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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Dec 08. 2023

너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

진심으로 내 마음을 보겠다는 결심

다 줄게, 너에게..


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보려 해..



"사라지고 싶다던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어?"

"너 사라지고 싶어서 한동안 힘들었잖아?"
"우울증? 뭐 그런 거, 시간 많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걸리는 건 줄 알잖아.."
"그런 소리 듣기 싫어서 괜찮은 척 살았던 거야?"
"아무튼, 요즘은 어때?"
"마음공분지 뭔지 한다더니 잘 되가는 거야?"

나를 쭉 관찰해 오는 그가 물어 온다.


오늘은 마음이 평온한 날이다. 언제 내가 그런 마음의 병을 앓았나 싶을 정도로 평온한 아침이다. 그 사라지고 싶은 그 아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친구와 있었던 일화를 하나 소개해 보련다. 나의 친구 중 한 명이 몹시 속상하고 슬픈 얼굴로 얘기했었다.


"나는 진짜 잘 챙겨 주는데, 내가 축하받아야 할 자리에서 나는 정작 축하를 받지 못했어."

"나는 진짜 기쁘게 다 챙겨 줬거든, 그냥 주는 마음이 너무 좋아서, 기뻐서, 축하해주고 싶어서.."

"그렇게 난 진심으로 그들을 챙겨줬어, 생일, 승진, 소소한 기쁜 일들에 정말 즐겁게 챙겨 줬다고, "


나는 친구를 보며 생각에 잠겼었다. 친구는 남들이 말하지 않아도 먼저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챙겨 주고 싶은 마음 따뜻한 아이였다. 그래서 늘 크고 작은 마음을 표현하고 남 챙기길 잘하는 그런 사람. 그런데 정작 본인의 축하받아야 할 날, 그 건넸던 마음들이 돌아오질 않자 너무 속상했던 모양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그냥 너도 챙겨주지를 마, 그리고 받기를 기대하지 않으면 상처가 없을거야."


"..."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나에게도 똑같은 일이 생기지 뭔가. 누군가 애정하는 사람에게 기쁘게 마음을 다해 챙겼고, 나는 주는  것 자체 만으로도 행복하다 생각했다. 그때는 그렇게 기쁘게 주었는데, 아니 이게 뭔가. 정작 내가 축하받아야 할 그 사람이 정말 속된 말로 '생을 까버리니' 그게 그렇게 섭섭한 것이다.


뭔가 물질적인 것을 안 챙겨줘서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보단 내가 생각하는 '예쁜 말'로 마음이라도 전해 줘야 예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조차 하지 않는 그가 야속하고 너무 화가 났다. 돌려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가 베푼 그 마음 그대로 말이다. 나는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나는 한참 전에 있었던 친구에게 해줬던 말이 문득 다시 떠올랐다.



"그냥 너도 챙겨주지 말고, 받으려는 기대도 하지 않는게 상처를 받지 않는 길인것 같아, "


이것은 뭔가, 내가 타인에게 한 말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아.. 내가 그랬구나.."


불교 교리에도 세상에서 가장 큰 보시는 '무주상보 시'라고 한다. 되돌려 받기를 바라지 말고 그저 주는 마음 말이다. 나는 '유주상보시'를 한 셈이다. 준 대로 돌려받고 싶은 마음. 주는 순간은 주면서 너무 행복하다 말하면서 돌려받지 못하니 준 마음만큼 분노가 치미는 그야말로 '유주상보시'를 했구나.



진하게 반성하며 생각했다.


주는 순간 줬던 것을 다 잊어버리면 된다.  주면서 행복하면 그걸로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 안에 사랑을 돌려받고 싶은 마음을 돌보며 나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타자와 맺는 모든 관계의 역동은 내가 나 자신과 맺는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격하게 공감하는 말이다. 내 안에는 이렇듯 나에게 잘해주고 나서 되돌려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해도 해도 채워지지 않은 사랑의 자리가 있어서 끊임없이 갈구하는 텅 빈 마음이 있다.



이제 그 텅 빈 공간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 한그루를 심는다. 누구를 위한 나무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나무다. 이 친구는 주고 또 줘도 아깝다 하지 않고 되돌려 받길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만을 위한 나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부모가 자식에게나 줄 수 있는 사랑의 모양이라 생각했는데 이 사랑을 내가 나에게 줄 수 있으면 어떨까?


그렇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내 안에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으니 세상 가장 든든하고 무서울 게 없는 행복이 싹튼다. 물질적인 나뭇잎, 나뭇가지, 통나무, 나무 밑동이 아닌, 이번에는 그 마음을 본다.


"네가 힘들 때 언제나 와서 나에게 머물다 가렴, " 하는 든든한 정서적 버팀목. 그런 아낌없이 주는 나무 한그루를 내 안에 담으니 그렇게 멀고 멀게만 느껴지는 자기 사랑과 수용의 길이 조금 까워지는 것 같다. 남에게 하던 그 온정의 마음과 말들이 내게로 쏟아진다.



"괜찮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앞만 보고 가다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내 손을 잡고 일어나렴, 뛰다가 힘들면 걷고, 걷다가 힘들면 잠시 멈춰 쉬어가도 돼. 내가 너에게 그런 그늘을 주는 나무가 되어 줄게. 언제든 찾아와."



"그래서, 그 사라지고 싶다던 아이는 그럼 어떻게 된 거야?"

"정말 사라졌어?"



나는 대답했다.


"그 아이는 지금 아낌없이 주는 나무 품에 안겨 있어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

지구별 여행이 계속되는 한 말이야,




물론,


"머지않아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모두가 널 잊게 될 것이지만 말이야."

-명상록 중에서-




오늘도 진심으로 내 마음을 보겠다는 결심을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잊게 될 존재이며, 머지않아 모두가 우릴 잊게 될 것을 알지만 말이다.

진심으로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이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일지 모른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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