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헤르츠 고래는 10~39 헤르츠로 소통하는 보통의 고래들과 주파수가 다르다. 그렇기에 다른 고래들은 52헤르츠 고래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최근에 스토리북 작업을 위해 한 스타트업의 대표님과 만나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두 시간 정도 회사에 대해 그리고 대표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았던 말은 대표로서 힘든 고민과 무게들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면 대표가 배부른 소리 한다 하고, 애인은 그런 나를 못 미더워할까 봐 불안정한 사람처럼 느낄까 봐 말을 할 수 없고, 부모님과 동료들에게는 걱정을 끼칠까 차마 얘기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매일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데 다른 감정들은 완만하게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반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그래프는 도무지 밑으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신기하게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대표님 회사의 이름이 고래 이름이기도 했다.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야만 했던 그는 52 헤르츠의 고래와 꼭 닮아있었다. 어쩌면 나는 거품물고기...? 동료도 친구도 애인도 아닌 생판 처음 보는 나에게 그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꺼내놓았다. 이런 속 깊은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처음 말해본다고 했던 그의 말을 들으며 이 얘기를 들은 사람이 내가 됐다는 사실이 참 이상했다.
서로의 이해관계에 의해 의도적으로 맞춘 주파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의 마음이 전달됐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특별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라고. 사실은 모두 외롭다고.' 그게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고, 모두 각자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나는 안다. 둘이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과 군중 속의 고독이 혼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는 것을. 그래서 고립을 택하는 것은 어쩌면 덜 외롭기 위한 차선의 선택이라는 것도. 주파수가 수없이 맞지 않는 경험을 해본 52 헤르츠 고래는 그럼에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그 마음에 경외감을 느꼈다. 그렇게 산다는 게 쉽지 않겠지만 혹시 모르지. 그러다 나와 주파수가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외로움을 함께 나누며 행복해질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