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가 옆이어서 그런지 밤하늘 아래 따스하고 여행자들의 목소리가 정겨워 자정 가까운 시간대라는 걸 잊는다. 캐리어를 끌고 걷는 10분 동안은 행복했고 다음엔? 이상한 전개가 시작된다.
체크인을 하려는데 방이 예약이 안 되어 있단다.
그래서?
방이 없단다.
그럼 예약을 확인해 주면 되겠네.
메일함을 뒤져서 호스텔이 보내준 예약확정에 대한 내용을 보여줬는데 나의 눈에는 보이는 글씨가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지 이게 아니란다 이게 아니라고? 넌 왜 못 보는 거지? 여러 개의 메일을 보여 주며 실랑이를 하다 결국 그의 눈에도 글자가 들어오고 그는 “네가 예약한 것이 맞다” 고 인정해 주는데 문제는 방이 진짜 없다는 사실이다!!! 뭐라고? No room?
응?? 예약을 하지 않은 것으로 호스텔에는 인식이 되어 있으니 나는 없는 사람이니까 방이 없는 거지. 아.... 니스 Nice 가 따뜻하니까 노숙하라는 말?
마르세이유에서 너무 피곤한 일을 겪은 상태라 몸도 마음도 지쳤는데 노숙이라니 말도 안 돼! 였지만 난 그가 안내하는 라운지를 순순히 따라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근 다른 호스텔 연결해 달라고 할 걸 그랬네. 자정이 넘었고 그곳은 관광명소라서 방이 없을 수도 있지만)
호텔 라운지를 상상하면 안 된다. 아무나 오가는 만화방 한 구석을 떠올리면 된다. 그래, 바로 거기에 너무 낡아서 스프링이 푹 꺼져버린 소파를 떠올리자.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곳, 내가 몸을 누일 곳이었다. 몸을 소파에 구겨 넣어 자야 하는 상황이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졸음이 쏟아져서 어쩔 수가 없이 눕는다. 화를 낼 수가 없다. 그는 예약을 실수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되지.
아고다에서 예약이 되지 않은 것은 등록이 잘못된 이름 때문이었는데 이때 아고다와 실랑이를 벌여서라도 이름을 바꿨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일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새벽에 절로 눈이 떠진다. 모두가 조식을 먹으러 나올 텐데 그 틈바구니에서 땀에 절여진 몸으로 자고 있을 순 없지. 미예약자여서 사용할 수 있는 방의 욕실 이용이 불가하다며 공용샤워장을 안내해 주는데, 헉 여기라고? 헬스장 내부에 있는 샤워장은 반은 반투명유리, 반은 나무였고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샤워를 하면 밖에서 보이지 않을까 우려되는 구조였다! 그곳은 니스 Nice. 그렇지. 근육을 자랑하고 싶은 바닷가였으니 해변에 가기 전에 남정네들이 근육을 한껏 키우기 최적의 구조였다. 피곤에 절고 잠에서 덜 깬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래 너희들 양심에 맡길게. 난 그냥 눈 딱 감고 샤워를 했다. 여기에서 잠깐.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남편 앞에서도 옷을 잘 갈아입지 않는다. 그러니 Female room(여성방)에서도 옷을 화장실에서 갈아입었다. 그런 내게 헬스장 반투명 구조의 샤워장에서 샤워를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정신이 혼미하니 될 대로 되라였다. 호스텔은 사과의 의미로 조식과 대형수건을 무료로 제공해 준다.
오, 좋아 좋아. 방값과 조식비가 굳었네. 타월도 무료 제공까지 라니 좋게 생각하자. 미예약자라 체크인이 불가한 상태라 호스텔에 짐을 맡기고 니스의 일정을 시작한다.
프랑스는 파리의 마티스미술관도 출입문을 찾기 어렵고 들어가고 나가는 곳이 다르더니 이곳의 안내센터도 마찬가지였다. 들어가는 문과 나가는 문이 달랐고 들어가는 문을 찾기가 어려워서 다른 외국인들도 안내센터가 문을 닫은 줄 알았다. 한국은 보통 그렇게 되면 직원이 달려 나와서 문을 열어주거나 안내해 줄 텐데 그렇게 허둥대는 모습을 유리문 안쪽에서 보았을 것이 분명한데도 그들은 태연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오, 이런 서비스 정신 놀라워라. 인사를 건네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니 다행히도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알려준 대로 볼거리 탈거리들을 챙겨서 니스 pass권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미술관 기타 등등을 돌아다니는데 문득 든 생각은.
잠깐만 지금 뭐 하는 거지? 어디에 있는 거야? 니스에서 해변가가 아닌 미술관을 돌고 있다니! 니스 해변가에서 해먹에 누워있다가 수영할 생각이 아니었던가? 니스 패스권을 돈 주고 샀으니 뽕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구 돌아다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마를 쳤다. 우선 모든 박물관, 미술관은 6시에 끝나니까 그때까지는 내부에 머물다가 6시 이후에 바닷가에서 놀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노을이 지려면 한참이 걸릴 거니까 괜찮아(유럽은 8시가 되어야 해가 진다). 버스도 무한대 이용이라서 뜨거운 햇살 아래 미술관으로 피신해서 돌아다니다가 6시쯤 들어가서 수영복을 입고 핸드폰 방수팩에 필요한 카드(호스텔카드, 결제카드, 니스카드)를 챙겨서 나온다.
저녁노을이 환상적이었다. 얼마나 몽환적이었는지 그라나다 친구들에게도 설명한 기억이 난다. 니스의 노을은 보랏빛이었다. 분홍 보랏빛. 그렇게 설레는 분홍 보라 파스텔톤을 볼 수 있다니. 니스의 하늘은 위험하다. 그 아래 고백을 받으면 모르는 사람과도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빛깔이다. 지인에게 하늘 빛깔을 얘기했더니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든단다. 여행 전도사나 할까? 우리 모두 행복한 여행을 가요!
저녁 수영을 하면서 가슴이 스멀스멀 기쁨과 만족감으로 채워졌다.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랐다. 몽글몽글해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호스텔에 돌아와서 샤워하고 야경을 보러 다시 밖으로 가려고 옷까지 다 입었는데 갑자기 몸이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이대로 나가면 아파지겠군. 아..... 속상하고 아쉬워.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고 기절하듯이 잠든 기억이 난다.
니스의 룸메이트들은
“내일 아침 같이 수영할 사람”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콜콜~~
아마 여행지에서 룸메이트들보다 먼저 잠든 건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70일간 거의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다. 이른 기상 시각이나 늦은 시간에 이용해도 실례가 되지 않는 공용 욕실을 주로 이용한다)
라운지에서 구겨져서 자서 숙면을 취하지 못했으니 곯아떨어질 만 하지.
다음 날 행동개시~
아침 수영을 하겠다던 여인들은 곤히 잠자고 있었고 아침 7시에 살그머니 나온다. 이른 시각인데도 해가 일찍 떠 있고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조깅을 하거나 해변가에 있다. 어, 이거 어디에서 본 풍경인데 그래, 해운대. 어디와 비교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해운대 아침 풍경이 떠올라서 마음이 훈훈하다. 한국에 가면 해운대에 가서 여기 니스 Nice와 비슷해 이런 생각으로 더 즐겁게 즐겨야지.
어제저녁에 물이 차가워서 물속에서 놀면서 계속 추웠기에 오늘은 달리기와 체조를 해서 몸의 온도를 높이고 바다로 짜잔 입수! 어? 너무나 따뜻하다. 아마도 아침 햇살에 바닷물이 데워진 듯했다. 기분이 정말 좋다. 어제는 해변의 몽돌에 발바닥이 아파서 “앗, 추워. 아야 아파”를 반복했지만 이제는 몽돌의 지압에 익숙해져서일까? 참을 만큼 아프다. 여유롭게 물속에서 발가락을 빙빙 돌린다. 둥실둥실 춤을 추며 아침 수영을 할 수 있는 여유는 오늘 뿐이라 생각한다. 오후에 다시 와서 수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마음만 니스 바다에 묻었다. 물에 둥둥 떠 하늘을 바라보며 작게 “행복해”라고 외친 목소리가, 저녁노을도 아침 햇살도 날 반겼던 은은하게 환한 하늘이 그립다. 밤수영도 하고 야경도 보고 싶었지만 몸건강을 챙겼으니 되었다고 위안 삼는다.
바다에서의 아침 수영을 즐기고 호스텔에서 일찍 나와 햇살을 받으며 하루 일정을 계획한다. 그러다 알도 씨를 만난다. 편의점 앞에서 샐러드를 나눠 먹으며(어랏, 나의 야채샐러드를 너무 많이 드시네. 알도 씨, 파스타만 먹자니 아쉬우셔서 야채가 먹고 싶어서 같이 먹자고 하신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하나밖에 없는 토마토를 드시다뇨 ) 그의 한국사랑 이야기를 나눈다. 알도 씨는 나의 한국이름을 물어보더니 놀랍게도 한글로 적어 보인다. 한국을 좋아해서 드라마도 보고 한국어 공부도 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에 사는데 니스까지 2시간이면 가능해서 가끔 기차 타고 온단다. 알도 씨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지만 난 그날의 여행이 하고 싶었다. 그에게 니스는 서울에서 부산보다 더 가깝게 오는 곳이지만 난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여행지였으니까. 알도 씨는 반가움과 아쉬움을 담아 한껏 포옹한다. 그는 내 나이를 모르니까 아마 자신이 아저씨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와 나는 10살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 어쩌면 동년배가 아니었을까 싶다.
오늘도 니스 패스 nice pass를 사용하는 날이다. 어떻게 니스의 일정을 이틀만 잡은 거지? 첫째 날 자정에 도착해서 하루를 오롯이 즐기고 둘째 날 저녁 8시에 출발하는 일정을 만들고는 꽉 차게 잘 짰다고 스스로를 칭찬했으면서 막상 니스에 도착하니까 이틀로 끝날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을 친다. 액티비티가 이렇게 많은지, 미술관이 이렇게 많은지 정말 몰랐다.
어제 샤갈, 마티스를 보고 미술관을 둘러봤으니 오늘은 니스를 즐기기로 한다. 카약, 스노클링 등을 하고 싶었는데 예약을 못 해서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더 즐겁게 다니기로 한다. 사실, 나에게 주는 선물로 모나코까지 가기로 계획했다가 오후에 계획을 급히 변경한다. 이곳을 더 보는 게 선물이지. (모나코로 4유로면 짧은 시간 내에 이동할 수 있다.)
어제 리틀 트레인을 타고 딱 10분의 여유시간을 주어서 여유롭게 즐길 수가 없었다. 다시 오고 싶을 만큼 멋진 뷰 포인트에 운 좋게 다시 온다. 힘겹게 걸어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며 걸어서 이곳을 올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오늘 그렇게 온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왔는데 그 길이 좋았다. 내가 원하는 각도에서 풍경을 보고 싶었는데 어디에서 봐야 할지 알 수 없었는데 걸어서 올라오니 뷰 포인트가 충족되었다. 다시 올 수만 있다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멍 때려야지.라고 생각한 것까지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 이 조화를 어떻게 설명할까? 바다 같은 하늘, 하늘 같은 바다. 말로 표현할 수도 사진에 담기지도 않는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벅찬 순간. 입과 팔을 한꺼번에 벌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기분이다.
니스를 만난 첫 느낌은 제주도, 부산, 하와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니스야 미안해, 잠시 후 든 생각은
이곳은 Just Nice. 어디와 같은 곳이 아니라 니스라는 생각이 드는 바다를 품은 매력적인 도시였다.
바다 앞에 줄지어 선 레스토랑.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내리쬐는 햇살 마사지를 받으며 바다를 멍 때리며 바라보다 니스 패스의 옵션인 하드록카페에 들어선다. 귀를 울리는 록 음악으로 가득 찬 바이다. 로제와인 Rose wine 호제와인을 시켰는데 안주로 접시 나쵸를 준다. 치즈가 흘러넘치는 나쵸! 이 모든 게 무료옵션이라고? 니스의 큰 손에 감탄하면서 야금야금 먹고 흥에 겨워서 니스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버스로 한 바퀴를 돌기로 한다. 이층 버스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곳저곳을 다니고 숨겨진 명소들을 보는 재미가 있어서 다음에 가족들과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흡, 내가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도시가 있었나? )
저녁시간이라 배도 고프고 니스 전통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시장과 식당거리를 찾아가지만 전통 음식들 판매시간은 지났다고 한다. 알고 보니 쏘카 Socca가 취급하지 않는 식당이 대다수였다. 무척 아쉬운 표정을 지으니 옆 식당 요리사 친구에게 부탁하고 친구가 안 된다고 하자 찾아가라며 종이에 르네 쏘카를 적어주던 친절한 분이 생각난다.
낯선 곳에서 친절이란 가슴이 따뜻해지는 일이다.
그 종이를 들고 다니며 르네 쏘카 Rene Socca를 찾아다니는데 갑자기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다. 꼬불거리는 구시가에서 길을 잃은 거다.
버스시간대에 맞춰가려면 여유롭게 가야 하는데 집에 가는 방향을 모르겠는데 어떡하지? 르네 쏘카를 찾느냐 집을 찾느냐 그게 문제로다. 식당을 찾다 보면 집으로 가는 길이 나오지 않겠냐는 생각에 애타게 르네를 찾지만 찾지 못하고 다행히 집에 가는 길 방향을 느낌적인 느낌으로 발견한다. 찾았다! 호스텔에서 짐을 찾았는데 아뿔싸. 폰배터리가 방전이다! 티켓이 폰 안에 있는데, 아니 되오. 라운지에서 몇십 분이라도 충전해야 한다. 충전하면서 저녁을 먹지 못한 빈속을 걱정하는데 누군가 말을 건넨다. 대화가 이어지고 야간버스를 타야 바르셀로나에 가는데 충전도 늦고 이 분도 말을 끊어주지 않는다.
술 한잔을 사겠다는 이 아저씨 눈빛이 반짝인다. 아, 사양하고 싶은 친절이다. 어서 떠야겠다는 생각에 배터리를 보니 역무원에게 티켓을 보여줄 만큼은 충전이 된 상태. Bye를 외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다. 바르셀로나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면서 야간버스 터미널을 향한다.
옆에 사람이 있어서 짧게 찍어 아쉬운 바다 풍경
****니스,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 노숙했더라면?
낭만적이잖아~~~ 아냐! 노숙 같은 No숙면했지.
어떻게 예약이 안 될 수가 있지?
예약이 안 될 수도 있지.
혼자서 중얼중얼 니스를 보낸다.
그렇게 이쁜 노을을 찍어둔 사진이 없다니…….
폰을 도난당해서 노을 사진이 전혀 없다……그때 노느라 바쁘고 데이터도 잘 안되었는지 인스타도 전혀 하지 않았더라… 하긴 마르세이유 사건, 열차 연착으로 자정에 도착한 일, 니스 Nice에 방이 없는 사건까지 하루에 다 겹쳐서 정신이 나갔었지. 인스타 사진이 파리에서 바르셀로나로 건너뛰었네.
바르셀로나의 다양한 환영인사?, 폰도난까지! https://brunch.co.kr/@youngsookkim/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