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좌절과 분노의 스페인 장기 렌트 도전기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차가 생겼다.
다만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차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페인에 와서 가장 크게 좌절하고 분노했다.
지금부터 쉽지 않았던 과정을 이야기 해 보자.
(이야기를 시작하려다 보니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
스페인에 처음 와서 1년 동안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서 각종 서류 신청, 집 하자 문제 해결, 회사 업무 적응 등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처음에는 차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고 대중교통과 뚜벅이 생활로도 견딜만했다.
다만 1년이 지나고 나니 일상의 단조로움이 반복되었고 생활 속에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차를 장만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기존 집에는 차를 주차할 공간이 없었고 결국 집 하자 문제로 이사를 결정하면서 주차가 가능한 집을 최우선으로 찾았다.
이사가 결정되자마자 차를 구입하기 위해서 다양한 정보를 찾았다.
차를 구입하는 방법은 3가지가 있었다.
신차 구입
중고차 구입
장기 렌트
각 조건에 대해서 다시 한번 비교해보자.
1. 신차 구입
신차는 다양한 브랜드 대리점에서 가장 쉽게 구입할 수 있는데 차값이 문제였다.
스페인에서 차량 구매 시 지불해야 하는 IVA 세금 때문에 차량 가격이 한국보다 비쌌다.
그리고 유럽도 자동차 반도체 수급 부족으로 계약 후 차를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또한 나중에 차를 타다가 처분 방법도 고민되었으며 무엇보다 내가 가지고 있던 예산 한도를 훨씬 넘어서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2. 중고차 구입
중고차를 구입하는 방법은 한국하고 비슷했다.
신차 대리점에서 취급하는 중고차 상품이 있다.
중고차 전문 대리점에서 취급하는 상품이 있다.
한국 '당근 마켓'과 같은 'Wallapop' 사이트를 이용해서 개인 간 거래로 구입할 수 있다.
신차 대리점에서 취급하는 중고차는 제품 신뢰도는 높았지만 가격이 문제였다.
중고차 전문 대리점을 이용하는 경우 차량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바가지를 쓸 가능성이 있었다.
개인 간 직거래는 가격이 제일 저렴했지만 제품 신뢰도가 낮았다.
중고차를 구입하기 위해서 자동차 대리점도 찾아보고, 매일 Wallapop을 검색하고 직장 동료한테도 도움을 구했다.
하지만 가격 대비 좋은 차를 찾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연식이 짧은 차는 대부분 신차에 버금가도록 가격이 높았고 연식이 오래된 차는 내구성이 고민되었다.
그리고 신차와 마찬가지로 나중에 차량을 다시 되파는 것도 고민되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이곳 현지에 오랫동안 살아오신 한국 교포분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한국 교포께서 차 수리비, 보험 등을 고려할 때 중고차 대신 장기렌트를 추천하셨다.
3. 장기 렌트
한국 교포께서 알려주신 장기렌트를 알아봤다.
우선 사는 지역에 있는 렌터카 회사에 차례대로 문의한 결과 렌트비용이 생각보다 높았다.
한 달 렌트비용이 집 월세비용보다 높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던 중 렌터카 회사에서 은행 렌트 서비스를 알아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서 거래 은행에 문의를 했더니 렌트 상품이 있고 이용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회사 직장 동료 남편이 은행에 근무하고 있어서 렌터카 관련 문의를 했더니 사용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매달 지급해야 하는 렌트비가 매우 저렴했다.
기존 렌터카 회사에서 제시한 가격의 1/3 수준이었다.
당장 렌터카 사용 의사를 밝혔고 은행에서 요구한 각종 서류를 제출하였다.
재직증명서, 월급 증명서, 연봉 증명서 등등.....
모든 서류를 제출하고 1주일을 기다렸다.
은행에서 아무런 얘기가 없어서 문의했더니 추가로 서류를 보내 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다시 또 서류를 준비해서 은행에 제출했다.
그리고 다시 또 1주일이 지났다.
차를 언제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해서 다시 은행에 문의했다.
그런데 한참 후 돌아온 답변은 반도체 수급 문제로 차가 없어서 렌트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ㅠ.ㅠ
결국 은행 렌트를 알아보느라 귀중한 3주간의 시간을 허비했다.
이사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주차장 사용료로 한 달에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하기로 했는데 차는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중고차와 렌터카를 고민하던 중 회사에 도움을 요청했다.
회사 실장이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해서 인터넷에서 바르셀로나에 있는 중고차 렌트 서비스 업체를 소개해줬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렌터카 회사에 연락해서 차량 렌트 가능 여부를 확인해줬다.
다행히 중고차 렌트는 재고가 있어서 이용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고 렌터카 회사에서 보내 준 후보 차량 중 연식과 비용을 고려해서 소형 디젤차를 선택했다.
일주일 후 렌터카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선택한 차량이 현재 바르셀로나에 재고가 없어서 마드리드에서 차를 가지고 와야 하는데 탁송 비용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는 황당한 얘기를 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에서 재고가 있는 차를 문의했더니 다시 선택 가능한 후보 차량을 보내줬다.
지난번보다 가격이 조금 상승한 모델이었지만 여러 가지 고민 끝에 회사 실장 추천으로 소형 디젤차를 선택했다.
모든 계약은 전자 시스템을 이용해서 진행되었다.
렌터카 회사에서 알려준 사이트에 접속하니 내 신용 여부를 확인하는 단계를 거쳐 다양한 계약 절차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모든 계약이 마무리되었고 차량 회사에서 계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축하 메일을 받았다.
렌터카 홈페이지에 접속하니 '고객님께서 신청한 차가 배송을 시작합니다'라는 문구가 나왔다.
그렇게 모든 것이 해결된 것으로 생각했고 다음 주에는 차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차량 계약이 끝난 후 1주일을 기다렸다.
렌터카 회사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차량 계약이 끝난 후 아내는 차를 언제 받을 수 있냐고 매일 나를 재촉했고 매달 나가는 주차장 사용료가 신경 쓰였다.
텅 빈 주차장에는 차 대신 내가 출퇴근용으로 타고 다니던 자전거가 넓은 주차 공간을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렌터카 회사에 차를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는데 서류 검토, 차량 점검, 보험 계약 절차가 필요해서 통상적으로 2개월 정도가 소요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헉, 2개월? 중고차 렌트를 받는데도? 그것도 재고가 있다고 해서 선택한 차량인데......ㅠ.ㅠ"
그리고 본사 계약팀에서 다시 연락이 갈 테니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게 일주일 뒤 렌터카 본사 계약 담당자한테 연락이 왔다.
계약서에 기입한 주소지에 내가 실제로 살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니 공공요금 납부 영수증을 제출하라고 했다.
그래서 담당자한테 이번 달에 새로 이사해서 공공요금 납부 영수증은 없다고 사정을 얘기했더니 새로 이사한 집 계약서를 보내라고 했다.
그래서 계약서를 스캔해서 메일로 보냈고 모든 것이 해결된 줄 알았다.
다시 또 일주일을 기다렸다.
지난번 상담을 했던 본사 계약팀 담당자한테 메일이 왔다.
새로 이사한 집의 'empadronamiento'를 제출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Empadronamiento는 한국의 전입신고 같은 서류다.
사실 이사를 하자마자 시청에 empadronamiento를 신청했는데 제일 빠른 Cita가 1개월 후에 잡혔다.
그리고 관공서 서류 발급이 바로 안된다는 것은 스페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담당자에게 이번 달에 이사했다는 사정을 충분히 설명했고 내가 직접 계약한 월세 계약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empadronamiento를 제출하라니......
순간 너무 화가 났다.
가뜩이나 차량을 언제 받을 수 있는지 기약이 없었던 상황인데 다음 달에 empadronamiento를 받아서 서류를 제출하면 차를 언제 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메일을 보는 순간 너무 화가 났다.
한국 같으면 직장 동료를 붙잡고 실컷 하소연을 하고 싶은데 얘기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커피 한 잔을 뽑아 회사 건물 밖 주차장으로 나갔다.
주차장에서 멀리 있는 'Montserrat'을 멍하니 바라봤다.
"내가 여기 와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가 이런 수모와 경험을 하고 있는 건지...... 울화가 치밀었다."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먼 외지에 와서 고생하는 아내 얼굴이 떠올랐다.
너무 미안하고 답답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리로 돌아왔더니 실장이 내 방으로 찾아왔다.
그동안 내가 렌터카 회사랑 주고받았던 메일 내용을 다 알고 있던 실장이 의기소침해 있던 나를 보며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본인은 외국 사람한테 자기 나라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자기가 봐도 렌터카 회사의 대응이 너무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다시 얘기할 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보자는 말과 함께 나를 위로했다.
그 후 실장이 렌터카 회사에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실장의 위로 한 마디에 분노가 녹아내렸고 고마움에 마음이 울컥했다.
정말 고마운 친구다.
(나중에 고마운 스페인 친구 실장에 대한 얘기는 따로 글을 올리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계약은 마무리되었지만 차를 인도받기까지 다시 또 2개월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
끝없는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했다.
결국 긴 기다림 속에 직접 바르셀로나에 가서 차를 받아왔다.
내가 선택한 소형차는 수동 미션 디젤엔진에 연식도 7년이 넘었고 6만 킬로미터를 뛴 중고차였다.
외관도 여기저기 낡았고 흠집도 많았지만 그래도 엄연한 독일산 외제차였다.
한국에서 오토미션 차만 운전하다가 수동 미션 차를 운전하려니 운전이 매번 서툴다.
요즘도 가끔 언덕길이나 출발할 때 시동을 꺼 먹기 일수다.
스페인에 와서 가장 좌절하고 분노하며 어렵게 얻은 차다.
산통 끝에 얻은 생명이 소중하듯이 지금은 우리 부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참 고마운 효자 차다.
이 차(일명 따릉이) 덕분에 스페인에서의 생활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단어가 떠 오른다.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따릉이와 함께 스페인 생활을 즐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