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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브 Apr 12. 2019

플라스틱 하나 빼기

지구와 환경 보호를 실천하기 시작한 초보 환경OOO

2010년 가을 어느 날, 아침부터 아버지께 전화가 걸려왔다.


"할아버지가 좀 위독하시네. 다시 전화하마."


불안한 마음에 핸드폰을 손에 쥔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30분쯤 흘렀을까 어머니께 문자가 왔다.


"할아버지가 좋은 곳으로 가셨어."


10초 정도 멍하다가 왈칵 눈물이 났다. 옆에 있던 군 선후임들과 실장님이 놀란 표정을 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난 당시 상병 계급의 운전병이었고 상을 치르기 위해 그날 바로 휴가를 받아 서울로 향했다.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는 중학교 때 일찍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도 우리 가족 곁을 떠나자 조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죄송함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담배 좀 그만 피우시라고, 깔끔하게 좀 살자고 할아버지께 잔소리만 내뱉던 내 모습이 한심하고 후회스러웠다. 죄송함을 덜고 싶었을까 말년 휴가를 나와서 군자역에 있는 영화데이케어센터로 향했다. 그렇게 치매 노인 봉사를 시작했다. 두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2-3시간씩 시간을 보냈다. 밥도 먹여드리고 노래도 같이 부르고 팔도 내어드렸다. (식사 시간마다 밥을 안 드시겠다며 어리광을 피우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는데 양쪽에서 팔을 잡고 자리로 돌아가려 하면 팔을 물어버리신다..) 군 제대 후 복학을 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겨우 두 달밖에 나가지 않았지만 봉사에 대한 실천의 중요성과 즐거움은 느낄 수 있었다.


복학을 하고 교양필수인 영어회화 강의를 수강했다. 매주 본인이 정한 주제로 스피치를 하는 수업이었고 당연히 나의 첫 이야기는 '봉사'에 관련된 것이었다. 사실 그때 내가 A4용지 한 장의 분량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학기가 끝날 무렵 그 수업을 함께 들었던 형, 동생들과 술 한잔을 할 때 타과 선배 한 명이 건넨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너가 봉사 관련해서 발표했을 때 좀 찌릿했어. '봉사를 하고 싶다면 당장 하면 된다' 나도 봉사해보려고."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속으로는 정말 기쁜 순간이었다.


지금 내가 대학생으로 돌아가 첫 영어회화 수업의 발표를 준비한다면 주제는 '지구와 환경'이 될 것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은 어렸을 때부터 아주 조금 갖고 있었다. 길에 쓰레기 안 버리기, 침 안 뱉기 정도의 소극적 실천으로 말이다. 20대 중반 자소서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매번 첫 줄은 같은 문장을 반복했다.


'패션, 브랜딩 그리고 환경을 사랑하는 박종윤입니다.'


20대는 위 세 가지 키워드 중 패션과 브랜딩에 초점을 두었다면 30대인 지금은 '환경'으로 많이 기울어지고 있다. 본격적 시작은 플라스틱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버려진 쓰레기들에 의해 고통받는 지구 상의 수 많은 생명체들의 모습을 보면서부터이다.


첫 번째 실천은 '지구, 환경 보호 관련 이슈 알리기'

<내추럴매거진>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인스타그램 계정과 웹진 형태의 사이트를 만들었다. '내추럴'이라는 키워드는 내가 작년 말부터 푹 빠져있는 내추럴와인에서 따왔다. 'Natural'은 '자연의, 자연스러운'이라는 뜻과 함께 '정상적인, 당연한'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특별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닌 정상적인 것,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을 널리 퍼뜨리고 싶었다. #naturalwine #naturalwear #naturaleats #naturallife 이렇게 네 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하여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다양한 이슈들을 수집 및 공유하고 있다.


<@the_naturalmag / naturalmag.kr>


두 번째 실천은 '대나무 칫솔과 손수건 구입 후 주변 사람들에게 잔소리하기'

무언가를 주장하려면 내가 그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 지구와 환경 보호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나의 생활방식을 적극적으로 변화시켜야 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일반 칫솔은 플라스틱으로 뾰족하게 만들어졌다. 이런 칫솔은 몇 백 년 동안 썩지도 않으며 동물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그래서 실행한 첫 번째 움직임이 '더피커'에서 구입한 대나무 칫솔이다. 내가 사용할 것과 몇 개를 더 구입하여 가족과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3개월마다 칫솔 리필해줄게'라는 말과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협박스러운 잔소리와 함께.


<더피커 : 성수동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 스토어>
<더피커에서 구입한 대나무 칫솔과 손수건>


그 외에 편의점 안 가기, 택배 사용 줄이기, 물 끓여 마시기, 배달 음식 먹지 않기 등 나름 플라스틱 사용과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내 책상에는 플라스틱 천지다. 개인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내가 주기적으로 사용하는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용품들이 대부분 플라스틱에 싸여져 있다는 현실에 조금의 막막함을 느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실천하는 것.


내일도 지구와 환경을 위해 사용 중인 플라스틱 용품을 하나 없애고 매거진에 글을 올릴 것이다.


이미 많은 분들이 윤리적 패션, 환경단체, 봉사, 매거진, 카페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지구와 환경을 지켜나가고 있다. 허나 아직 부족하다. 지구와 환경 보호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우리가 지구에서 계속해서 '잘'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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