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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샷뜨아 Dec 14. 2022

엄마의 감칠맛

엄마도 MSG를 좋아해.

한국인의 밥상에 빠지지 않는 김치,  하지만 나는 김치를 만들 줄 모른다.   

무를 갈아 고춧가루 뿌려서 더덕이고 빨갛게 된 양념을 배춧잎 사이에 넣고 문질 문질 한 적은 있다. 

단지 엄마표 김치와 시어머니표 김치에 손만 얹었을 뿐이다. 

엄마의 손맛을 닮은 큰언니는 나에게 이제 김치를 만들어 보라고 권유하지만 여전히 친정 엄마가 만들어 준 김치가 좋다. 특히 1년 내내 묵혀놓은 신김치는 일품이다. 은은하게 깊어지는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

경상도 김치라서 젓갈이 쓰이지만 엄마는 손자들과 사위들의 입맛을 위해 줄이셨다. 

대신 곶감, 배, 사과 등 각종 과일과 야채들을 갈아 넣어 천연 조미료로 감칠맛을 내신다. 

양념 준비만 일주일이 걸릴 정도로 김치 양념에 온 정성을 다하신다.



대학 졸업 후 엄마 품을 떠나 독립한지도 벌써 20년, 친정집에 내 옷을 둘 곳이 없던 날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다. 손이 크신 엄마는 김장도 많은 양을 여러 번 나누어하신다. 가을 무가 맛있다며 시원한 동치미도 담가 주시고, 총각김치도 만들어 주신다. 마음이 넓은 엄마는 주변 사람들을 다 챙기며 일일이 나눠주신다. 

천식에다 다리가 불편하신 엄마의 건강이 염려된다. 


40대가 되어보니 아직 그럴 일 없지만 미리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과묵하셨던 아빠는 국민학교 2학년 운동회가 끝난 며칠 뒤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사진으로 남아있는 아빠의 얼굴만 기억할 뿐이다. 목소리와 말투, 냄새 같은 건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으니 사실 그리움도 없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일까. 삶의 죽음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어렵지 않다.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가 돌아가시게 되면 나는 무엇으로 그리워하게 될까? 매년 돌아오는 김장철인데 유독 올해 엄마 김치가 맛있다. 나는 김치를 남기기로 했다. 엄마가 건강하신 그날까지 김치를 얻어먹어야겠다.




엄마의 입맛을 닮아서 음식 맛을 좀 볼 줄 안다. 천연재료에 진심을 다하시는 엄마를 흉내 냈다.  

멸치 맛 국물 육수를 만들어 국물 베이스로 사용하고, 다시다나 미원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맛이 그 맛이 아니다. 엄마는 까나리액젓, 매실진액을 적당히 넣으라 신다. 

분명 더 있을 텐데, 조리순서가 다른가? 정성이 덜 들어갔나? 

어여쁜 새댁으로 살고 싶은 나에게 요리에 대한 의지를 꺾는데 충분했다.  


어느 여름날, 팬데믹으로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친정식구들이 제주도에서 모여 함께 휴가를 보냈다. 

어느 수목원에 위치한 펜션이었는데, 곳곳에 덮인 이끼들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나 있고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에 흠뻑 젖어 우리는 지긋지긋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존재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다리가 불편하신 엄마와 이모들도 힘 안 들이고 걸어 다니시는 걸 보니 마법 숲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14명의 많은 식구들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식당을 가는 것 대신 시장에서 해산물을 구입하기로 한다. 

엄마는 손위 누이 두 이모들과 재료를 손질하고 해물탕의 간을 본다.  

엄마가 가장 어리지만 음식을 만들 때는 언니들 앞에서 대장 노릇을 한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큰언니, 작은언니와 상차림을 준비하면서 엄마 음식을 먹을 생각에 한껏 들떠있다.  

아이들은 시끄럽게 떠들며 장난치고 남편들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다. 

웃음이 많은 세 세대가 모여 한자리에 있는 이 풍경이 화목하고 따뜻하다.  


그날의 엄마표 해물탕은 첫째 아들의 최애가 되었다. 

아이는 비릿하고 잘 씹히지 않는다며 조개를 분명 싫어했는데, 

시원한 바다향이 나는 쫄깃쫄깃한 홍합 맛을 알아챈 모양이다.   

“엄마, 할머니가 해주신 해물탕 또 먹고 싶어”

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식성에 따라 바뀌어버린 식단 탓에 해물탕을 끓여 본 적이 없다. 

아이가 해 달라는데, 모른 척할 수가 없다. 이렇게 요리에 도전을 해 보는구나. 

“엄마, 엄마가 끓여준 그 맛이 안 나는데, 비법 좀 알려줘요~” 

“응~ 안되면 라면 수프를 좀 넣어봐라. 그래야 맛이 난다. “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았다. 엄마의 손맛 입맛도 MSG 감칠맛이었다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엄마인데도 귀엽게까지 보인다. 인간미를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내가 부족한 건 정성이 아니었다. 요령이 조금 부족했을 뿐. 

그날 이후 나는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오늘도 식탁에 앉은 아이들이 짹짹댄다. 

" 역시 엄마가 해 준 게 제일 맛있어요 "

" 너네가 잘 먹으니 엄마도 행복해, 근데 학교에서 급식은 먹고 오자, 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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