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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y Apr 25. 2022

스페인 작은 도시에 정착하기. 13화

13화. 스페인에서 코로나에 감염되다. 그리고 병원 입원까지......

현재 스페인 카탈루냐에 위치한 작은 도시에 체류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외국노동자(외노자)로 일하면서 보고, 듣고, 만나고, 경험했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2021년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그 당시 한국은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500명을 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500명은 큰 숫자가 아니지만 그 당시에 언론에서는 500명이 조만간 넘을 수 있다고 연일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엄격하게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었다.


스페인은 그 당시 한국보다 10배가 많은 4천 명 수준의 일일 확진자가 기록되고 있었다.

그나마 겨울에는 확진자가 1만 명이 넘어가는 2차 파동을 거치고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시국에 해외로 가는 것을 걱정했다.

나도 스페인을 포함해서 유럽 코로나 상황이 안 좋다는 뉴스를 매일 접하고 있었기에 출국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2021년 3월 한국 코로나 상황 (일일 확진자가 500명을 넘지 않았다.)


2021년 3월 스페인 코로나 상황 (일일 확진자가 4천 명 수준이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대형 캐리어 하나는 국산 마스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당시 전 세계적으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나면서 마스크 가격도 많이 올랐고 마스크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스페인 출국 시점에 마스크 배급 사정이 좋아져서 한국에서 마스크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현지에 도착했을 때 이곳 사람들이 KF 94 수준의 마스크가 아닌 일반 비말 차단용 마스크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어서 많이 놀랐다. 

다만 혹독한 코로나 사태를 겪은 뒤라서 이곳 사람들도 거리두기와 마스크 사용을 대부분 잘 따르고 있었다. 

나도 코로나에 대한 염려로 늘 한국에서 챙겨간 KF 94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다.


코로나 영향으로 회사에서는 대부분 재택근무가 시행되고 있었고 출근한 직원끼리 점심 식사도 건물 밖에서 넓게 거리를 두고 먹었다.

나는 코로나 걱정 때문에 밖에서 외식은 생각하지도 못했고 퇴근 후에 집에 오자마자 손 세척과 더불어 핸드폰까지 알코올을 구입해서 소독했다.




2021년 4월 중순 경 한국에서 보낸 짐이 도착한 날 하루 종일 밥도 굶어 가면서 짐을 날랐다.

이사 후 다음 날 바로 출근했더니 하루 종일 이삿짐을 나른 영향으로 온몸에 근육통이 생겼다. 

평일 내내 팔과 다리에 생긴 근육통으로 계단을 오르고 내리기가 힘들었다. 


근육통이 조금 심하다 싶어서 한국에서 가져온 타이레놀을 먹으며 버텼다. 

그러다가 주말에 근육통이 몸살 증세로 악화되면서 오한까지 동반되었다. 

하루 종일 한국에서 가져온 종합감기약과 진통제를 먹고 누워있었다. 

그런데 목까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약국에서 다시 진통제와 목에 효과가 있다는 약을 구입해서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목의 따끔거림은 더욱 심해졌고 목 안에 흰색 반점의 염증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알고 지내던 의료진에게 상담했더니 아무래도 현지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어떻게 병원에 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대형병원 응급실로 가면 진료가 가능하다는 정보를 얻었다. 

한국에서 올 때 보험가입을 해둔 것이 있어서 무작정 이곳 도시에서 가장 큰 병원 응급실로 갔다. 


가져간 여권과 번역기를 돌려서 목이 아파서 진료를 받고 싶다고 했더니 무사히 접수가 되었고 순서를 기다렸다.

진료 순서가 되어서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담당 의사 선생님이 영어를 못한다. 

그리고 간단하게 내 혈압과 목을 보더니 계속 뭐라고 하면서 종이를 하나 주었다


결국 번역기를 돌려보니 이곳에서 진료가 안되고 집 근처 보건소로 가라고 한다.

나는 약간 황당했지만 다시 응급실에서 나와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보건소로 갔다.


보건소에 도착해서 접수대에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 받은 종이를 내밀고 여권을 내보였다.

그랬더니 다시 보건소 응급실에 접수가 되었고 순서가 되어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에서 내  목 상태를 체크하고 면봉으로 코를 찔러서 검사를 했다. 

보건소 진단 결과 '코로나 확진'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타이레놀 성분의 진통제 처방전을 발급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아~~~ 코로나 확진이라니...... 말도 안 돼....... 철저하게 위생을 신경 썼는데 어떻게 감염된 거지?"




병원에서 처방받은 '파라세타몰(타이레놀 성분 진통제)'을 복용하며 계속 누워있었다.

확진 판정 이후 아내와 나는 격리를 시작했다.

아내는 작은 방에서 생활을 했고 나는 안방에 격리되었다. 

잠을 잘 때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식사까지 방에서 해결했다. 


그러나 몸살과 목 따끔거림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숨도 살짝 가빠지기 시작했다.

이틀 뒤에 다시 보건소로 가서 X-ray 촬영을 했고 보건소에서 결과가 나왔는데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회사 동료한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보건소에서 지금 다시 큰 병원으로 가래."

"뭐? 큰 병원?"

"응. 지금 당장 대형 병원 응급실로 가야 해!"


나는 보건소에서 나와 처음 갔었던 대형 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서 다시 X-ray 촬영을 했고 채혈검사를 했다.

그렇게 응급실 임시 대기실에서 3시간 정도 누워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회사 동료한테 다시 전화가 왔다. 


"지금 담당 의료진 하고 통화를 했는데 격리 병동으로 입원 치료가 필요하대."

"뭐? 입원? 어떻게 하지 나 그냥 맨 몸으로 왔는데......"


그렇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나왔다가 격리병동 입원까지 하는 신세가 되었다.

보건소에 갔다가 대형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했을 때 집에서 아내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동맥 채혈 (산소포화도 검사)




졸지에 2인 1실의 격리병동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집에서 나올 때 입원까지 할 것으로는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 달랑 휴대폰하고 지갑만 가지고 왔다.

입원 소식에 아내는 계속 울기만 했다.


"울지 마. 괜찮다니깐......"


급한 대로 갈아입을 속옷, 핸드폰 충전기가 필요했다.

회사에서 직장동료가 집에서 물건을 받아서 병원 입구에 맡겨둔 덕분에 필요한 물건을 다음 날 전달받았다.


첫날은 2인 1실의 격리병동에 혼자 있었다. 

병동에 도착한 날 의료진이 나보고 마스크를 벗으라고 했다.


"예? 마스크를 벗으라고요?"
"예. 마스크를 벗으셔도 돼요. 여기 병동에는 다 확진자만 있어서 마스크 쓰는 것이 의미가 없어요."

"......"


5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었다.

링거 주사를 계속 맞은 덕분에 목 통증도 없어지고 숨 쉬기도 편해졌다.

병원에 입원한 동안 옆 자리에 2명의 남자 환자를 만났다.

첫 번째 남자는 내 또래였는데, 나보다 하루 늦게 와서 먼저 퇴원했다.

퇴원하면서 너무 좋다고 하면서 나도 조만간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인사를 하고 갔다.

두 번째 남자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상태가 매우 안 좋았다.

결국 호흡 장치까지 하고 있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밖에서는 계속 비가 내렸다.

격리 병동이라 방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병원 침실에 누워서 하루 종일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스페인까지 와서 코로나 확진에 병원 격리병동에 입원까지...... 참내 별 경험을 다 해보네......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병원에서 처음으로 스페인 음식을 제대로 경험했다. 


아침에는 간단한 빵과 커피가 나왔다.

점심은 피자, 파스타, 샌드위치가 나왔다.

저녁은 고기, 생선 등 처음 경험해보는 음식에 제공되었다.


아침 메뉴 (간단하게 빵과 커피가 제공된다.)


점심 메뉴 (피자가 제공되었다.)


저녁 메뉴 (생선, 고기 등이 제공되었다.)




외국에 오면 가장 고민되는 것이 건강 문제다.

그리고 처음 이곳에 온 한국 사람들은 현지 병원에서 진료받는 것이 늘 부담스럽다.

보험이 있으면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지만 금전적인 문제보다 병원에서 언어 소통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병원 신세를 안 지는 것이 가장 좋다.


병원에서 5일 입원 후 퇴원해서 다시 집에서 5일을 추가로 격리했다.

퇴원 후에도 아내와 격리는 계속 이어졌고 마스크는 늘 쓰고 있었다.

다행히 아내도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음성이었다. 


지금은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이곳에서 백신도 3차까지 접종을 완료하였다. 


2022년 4월 스페인은 실내 마스크 의무가 해제되었다.

덕분에 대부분 사람들이 이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언제 완벽하게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얼른 지긋지긋한 코로나 문제가 해결되어 예전처럼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기회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 14화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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