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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Jul 17. 2024

한국영상자료원

오늘의 빛

1980년대 파리에서 최초로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관객들은 스크린 속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실제 상황으로 인식해 자리를 박차고 피했다고 한다.

새로움이란 이런 것이다. 기존의 뇌가 기억하는 반경을 넓혀가는 과정이다. 산다는 것은 연속적인 새로움과의 조우이고, 그 만남이 뇌의 확장으로 이어지도록 적응해 가는 일의 반복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숨은 의미가 있다. 변화와 성장.


오늘은 한국영상자료원을 방문했다. 몸의 활동반경을 좀 더 넓혀보고 싶어 새로운 공간을 찾았다. 활동의 결과는 때로는 좋고 때로는 아쉽다. 그러나 그 성패가 무색하게 모든 순간이 다 뇌의 반경을 넓히고, 몸 반경의 지도를 완성해 간다. 다행히 오늘의 활동은 유레카를 외치는 신대륙의 발견이었다.


경험에 관하여 정의해 보자면, 경험이란 우주의 시작과 여정을 채우는 모든 현상이다. 미시계와 거시계를 총망라하며, 미시계의 경험과 거시계의 경험은 서로에게 상호작용하기도 한다. 때로는 사소하게 때로는 거창하게 하는 모든 경험들은 해마에 저장되어 생각과 감정으로 발아하며 나의 세계를 확장하도록 돕는다. 사실 이 과정은 짜릿한 경험이다.


오늘의 경험 또한 그랬다. 한국영상자료원(KOFA, Korea Film Archive)에서 로봇도우미 큐아이의 동반안내를 받으며 영화발달사를 접하게 된 후, 내게 영화는 더 이상 이전의 그 영화가 아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생각하고 생각한 만큼 살게 된다고 하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꽃'


스크린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된 60년 전의 사람들이 되어 잠시 상상해 보자. 내가 사는 세상은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들은 세상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타자의 삶 깊숙이를 바라보면서 뇌는 대지진의 지각변동을 일으켰으리라. 그 지각변동과 더불어 상상력 또한 발달되어 갔을 것이다. 간접경험으로 확장된 뇌의 반경이 상상력이라는 심상경험을 통해 더욱 확장되어 갔을 것이다. 그 결과 더 넓은 시선으로 현상을 바라보게 되었을 것이고, 보이는 것이 많아지고 느껴지는 것이 많아지자 의식이 성장해 갔을 것이다. 처음에는 일상의 순간을 소재로 만들면서 일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을 것이며, 일상의 사건이 전하는 유희를 즐기게도 되었을 것이다. 일상이라는 밋밋한 순간의 객체화 내지 영화화는 상황과 존재 간 의식분리로 생의 고단함에 위로를 주기도 했을 것이다. 발달해 가는 의식변화는 영화에 상상력의 색채를 가미하며 희망과 바람 또는 현실고발, 현실보고의 기능성을 불러왔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부인(1956), 바보들의행진(1975), 서편제(1993), 투캅스(1993),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1994), 쉬리(1999),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 씨(2005),

괴물(2006), 피에타(2012), 내부자들(2015), 아가씨(2016), 기생충(2019), 콘크리트유토피아(2023) 등의 의미심장한 출현을 가능케 했으리라.


그 모든 시작에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가 있었고,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가 있었다. 쏘아진 프로메테우스적인 작은 공이 60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웃고 울리며 성장하게 하고 살게 했다. 사람, 엄밀히 말하면 사람이 행하는 상상력, 도전, 용기, 확신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의미를 새로이 알게 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 또한 더 깊어질 수 있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앞으로 좋은 친구가 될 것 같다. 많은 아카이브를 보유하고 무료관람도 가능하며 무료주차도 가능하니, 부담 주지 않고 섬세하며 세심한 배려를 하는 깊은 우물 같은 지혜를 가진 좋은 친구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외로움과 나 자신이 친구가 되어야 할 때 책을 찾듯이, 앞으로 이곳도 자주 찾게 될 것 같다.





#영화 #사유 #한국영상자료원 #일상 #리프레쉬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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