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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아리 Mar 08. 2022

K-힙스터 반성문

https://brunch.co.kr/@namsanfilm/40

최근 흥한 글인데, 읽고 느낀 바가 많다.

나는 이 글의 K-힙스터의 조건을 꽤 충족한다. 글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라이언 맥긴리와 유희경을 엮은 큐레이터를 까면서 아는 척을 할 수 있겠다’였다. 그의 사족을 보고 글이 흥한 걸 알게 되었는데, 유명한 이 글 역시 나의 허세를 위해 써먹을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지적 허영을 위해 본능적으로 잔머리가 굴러가니 저자가 말하는 영락없는 K-힙스터인 셈이다.

글에서는 저자가 잘 아는 뮤직비디오 감독을 예로 들었지만 직업을 작가로 바꾸면 딱 내 이야기다. 나만의 레퍼토리는 다음과 같다.



면허를 취득한 후 서른 살, 나는 제2의 직업을 찾기로 결심했다. 마침 2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쉬엄쉬엄 일을 하게 되어 1년은 쉬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고 다음 1년은 그 직업을 향해 열심히 노력을 하기로 했다. 첫 1년 동안 해외여행을 하며 중국어를 배우고 수영과 크로스핏을 하면서 책을 100권가량 읽었지만 원하는 일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책을 읽다가 이런 거라면 나도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평소에 음악이나 체육을 좋아해서 둘 중 제2의 직업이 있을 줄 알았고, 살면서 글을 쓸 생각은 해 본 적이 없기에 뜬금이 없긴 했다. 곧 내 재능이 지극히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매일 조금씩 글을 쓰면서 천천히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중이다. 조만간 책을 내고 싶다.

- 서울 홍대에 서식하는 어느 K-힙스터 -



K-힙스터에 잘 어울리는 서사다. 이 서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거의 5년이 넘도록 책 한 권을 못 냈다. 이제는 매일 글을 쓰지도 않으니 필력이 날카롭게 벼려져 있지도 않고 책도 거의 안 읽어서 영감은커녕 최신 동향을 알지도 못한다. 실상은 글이라는 분야 저 바깥사람인데 작가 레퍼토리만 장착해서는, 이성을 꼬신다!

글의 사족에는 저자가 나를 때린 것이 아니라고 하였으나 나는 글 초반에 심하게 여러 군데를 얻어맞았는데,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있는데 재능도 없고 노력도 귀찮다’는 구절 하나로 구타당한 부위들을 요약할 수 있다. 처음 작가가 되기로 생각했던 계기가 하루키였다. 당시에는 하루키가 되고 싶었다. 서른을 넘어 시작한 글쓰기, 세련되게 묘사되는 욕망, 돈과 시간이 풍족한 전업 작가와 세계적인 명성이 탐났다. 시작부터 K-힙스터스러운 작가 지망생질이었을 뿐 동기도 영감도 없으니 어쭙잖은 습작이나 깨작깨작 쓰다가 제대로 된 단편집 하나 없이 5년을 질질 끌어온 것뿐이다. 가끔 레퍼토리로 자기소개를 하는 데다 나를 부러워하는 누군가는 이 서사에 감명을 받아 K-힙스터질을 시작할 테니 저자의 말대로 사회의 독소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

다행히 작가라는 것은 뮤직비디오 감독처럼 이성에게 모양새가 나지는 않으니 불순한 의도의 K-힙스터는 아닌 것 같다. 게다가 글로 무리 지어 친목질을 하지는 않는 데다, 약물을 할 만큼 시간이 많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아서 큰 사회의 병폐가 되지 않을 거라고 위안을 삼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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