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스페인 공휴일 및 직장 휴가 문화..... 그리고 황당 사건
현재 스페인 카탈루냐에 위치한 작은 도시에 체류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외국노동자(외노자)로 일하면서 보고, 듣고, 만나고, 경험했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오래 한 덕분에 매년 사용할 수 있는 연차 휴가가 꽤 길었다.
그러나 연차휴가를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다.
신입 때는 휴가를 가는 것이 늘 눈치가 보였다.
팀장이 휴가를 안 가는데 휴가를 신청한다는 것이 어려운 분위기였다.
겨우 팀장이 휴가를 가면 팀원들도 팀장 일정에 맞춰서 겨우 휴가를 다녀올 수 있었다.
신입 딱지를 떼면서 본격적인 업무를 맡게 되면서 이번에는 너무 바빠서 휴가 갈 여유가 없었다.
늘 일이 밀려서 허덕이면서 집에 제대로 퇴근하기도 힘든 상황이라서 휴가를 맘 놓고 다녀올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겨우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애들 방학이 되면 1주일 휴가를 내고 바닷가에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 더 이상 팀장 눈치를 안 봐도 될 때에는 애들 학원과 입시 때문에 휴가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스페인에서는 근로자가 일정 시간 이상 휴가를 보장받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회사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21일 이상의 휴가를 1년에 사용할 수 있다.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은 1년에 27일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한국처럼 경조휴가 및 특별휴가가 별도로 있다.
내가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 이사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휴가가 필요하고 했더니 2일간 '이사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와! '이사 휴가'라는 것이 있네? 그것도 이틀씩이나......"
"그러게 다행이야.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많은데"
'이사 휴가' 덕분에 여유 있게 이사하고 짐 정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휴가를 여름과 연말에 몰아서 쓴다.
직장마다 조금씩 다른데 회사 규모가 작거나 공장이 있는 경우에는 휴가 일정이 고정되어 있어서 휴가를 일괄적으로 사용한다.
반면에 내가 근무하는 이곳은 휴가를 정해진 일자 안에서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하루는 직장 동료가 나한테 얘기했다.
"필요한 물건은 6월 초까지 미리 주문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왜?"
"음. 여기는 7~8월에 대부분 휴가를 가거든. 그래서 그때는 다른 사무실도 대부분 쉬는 곳이 많아. 그래서 미리 주문 안 하면 물건을 9월 이후에 받을 수 있거든...... "
"뭐? 7~8월에 대부분 쉰다고? 휴가를 얼마나 오래가길래 그러지?"
처음에는 잘 이해 못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나니 이곳 휴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우선 부활 전후로 "Semana Santa" 휴가를 즐긴다.
이 시기에 학교도 일주일 방학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일주일 가족 휴가를 즐긴다.
그리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하는 7, 8월에는 짧게는 2주, 길게는 4주 정도 휴가를 이용한다.
그래서 7, 8월에 사무실은 텅텅 비어 있다.
그때는 길거리에서도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고 특히 7월 말, 8월 중순에는 상가들도 대부분 휴가를 떠나서 도시가 텅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학교도 6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장기간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때문에 대부분 이 시기에 집중적인 휴가를 사용한다.
알다시피 스페인의 여름은 덥기로 유명하다.
대부분 학교에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여름에는 수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
그래서 여름에 대부분 학교가 장기 방학이 시작한다.
말라가, 세비야 등 남부 스페인 도시는 6월이 되면 벌써 30도가 훌쩍 넘어가는 기온이 되어버린다.
7, 8월에는 대부분 40도를 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때는 학교도 회사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
이 시기에 이곳 사람들은 집에 햇빛이 못 들어오도록 페르시아나를 내리고 장기간 집을 비우거나 여름 더위를 버틴다.
그리고 연말, 연초에 다시 집중적으로 2~3주 휴가를 즐긴다.
여름에 휴가를 짧게 이용한 사람들은 연말, 연초에 집중적으로 연말 휴가를 사용해서 12월 중순부터 1월 초까지 얼굴이 안 보이는 직원들이 많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곳 휴가 문화가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모든 사람들은 본인 휴가를 떳떳이 즐긴다.
본인 휴가를 가는 것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뭐라고 안 한다.
다만 연초에 직원들 연간 휴가 계획을 받아서 일정 기간에 휴가가 집중되는 경우 부서장이 간곡하게 휴가 일정을 조정해 달라고 부탁한다.
한국처럼 개별적인 휴가 이외에도 공휴일에도 쉴 수 있다.
스페인 국경일은 동일하게 쉰다.
하지만 도시마다 자체 기념일이 다르기 때문에 도시마다 공휴일이 다르다.
그래서 같은 직장이라도 도시가 다르면 공휴일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지점이 있는 직장은 지점별 공휴일 일정표가 연초에 배포된다.
나는 처음에 이곳에 도착해서 한국에서 남아 있던 습관 때문에 휴가를 제대로 사용 못했다.
그리고 한국하고 마무리해야 할 일이 8월에 몰리면서 여름휴가를 사용 못했다.
덕분에 텅 빈 건물을 이곳저곳 구경하면서 일할 수 있는 고요함을 즐겼다.
8월 말이 다가오는 월요일 아침.
나는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을 챙기고 40분을 걸어서 회사에 도착했다.
여름이라서 평소보다 더 일찍 출발했다.
회사에 와 보니 주차장에 차가 안 보였다.
"와! 오늘 내가 너무 일찍 왔나 보다. 하기야 지금 시간이 7시 30분 정도 됐으니 오늘 내가 너무 일찍 왔나 보네. 1등 도착. 내가 생각해도 한국인은 참 부지런 해.ㅎㅎㅎ "
늘 일찍 출근하는 회사 프런트 데스크 여직원도 안 보였다.
"응? 오늘 아무도 없네? 8월 말이라 다들 휴가 갔나 보네."
그리고 그날따라 매일 아침에 보이던 청소 아주머니도 안 보였다.
"응? 청소 아주머니도 휴가를 간 거야? 곧 휴가 시즌이 끝나가니 이 사람들 8월 말에 휴가를 다 몰아서 가는 구만. 대단해 ㅎㅎㅎ"
출근해서 책상 정리하고 컴퓨터를 켜서 메일을 확인하고 일을 하다가 2층 식당으로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여름휴가 시즌이라도 늘 한, 두 사람은 보였는데 그날은 아무도 없었다.
"8월 말에 다 휴가를 가는구나... 나도 일주일 휴가를 다녀올 걸 그랬나? 내년에는 나도 8월 말에 휴가를 가야겠어"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전 10시가 되었다.
그런데 아무도 안 보였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있는 아내한테 전화를 했다.
"오늘 회사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
"정말? 다 휴가 갔나 보네."
"그런가? 혹시 오늘 쉬는 날인가? 내가 지난번에 알려준 회사 휴가 일정 달력에 표시해놨죠? 한번 확인해줄래요?"
"잠시만요. 달력을 한번 볼게요....... 아니 오늘 그냥 평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래요? 음...... 다들 휴가 갔나 보네...... 우리도 그냥 1주일 휴가 사용할 걸 그랬나?"
그리고 시간이 흘러 11시가 되어도 건물에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이런 날은 없었는데?"
"오늘은 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도 아무도 안 보이지?"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직장에서 배포한 휴일 일정표를 확인했다.
"가만히 있어보자... 8월.... 30일..... 월요일....... 헉! 휴일이네? ㅠ.ㅠ"
집에 다시 전화했다.
"오늘 휴일이야!"
"뭐? 오늘 휴일이라고?"
"응! 회사에서 배포한 일정표를 보니, 8월 30일 휴일이라고 되어 있네....... 내가 지난번에 정리해서 달력에 표시하라고 보냈잖아!"
"아이코, 빼먹었나 보다. 미안...... 다시 얼른 와요....."
난 다시 짐을 챙겨서 퇴근했다.
퇴근하면서 보니까 평소와 다르게 대부분 상점이 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거리에 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다시 40분을 걸어서 집으로 왔다.
"어쩐지 이상하게 오늘따라 거리에 사람이 안 보인다 했어....ㅠ.ㅠ"
이 사건 이후 내가 휴일에 출근한 사실이 회사에 소문이 났다.
직장 동료들은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재밌다고 웃는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휴일이 다가올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볼 때마다 얘기한다.
"내일은 공휴일이니까 출근하면 안 돼~ 알았지?"
"......"
얼굴이 빨개진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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