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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y Jul 12. 2022

유럽에서 만난 음식 이야기 04

소시지? 피순대? 스페인 모르시야 (Morcilla)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동네 시장 골목에 있는 식당에서 순댓국을 먹었던 기억이 가끔 생각난다.

초등학교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 경험한 순대 맛은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그 이후로 수십 년이 지난 이후에도 순댓국은 어느덧 내 소울푸드가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 월급날에는 동네 단골 순댓국 식당에서 순댓국 한 그릇과 막걸리를 즐기는 것이 하나의 의식(?)처럼 이어졌다.

순댓국 머리 고기에 새우젓 새우 하나를 얹어서 막걸리 안주 삼아 먹으면 그날 하루가 행복했고 열심히 한 달 동안 일한 나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기분이었다.




해외에도 순대와 비슷한 음식이 있다는 얘기를 방송에서 몇 번 본 적 있었다.

독일 출장을 갔을 때도 비슷한 소시지는 먹어보았지만 순대와 비슷한 음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곳 스페인에서 우리가 먹던 순대와 비슷한 음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루는 동네 마트에 고기를 사러 갔는데 고기 진열대에 섞여 있는 순대와 똑같이 생긴 음식을 발견했다.

평소 새로운 음식에 대해서 조금 까다로운 아내를 설득해서 용감하게 하나를 구입해 집으로 왔다. 

집에 오자마자 끓는 물에 마트에서 사 온 정체모를 순대처럼 생긴 것을 살짝 데쳐서 먹어보았는데 내가 기대하던 순대와는 많이 달랐다.

우선 순대 안에 구성물이 달랐고 맛도 달랐다.

독특한 향신료를 첨가한 덕분에 순대 맛을 기대했던 나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 똑같이 마트에 갔는데 예전에 구입한 순대와는 약간 다른 모습의 순대를 발견했다.

내용 물에 쌀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아내를 설득해서 하나를 구입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지난번과 같이 끓는 물에 데쳐서 먹어보았다.


"응? 와!! 대박~~"


한국에서 먹던 찹쌀순대와 싱크로율 90% 이상의 맛을 내고 있었다.

그 이후로 종종 쌀이 포함된 순대를 사서 끓는 물에 삶아 먹기도 하고, 프라이팬에 구워 먹기도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

그리고 돼지 머리 고기를 사서 순댓국도 도전해봤다.


얼마 전 만난 스페인 친구한테 순대와 관련된 음식에 대해서 물어봤다.

일명 피순대라고 하는 모르시아 (Morcilla) 스페인에서 즐겨 먹던 전통 음식이라고 한다.

다만 지역별로 모르시아 제조방법이 다르고 내용물이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쌀이 들어간 모르시아는 북 스페인 스타일이라고 알려주었다.

한국에도 비슷한 음식이 있다고 얘기해줬더니 많이 궁금해한다. 


그래서 모르시아 정보를 조금 찾아봤다.

모르시아는 일반적으로 북 스페인 부르고스 지방이 가장 유명한데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피순대처럼 소나 돼지 피에 양파, 쌀, 동물성 기름, 소금과 향신료가 기본 재료로 활용된다. 

부르고스 지역에서도 마을마다 서로 다른 모르시아를 만들고 있어서 매우 다양한 맛을 낸다고 한다.


다만 마트에 가면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진열대에 보면 순대와 비슷한 다양한 음식이 진열되어 있는데 잘 살펴봐야 한다.

모르시아는 북 스페인에서 유래된 피 순대와 비슷하지만 보티파라 (Botifarra 또는 Butifarra)는 카탈루냐 지역에서 만들어 먹는 소시지를 의미한다. 

보티파라도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잘 살펴보고 구매를 해야 한다. 



스페인 모르시아 (맛과 모양이 한국 쌀 순대와 비슷하다.)


다양한 모르시아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식당 메뉴에서도 즐겨 찾아볼 수 있는 모르시아 (기름에 살짝 튀겨서 나왔는데 맛이 좋았다.)




가뜩이나 그리운 한국음식 중 하나인 순대.

내 소울 푸드를 이곳에서 그나마 비슷하게 즐길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에서 먹던 그 맛을 재현하기는 어렵지만 가끔 생각나고 아쉬울 때 충분히 그 자리를 메꿔줄 수 있는 음식이다.


이곳에서도 월급날이면 한 달 동안 고생한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맛있는 음식을 즐긴다.

다만 한국에서 월급날 챙겨 먹던 따뜻한 순댓국과 막걸리가 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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