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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둥 Feb 22. 2023

나이 서른에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어렸을때부터 독서를 좋아했지만 책 편식이 심했다. 내가 늘상 읽는 책은 소설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좁디 좁게 살다보니 소설책을 읽으면 꼭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국문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이 세계는 더욱 견고해졌다. 대학 시절 내내 민음사에서 출판한 고전 작품들이나 한국 근현대 문학들을 열심히 파고들며 공부했다. 소설밖에 모르는 바보. 그게 바로 나였다.


 그러던 내가 다양한 책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건 노들서가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노들서가는 노들섬에 있는 독립출판 서점으로 나름대로 전공을 살려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내가 맡은 일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좋은 책을 내는 출판사와 책방을 찾아 사람들에게 연결하는 일' 이었다. 처음에 나는 너무나도 자신만만했다. 책을 많이 읽었고, 책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불과 일을 시작한 지 이틀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함께 일 할 출판사의 이름도 처음 듣는데다가 그들이 낸 책들 중에 아는 책이 거의 없었다. 독립출판물 위주로 구성된, 낯선 책들을 보며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너무나도 막막했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가장 읽기 쉬워보이는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단추 출판사의 '소금차 운전사'라는 그림책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책도 있구나.'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 걸? 책의 ost를 들으며 한겨울 소금차 운전사의 마지막 운행을 함께 하다보니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책이 주는 깊은 여운에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내가 그림책을 보고 울다니!'  빽빽한 활자가 역동적인 세계를 창조해내는 소설과는 다르게 그림책의 여백에서 주는 공간감과 상상력은 그 동안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림책의 매력을 느끼게 된 잊지 못할 순간이다. 


 회사를 그만 두고 나서 얻은 게 두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이다. 두번째는 책에 대한 편식이 완전히 깨졌다는 것이다. 나는 거의 모든 책들을 가리지 않고 읽게 되었다. 소설, 잡지, 에세이, 자기계발서, 개성 강한 독립출판물 등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나는 그림책과 사랑에 빠졌다. 작가라는 꿈을 꾸면서 노들섬에서 만났던 작가님들과 매주 수요일마다 그림책 스터디를 시작했다. 그림책은 아이들이나 읽는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던 내가 나이 서른에 그림책을 읽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매주마다 읽는 그림책은 나에게 큰 힘이 된다. 그림책을 읽는 데 시간은 10분 내외로 부담이 없지만, 책이 주는 영감과 생각할 거리들은 무궁무진하다. 2시간 동안 스터디를 하면서 우리는 그림책을 읽은 감상을 나누고, 주제를 정해 토론도 하고 이야기를 확장시키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나는 서른이 되어서도,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림책을 읽을 것 같다. 혹시 이전의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림책은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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