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화. 출국을 준비하자.
원래 계획대로라면 2020년 6월에서 9월 사이에 스페인으로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COVID-19, 일명 코로나."
2019년 겨울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
그 타격이 나비효과처럼 내 스페인 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초 일정으로는 2020년 6월 경에 출국하는 일정이었는데 2019년 발생한 코로나로 인해서 모든 일정이 잠정 중단되었다.
그리고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갔다.
"정말 갈 수 있을까?"
아내한테도 늘 반신반의하며 물어봤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코로나 시국에 스페인으로 갈 수 있냐고 질문을 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내 출국 가능 여부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코로나 사태가 생각보다 장기화되면서 언제 출국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초청장을 보내줘야 하는 스페인에서도 코로나 상황 때문에 행정 절차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2020년 중순에 출국하는 상황을 고려하여 이미 한국에서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던 상황이라서 새롭게 신규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또 하루하루 시간이 흘르면서 중간에 붕 떠버린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려서 조금씩 지쳐가고 있던 시기에 스페인에서 최종적으로 연락이 왔다.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될 것 같아서 더 이상 입국 연기가 안될 것 같다는 얘기와 2021년 3월에는 입국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2020년 말 서둘러 스페인 출국을 준비했다.
처음 나가보는 해외 장기 출국이라서 준비하는 절차와 서류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많았다.
그리고 2년간 체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혼자가 아닌 가족과 함께 출국을 하려고 하다 보니 더 일이 많아졌다.
그때부터 열심히 스페인 관련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각종 서류를 발급하고 분주하게 출국 준비를 서둘렀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우선 스페인 장기 체류를 위해서는 비자 발급이 필요하다.
2년간 현지에서 일을 하는 조건이라서 우선적으로 스페인에서 발급한 노동허가서가 필요했다.
노동허가서가 발급되면 비자 신청 접수를 위한 각종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여권사본, 비자신청서, 노동허가서, 건강보험증명서, 건강진단서, 가족관계 증명서, 범죄 수사경력 회보서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서류는 영문 또는 스페인어로 발급 또는 번역되어야 하고 아포스티유(Apostille) 또는 공증을 받아야 한다.
나중에 가족 비자 발급을 위한 각종 재정보증서류와 은행 관련 증명서 등 다양한 서류를 준비하는데 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었다.
서류 준비가 다 완료되면 주한 스페인 대사관에 방문해서 비자 발급을 위한 서류 접수와 인터뷰가 진행된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 비자 인터뷰 과정에서 서류 준비 미흡으로 퇴짜를 받았다는 경험담이 많이 올라와서 비자 인터뷰 당일 긴장을 많이 했다.
주한 스페인 대사관은 한남동에 위치하고 있다.
카페에서 대사관 주변에 주차가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지하철을 이용해서 아침부터 대사관을 찾아갔다.
대사관 입구는 짙은 빨간 벽돌색 벽에 회색 철문으로 되어 있었고 인터뷰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대사관 안 비자서류 접수처 및 인터뷰 창구는 생각보다 작았다.
투명한 유리창으로 차단된 2개의 접수창구가 있었고 유리창 건너편 사무실에는 중년의 서양 남성과 동양 여성이 각각 창구 앞에 앉아 있었다.
약속된 접수 시간이 되어 서류를 제출하자 한국말이 유창한 서양 남성분이 서류 검토 시간 동안 앉아서 잠시 대기하라고 한다.
혹시나 준비된 서류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살짝 긴장도 되고 어떤 이유로 스페인에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예상 질문 답변을 머릿속에 회상하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5분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한국말이 유창한 서양 중년 남성이 접수증을 주면서 접수가 완료되었으니 집에 가도 된다고 한다.
"어? 인터넷 카페에서 얘기하던 서류 접수 인터뷰 모습과는 너무 다른데?"
예상과 달리 너무 싱겁게(?) 끝나버린 서류 접수와 인터뷰로 인해서 조금 허탈하기도 했지만 서류 접수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한 달 정도 후에 비자가 발급되었고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출국 준비를 위한 분주한 시간이 흘러갔다.
낮에는 남아 있던 한국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인수인계를 위한 작업을 하느라 바빴고 저녁에는 한국에 남아 있는 친척, 회사 동료, 친구 및 지인들과 각종 송별회 모임을 갖느라 바빴다.
스페인 출국 전에 한국에서는 이사를 2번 했다.
스페인에서 사용할 짐을 우선 보내야 했다.
해외 화물은 선박으로 이동되고 보통 3개월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2월에 일찍 날을 잡아서 짐을 보냈다.
해외 이사는 처음이라서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제한된 포장 공간에 2년간 사용해야 할 짐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선별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인터넷 카페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스페인과 한국은 사용하는 전기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에 가전제품 호환성이 낮고 고장 확률이 높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사용하던 모든 대형 가전은 한국에 두고 가기로 결정했다.
제한된 포장 공간에 가구를 가져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서 과감하게 포기했다.
(가구는 스페인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결국 스페인에서 사용할 기본적인 의류, 책, 식기 등을 선별해서 컨테이너에 실어 보냈다.
그리고 나머지 짐은 처가로 보냈다.
결론적으로 살고 있던 전체 짐의 1/3은 스페인으로 보냈고, 1/3은 처가로, 1/3은 폐기했다.
모든 짐을 처가로 보내서 출국하기 전 처가에서 1주일간 하숙(?)을 했다.
처가에서도 친척들과 각종 송년회를 끝으로 모든 출국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이제 출국을 위한 코로나 PCR 검사만 받으면 되었다.
출국 48시간 전에 받은 PCR 검사 결과서를 가지고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2021년 3월, 한국에서 확진자가 100명 내외로 관리되고 있던 시기다.
문제는 스페인을 포함해서 유럽의 코로나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 여파로 모든 해외 출입국이 통제되고 있었고 출국 당일 저녁에 도착한 인천공항은 텅텅 비어 있었다.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녀보았지만 살면서 이렇게 텅 빈 공항 모습을 보기는 처음이다.
스페인 직항 운행도 중단되어 파리를 경유하는 외국 항공사를 이용해야 했고 출발 시간도 새벽 시간이라서 공항은 더욱 한산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정말 이렇게 출국하는구나.
정말 이렇게......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코로나가 엄중한 시기라 스페인 출국을 주변에서 많이 만류하였고 많은 걱정을 하였다.
이러한 주변의 우려를 뒤로 하고 우리는 스페인으로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
아는 지인도 없고 아무 정보도 없는 스페인 작은 시골 도시로......
마음 한 편으로는 흥분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미묘한 생각으로 비행기 안에서 좀처럼 잠을 청할 수 없었다.
내가 늘 동경하던 '해외 생활에 대한' 꿈을 만나러 가는 순간인데,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비행 내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사람 사는 동네인데 그래도 어떻게 되겠지?"
"악착같이 적응하면 별 것 아니지 않을까? 한국인의 부지런함과 끈기로 잘 살 수 있을 거야!"
이렇게 해외 생활은 첫 단추는 시작되었고 지금부터 파란만장한 해외 정착기가 시작된다.
- 02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