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은 무좀
누구나 사소하지만 드러내기 창피해서 말하지 못하는 질병이 하나쯤은 있지 않나.
사실은 말만 못 할 뿐 사소한 건 아닐 테다. 그것만 없어진다면 다리 하나쯤은 끊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삐뚤어진 용기도 생기니까. 내가 뭘 잘 못해서 걸렸는지 다 내 탓 같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지식들을 모조리 찾아서 해보아도 나아지질 않으니 자괴감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주겠지 낙관적으로 있어보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수시로 느껴지는 간지러움은 발끝에서 간질거리는 건지, 오장육부에서 간질거리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손을 뻗어서 간지러움에 맞서볼까? 시원함에 잠시 황홀해진다. 황홀함에 취해 피부가 까진 것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야 쓰라림이 느껴지고 결국 유혹에 못 이겨 손을 댄 것에 후회한다. 잊어버리고 사는 편이 낫겠다. 간지러우면 손을 묶어 버리자. 손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면 그나마 유혹을 이길 수 있다.
나는 아들 둘 엄마이다. 아이를 출산하는 일은 거룩하고 위대하다. 출산의 위험은 고통만큼 큰 것이라 당사자는 물론 관계자들 역시 조심스럽다. 아이를 낳고 나서 알았지만 나는 출산의 과정이 꽤 수월한 편이었다. 첫아이는 유도분만 후 세 시간 진통만에 나왔고, 둘째 아이는 의사가 콕 집어준 날짜에 맞추어 진통한 지 30분도 안되어 세상에 나왔다. 남자들이 만나면 군대이야기 하듯이 엄마들은 만나면 출산이야기를 한다. 다사다난한 경험담 속에서 나의 가벼운 출산기는 분위기를 밝게 전환시켜 주기도 한다. 임신기에 양수 무게와 아이 무게, 거기에 내 무게까지 더하여 살이 쪘다는 이야기, 수유를 했더니 가슴이 작아졌다는 이야기들 모두 엄마들 수다의 단골 메뉴이다.
사실 나는 출산 때보다 임신기가 훨씬 힘들었다. 임신기에는 뱃속의 아이를 지키느라 정작 내 몸의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내 몸에서 가장 약한 부분인 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할머니 발과 닮았다는데, 발가락이 뭉텅 하게 생긴 데다 발톱도 아주 조그맣게 붙어 있다. 임신을 하니 몸이 붓는다. 발이 부으니 뭉텅한 발가락 사이에 틈이 없어진다. 발가락 틈새 살이 찢어진 듯 한 겹 씩 일어나기 시작한다. 수포가 생겼다가 터졌다가를 반복한다. 발톱에까지 균이 번져 살을 파고들어 걸을 때마다 통증은 더욱 심하다.
어릴 적에 발가락 틈새 살이 찢어진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잠깐 학교 기숙사에 살았는데 발을 씻으려고 보니 발가락 사이가 너덜너덜 해진 거다. 전혀 아프진 않은데, 자는 사이에 누가 내 발의 살을 뜯어놨나 공포스러웠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여전히 어디서부터 왔는지 의뭉스럽다. 무좀 균이 생겼을 때 약을 먹으면 된다는 사실은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 약이 너무 독하기 때문에 임신 중에는 먹는 약도, 바르는 약도 복용이 금지되었다. 약을 못쓰니 식초를 부어 발을 담가도 보았다. 강한 산성에 내 발은 찢어질 듯 아팠다.
면역력이 떨어진 걸 알고 기가 막히게 찾아오는 무좀, 두 번의 임신기 모두 10개월 내내 무좀균을 있는 그대로 견디고 받아들여야 했다. 회복 속도는 갈수록 더뎌져 둘째 출산 후 8여 년 만에 겨우 매끈매끈한 발로 회복되었다. 나에게는 좀 특별한 무좀 이야기를 이제는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발아, 무좀 균의 괴롭힘을 참아 내느라 고생 많았다. 그 덕분에 아이들에 대한 모성애는 더 커졌구나. 이제는 꽃길만 걷자꾸나."
*대문 일러스트 출처 : pik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