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를 달리면 40분이 걸린다. 피곤해서 오늘은 반만 달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반바퀴를 돌고 왔더니 똑같이 40분이다! 뭐지? 아, 반을 갔다가 오니까 한 바퀴가 되었구나? 이걸 모르다니, 이렇게 바보스러울 수가.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런 허당 행동을 말하고 나서 빈틈 많은 선생 코스프레로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속으로 흐뭇한 웃음을 지었는데, 아뿔싸! 교실에 USB를 놓고 왔다! 안 돼~!!! 집 앞에 와서 깨닫다니. 학교에 갔다 오려면 3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USB를 가지러 다시 갔다가 나오려니 지친다.
뭐니 정신이 없네. 또, 허당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학교 벤치에 주저앉았다. 까만 하늘에 손톱 같은 달이 내려다보고 있다. 한숨이나 돌리고 가야겠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고를 반복하고 마음 챙김을 해본다.
그래, 나 허당이야. 얼마나 다행이야. 이런 허당 없으면 완벽할 뻔했잖아.
헛웃음을 지으면서 일어났다.
유럽의 호스텔 룸메이트들 중 제일 일찍 일어나서 준비했지만 나가는 시간이 빠르지 않았는데 준비물을 빠뜨려서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기 때문이었다.허당 외에도 타인과 비교 관찰하면서 알 수 있었던 단점은 느.리.다. 이었다.
-시간이 오래되어 숙성될수록 좋은 건? 와인이라고 생각해서 골랐다. 포르투갈 와이너리 투어 사진-
“너, 느린 것 같아.”
초등2학년, 이 한마디를 들었을 때 타격감이 컸다. 나보다 더 느려 보이는 철수에게 들었거든. 선생님의 종례시간이 끝나고 신발주머니와 책가방을 싸고 있는 내게 조심스럽게 또박또박 이야기하던 발그레하고 통통한 볼의 철수.
아….. 돼지저금통이 떠오른다. (철수야, 미안 너의 볼 때문에 떠오른 거야)
고3시절, 담임선생님께서 학급비를 넣어두는 돼지 저금통을 맡겨주었을 때 기쁘지 않았다. 등교시간에 나를 발견하면 반친구들은
“00이다. 뛰어!.”를 외치며 모두 나를 제치고 뛰어갔다.
지각의 기준이 나였기 때문이다. (뭔, 기준이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야)
기준이어도 늦으면 안 되니까 다리에 알이 배기도록 달렸다. 대다수의 고등학교는 산에 깎아 만들잖아. 달리기로 아침 등산한 셈이다. 선생님이 제시한 시간이 지나서 도착하면 황금 같은 500원이 돼지뱃속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나의 정직함을 아시니까 이중의 호의를 베푼 셈이다. 지각을 할 듯 말듯하니 분발하라고 기회를 주고 지각비도 자동으로 걷도록 한 거다. 하지만 그 호의는 반만 성공했다.
중학교 담임선생님인 동생은 지각비를 걷지 않는단다. 왜?
“학창 시절 언니를 생각하면 걷고 싶지 않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하는 동생을 보니
나의 지각비 500원이 동생의 학급운영비에 영향을 줬구나 싶어서 마음이 숙연해진다.
어린 시절에도 지금도 집을 나서려고 하면 챙기고 싶은 일, 물건이 보인다. 이거하고 가면 좋겠는데 저거 정리하고 가면 좋겠는데 집을 그냥 나서도록 놔두질 않는다. 어쨌거나 행동이 빠르지도 않은 내가 이것저것 챙기니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나.
어쩌면 나는 느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니 이제야 안 것이 아닐까. 평생 같이 지내던 ‘나’를 몰랐으니 ‘앎’보다 '깨달음'에 가깝다. 나를 깨닫는 시간들.
되돌아보면 느린 것으로 귀결된다.
노동부, 대학, 직장에서 야근을 하면서
‘주어진 일이 많아, 일을 많이 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진실은 일처리가 느렸던 것은 아닐까?
손이 느렸던 것은 아닐까?
꼼꼼히 해서, 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만 해도 되는데, 그냥 보고 지나치지 못해서 그렇게 과도하게 일로 몰고 갔던 것은 아닐까?
노동부에서 야근을 하는 편에 속했다. 오래전, 뉴스에서 공무원들이 야근비를 높이기 위한 꼼수로 중에서 집에 갔다가 밤늦게 다시 와서 퇴근카드를 찍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저렇게 안 해도 야근이 충분히 많지 않나. 서울대에서는 커리어컨설턴트 3명 중에서 나만 야근이 많은 편이었다. 서강대에서 같은 업무를 했던 전 선생님은 야근을 많이 한 것 같지 않았다. 이대, 숙대에서 근무할 때도 직원이 아니라 초빙상담원인데도 빠르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글씨도 빨리 쓰지 못해서 상담일지 정리도 늦었다. 지금은 강의가 끝나고-수업 후에 질문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나가고 선생인 내가 교실 불을 끄고 나온다.
아. 난 느린 사람이구나.
실망스러웠다. 일할 때 느리구나.
그렇게 느린 사람이 여기까지 성장하고 오는 동안 손발은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여행지에서 발견한 나의 모습에 놀라서 멍하니 있었다. 단점을 알면서도 외면해왔겠지. 무의식은 숨기고 싶은 단점을 아는데 의식은 부끄러워서 지나쳤을 테지. 그렇다면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어떻게 들어온 거지? 더 많이 노력한 거겠지.
손발을 부드럽게 천천히 쓰담쓰담 쓰다듬어 주었다. 느려서 고생했을 불쌍한 손발.
지금도 글 작업이 느린 건 지도 모르겠다. 무슨 명작을 쓰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이나. 일기장 한켠이 될지 누군가 읽을 한쪽이 될지 모르는데 말이다.
첫 번째 책이 나오기까지, 물론 중간에 출판사가 계약을 파기하는 바람에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기획부터 발행까지 총 3년 이상 걸렸다. 두 번째 책이 내년 안에 나온다면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