 스타일상 하나쯤 타 주겠다는 듯, 동시대 인텔리 뉴요커의 세련됨을 톡톡히 가르쳐 주겠다는 듯, 틈을 주지 않고 의상, 신발, 목걸이, 안경, 반지 등 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게 없다.





나는 이 시리즈를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가 나오미 와츠 패션이 화제라는 기사를 우연히 보고 시작해 이틀만에 시즌1 정주행을 끝냈다.






그녀가 맡은 노라 브래넉 역은 꽤 잘 사는 단란한 4인 가족을 일군 도예가, 부인, 엄마다. 흔한 재혼도 아니고 고등학생 딸, 초등학생 아들 모두 자기 자식이다. 파산한 경험이 있어 돈 문제로 가끔 남편과 충돌이 있지만 아직도 서로에게 성적으로 끌린다.






조금 무리해서 집 바로 앞에 노숙자들이 기다리는 맨하탄 대신 뉴저지에 크고 멋진 집을 살 수 있었고, 최고급 대리석 아일랜드 식탁도 설치했다. 프리우스를 탄다고 테니스 클럽에서 눈총은 받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대기 걸어둔 쟌느레 체어는 이번엔 참아야 하고 남편은 파트너 승진에서 밀렸어도 그녀의 작품이 갤러리에서 반응이 좋아 잘 팔리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감각도 있는 아티스트, 그러나 완벽함 속에 내적, 외적으로 도사리고 있는 불안한 여자의 패션은 시종 아이보리 톤온톤으로 표현된다. 아이보리 베이스에 브라운, 베이지, 그레이를 살짝살짝 넣었다 뺐다  뿐이다.






아이보리 톤온톤은 블랙에 비해 확실히 부해 보이고 아무리 피부가 하얘도 노란 빛이 도는 동양인 얼굴에는 난이도 최상이라고 생각해 유행인 걸 알면서도 좀처럼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데, 보면서 대리만족 제대로 했다.






대리만족만 하기에는 조금 서운하던 차에 그녀의 룩을 보면서, 아이보리+브라운톤이 너무 노리끼리해서 꺼려진다면 아이보리+그레이로 시작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레이는 확실히 쿨톤이니까.





브랜드가 드러나지 않는 기본 아이템을 좋은 소재의 아이보리, 베이지, 그레이로 입었을 때 가장 고급스럽다는 걸 그녀는 온 몸으로 보여준다. 공개된 몇몇 아이템의 브랜드를 보니 꽤 비싸긴 해도(40~50만원대 니트) 완전 하이엔드는 아니다(케이트, 알리기에리, 헬렌 카민스키, 더 로우 등). 


아이엠러브에서 틸다 스윈턴과 그 시어머니 역이 하나같이 버킨백을 들었던 것이나, 블루재스민에서 케이트 블란쳇이 망한 와중에도 샤넬 트위드와 루이비통 수트케이스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 하나하나가 모두 설정이듯이, 요즘은 극중 인물의 상황과 브랜드를 정확하게 매치할 만큼 스타일링도 정교하게 하는데 이 드라마도 노라 브래넉의 재정 상황에 맞는 중고가 브랜드를 적용했다. 


뚱뚱해 보이고, 얼굴은 더 노리끼리해 보인다고 맨날 블랙, 네이비, 그레이도 다크그레이만 줄창 입었는데, 이제 봄도 오니 아마도 옷장 저 깊숙한 곳에 있을 아이보리 니트를 꺼내 놓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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