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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Aug 16. 2023

내 돈이 눈먼 돈이 되어도

핫플의 함정, 지극히 사적인 비평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이득

한 입 베어물 때마다 인상이 써지는 얼굴 근육을 막을 수가 없다. 얼굴 근육은 수의근이건만 찌그러지는 게 순식간의 자동반응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 찌그러지는 것은 어찌어찌 의지색이니 가려볼 수 있다 해도 낯빛에 도는 마음색은 가리기가 영 쉽지 않다.




나는 주인장의 감각이 돋보이는 식당이나 카페는 꼭 들러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십 년 전 만 해도 그런 곳은 부러 찾아야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동네를 걷다 보면 쉽게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핫플레이스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타는 곳들이 소셜미디어의 부흥과 발맞춰 생겨나고, 핫플이 되기 위한 전략 중 하나가 포토존이 되다 보니 인테리어가 나날이 상향평준화되어 가고 있다. 어딜 가나 예쁜 인테리어에 개성 있는 향을 풍기는 장소들이 많아진 것이다.


어제는 점심을 먹기 위해 전국 3대 만두맛집이라고 자칭하는 곳에(맛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국 3대의 평가방법이 무엇이었을지는 참으로 궁금한, 그 안의 숨은 다크 데이터를 상상하게 만드는 멘트이다) 들렀다.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기까지 10분 정도 남았는데 식당 안에 앉아 기다릴 수는 없다고 한다. 차에서 에어컨을 켜고 공회전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밖에 있자니 폭염이고 하여, 마침 예전부터 궁금증을 자극하던 옆 건물 베이커리 카페를 들러보기로 했다.


3층 짜리 건물인데 마치 작은 박물관을 연상케 할 정도의 큰 규모이다. 묵직하고 웅장한 유럽 바로크 양식의 외관이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나 보다. 잠깐 구경하고 빵만 사 오자 한 곳의 주차행렬이 엄청나다. 조용하게 머무를 곳은 아니겠구나 하는 직감과 함께 빵은 맛있나 보지 하고 매장에 들어서는데, 우리에게 처음 인사하는 것은 반경 2미터는 될 듯한 실내에 있는 것 치고는 꽤 큰 분수대였다. 넓은 실내에는 스파게티와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손님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이 있는데, 넓은 공간인데도 상당히 테이블 간격이 좁다. 널찍널찍하게 테이블을 배치해 공간의 여백을 두는 것이 손님에게 쉬어가는 아늑함을 주고, 손님은 그 느낌을 찾아 다음에 또 방문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주인은 손님의 입장보다는 수익에 관심이 큰 사람일 수 있겠다는 추측을 넌지시 하게 된다.

수익에 관심 없는 사업가는 없겠지만, 경험 상 적정 수익의 장기화를 지향하면서 퀄리티를 유지하는 업장과 현재의 고수익 추구를 지향하는 업장은 세세하고 디테일한 곳에서 차이가 느껴지곤 했다. 감각은 조금 떨어져도 주인장의 철학이 담긴 공간은 오래도록 찾고 싶어지는 반면, 겉보기에 화려한데 겉만 그럴싸하고 내실이 느껴지지 않는 곳은 다시 찾게 되지는 않는다.

생활하다 보면 사람들이 느끼는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는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오래가려면 긴 호흡의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금 좋을 것이냐 10년 후에도 좋을 것이냐 하는 고민의 답은 주인장의 철학에서 종결지어질 것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마음씀 내지는 철학이 담겨있는 곳이다.


잠깐 사이 이런 생각들을 하며 실내를 구경하는데, 실내 한가운데 마치 온실처럼 베이커리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둥근 통유리로 된 공간에 들어서면 마치 공간 안에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재미를 느껴보게 된다.

손님들이 흘린 음식물로 얼룩이 생긴 벨벳천 느낌의 좌석이 청결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는데, 빵 포장대에 도마와 빵칼, 봉투들이 너저분해 보였는데, 분수가 있는 공간의 습도 조절을 못한 탓인지 실내에 눅눅한 느낌이 나고 있는데, 바깥풍경이 보이는  통유리 창이 지저분해 보이는데 등 믿음직스럽지 못한 면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은 맛있겠지. 이 정도 건물을 지으려면 꽤 큰 금액을 투자했을 텐데 맛내기 실력은 자신이 있었을 거야라고 믿으며 빵룸으로 들어간다.


담백한 스테디셀러인 크로와상과 치아바타 류와 장식이 화려한 페이스츄리와 창작 빵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그 가격이 꽤나 사악하다. 우리 동네 최애 빵집의 크로와상 가격은 2500원인데, 무려 이곳은 크로와상이 5000원이다. 치아바타에 치즈와 토마토조림, 바질페스토를 바른 10센티짜리 빵이 무려 7000원이다. 여러 의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험에 돈을 쓰기로 결정하고 구매한다.




나는 오늘 아침 설명의 그 빵들을 먹으며 글을 쓰고 있다. 찌푸려지는 인상은 주인장의 양심에 기분이 상해서이다. 시중보다 2배의 가격을 받는 큰 배포를 부린 것이라면 맛에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

세상 사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을 하고 사는 편이지만, 돈을 받은 만큼의 가치는 만들어주면 좋겠다. 여기서도 메타인지가 필요한 것일까.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자신에게 적절한 가치를 매기는 것이 쉽지는 않으나, 이 빵을 만든 주인장은 자의식 과잉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일단 멋들어지게 핫플레이스를 만들어놨으니 투자금 회수가 급했던 것일까. 이 퀄리티에 이 가격은 뭔가 잘못된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내 돈이 이 순간 눈먼 돈이 되었다.




소비자로서의 권리로 한껏 평가를 해보았다. 혼자 속으로 하는 생각을 공개적으로 하는 기분이 익숙지는 않다. 그런데 이 경험을 통해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의지와 감정을 가린 포커페이스는 일터에서는 필요하지만, 나 자신 또는 나와 소중한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는 가면을 내려놓게 된다. 가면을 내려놓고 바라보게 되는 낯빛에서는 의지색과 마음색이 있음을 느낀다. 의지색은 노력과 의도의 빛깔을 나타내고  마음색은 그 이면의 더 깊은 속내를 비추는 것이 아닐까. 내 주변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색 색조는 어떠했던가를 떠올려본다. 내 마음의 색조는 어떠한지, 상대의 마음색 색조는 어떤지 지긋이 고요히 바라보다 보면 마음이라는 깊은 목적지에 가닿을 수 있지 않을까.


맛없고 성의도 없는 비싼 빵에 눈먼 돈을 쓴 상황에서 나는 마음색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경험 뒤 나는 마음색을 탐험하게 되겠지.

나쁜 경험에서도 배울 것이 있기에 나쁜 경험은 없다. 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 이벤트들은 연속적으로 발생하지만, 그 방향은 유동적이다. 그 순간 내가 무엇을 보았는가, 겪었는가 보다는 무엇을 느꼈는가, 발견하였는가, 해석하였는가, 체화하였는가에 따라 방향은 달라진다. 일반화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미세하게 작용하며 그 의미가 천차만별인 경험이라는 보물을 내가 사랑하는 이유이다.






 

한 줄 요약: 눈먼 돈을 쓴 씁쓸함, 그러나 경험의 의미






#핫플의 함정 #경험 #마음의 색깔 #라라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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