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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Sep 23. 2021

뭐라도 해야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살려고.

매일 늦게까지 원고를 쓰면서 불규칙한 식사를 하고 피곤에 절어 잠들던 그저 그런 하루 중 또 어느 날.  


그날도 11시 반쯤인가 뒤늦게 못 챙긴 밥을 꾸역꾸역 먹고 체중계에 올라갔다가, 악! 소리를 질렀다. 41년 인생 최대 몸무게를 두 눈으로 똑똑하게 바라본 서늘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쪘다 빠졌다 해도, 15년 동안 총체중의 10%가 넘는 수준의 변화는 없던 몸이었다. 긴 세월 동안 70대 초반의 몸무게였으니, 다시 말해 7kg가 아래 위로 시소처럼 움직인 적은, 지난 15년 동안은 없었단 얘기다. 물론 그리 크지 않은 내 키에 저 몸무게가 건강하거나 날씬하다고 정의할 만한 숫자인 적은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15년을 큰 변화 없이 살았다 생각했는데, 80kg에 가까운 몸무게를 눈으로 본 순간, 아찔해지더라.


다음 날, 바로 친한 친구의 추천을 받아 방송국 근처 피트니스 클럽을 찾았다. 근력 운동이라니, 대체 이게 얼마만인가. 2010년 초반에 PT를 받아본 이후로, 요가나 달리기를 가끔 하는 것 외엔 피트니스 센터에 간 적은 없었다. 좀 긴장되기도 하고, 행여나 '눈퉁이'를 맞진 않을까 겁도 살짝 났던 게 사실이다. 이 나이에.


고백하건대, 한국 나이로 - 빌어먹을 한국 나이 뭐지 왓 더 코리안 에이지 - 마흔 하나가 되고 나서는, 어디 가서 나이를 말하는 걸 주저하게 되는 때가 있다. "에? 40대요? 와 - 옛날 사람"이라는 반응을 맞닥뜨리면, 이젠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아저씨구나 싶기도 하고, "아, 넵!"이라는 반응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조금 억울한 느낌도 들고(?), "아? 네.."라는 반응을 마주하면, 관리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니까.

뭐래, 들쑥날쑥이다. 물론 그중에 누구라도 환영할 피드백은 "어?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요"겠지만, 이젠 그런 가능성도, 저기 구석에 오래 둔 나프탈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걸로 사라져 간다는 걸 부인할 도리는 없다.


"살을  빼야   같아서요."라고 말하곤 친구에게 추천 받은 센터에 바 등록을 했다. 그리고 일상 생활 패턴에 대해 상담을 했다. 수면도, 식사도 너무나 불규칙하고, 이렇다  휴식이란게 없는 나의 하루를 줄줄이 늘어놓는 ,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지만.


"혹시 회원님, 특별한 목표라도 있으신가요?"

"글쎄요. 그냥 건강해지고 싶어요."

"요즘 유행인데, 나중에 바디 프로필이라도 찍으실 생각이신가요?"

"글쎄요... 어휴, 제 나이에 뭘요. 그 정도로 몸이 좋아질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아마 그렇게 되긴 너무 힘들 거예요."



그게 다였다.  좋게 너무나도 성실하고 열정적인 트레이너 선생님을 행운처럼 만나, 이제  3개월째 운동을 하고 있고, 나름 식단 조절도 하고 있다. 다행히도 나의 운동 목표는 '바프(바디프로필)' 아니었어서, 몸에 모자란 근육을 건강히 키우고, 쓸데없이 불어난 체지방을 줄이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물론 매일 같이 센터에 들러 운동할 짬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최대한 습관만 붙이자,  10분이라도 하고 나오자는 마음으로 가곤 하지만,  상황에,  주제에 지금 그게 어딘가 싶기도 하다.

다된 닭가슴살에 굳이 카레 뿌리는 신공으로 욕먹었던 식단 / 제로 칼로리 사이다 중에는 나랑드가 최고란다.

나의 지독한 하루 스케줄을  아는 이재현 트레이너 쌤은  혹독한 식단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단탄지 비율만 제대로 잘 맞춰 먹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평소에  쉬라고 권해주는, 나름 너그럽고 서윗한 짱짱맨인 데다가, 운동에 있어선 진심이신 FM이라,  1분도 낭비하지 않도록 운동을 시킨다. 물론 제일 좋은 ,  스스로 운동의 원리와 이유를 터득할  있게 도와주시는 덕분에, 3개월 동안 건강을 많이 되찾게 됐단 거니까, 이미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본다.

오늘까지  90 동안 7kg 감량한 채로, 아픈데 없이 운동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으니까.

모든 음식에는 소스가 필요하다고 설파하는 소스의 제왕답게, 샐러드 소스를 반드시 뿌려먹는 못난 회원 식단


살려고 시작한 운동인데, 죽으라고 했더니, 점점 더 잘 살게 됐다. 비루했던 몸매가 조금씩 바뀌어 가고 - 스틸 비루 & 초라 though -, 탄탄한 근육도 조금씩 자리 잡는 걸 느끼니 만족감도 크다. 애초에 바프 같은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시작했기 때문에, 어차피 이 게임은 아주 기나긴 장기전이 될 것이다.

10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억지로 숨을 참은 '사람다운' 사진을 남길 목표도, 벌크업을 해서 어디 대회에 나가려던 것도, 미친 듯이 체중을 감량해 옷을 모조리 새로 사보겠다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이 과정이 즐겁다고 느낀다. 트레이너 쌤이 매일 봐주는 식단 사진에, '금지품목'이 낄 때면, 사진에 댓글을 달아가며 그저 깔깔 웃고 만다. 쌤은 '그거 하나 먹었다고 인생은 반드시 달라진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도 못 먹고 이걸 할 이유는 없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받아친다. 물론 '회원님, 제가 두고 보겠습니다'로 끝나는 잔소리 덕에 '아유, 오늘부터 당장 더 잘 챙겨 먹을게요'로 끝나며, 서로 피식 웃고 말지만.


고구마를 삶는 일은 으레 밥솥이 한다만, 밤고구마를 삶은 동안의 내 기분은...




살려면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시작한 운동이 꽤 재미있어졌다. 여세를 몰아서, 애플 워치를 매일 체크해 가며, 하루 800kcal 이상의 열량을 소모하는 운동 습관을 매일 채워가려고 노력한다. 전보다 밖에 나가 달리는 시간도 늘었다. "추석 연휴 동안 처량하게 고구마에 닭가슴살만 먹을 일은 아니니, 먹고 싶은 거 드시고, 20km만 뛰고 오세요"라는 트레이너 쌤 말에, 진짜로 먹고 싶은 거 좀 먹고, 홈트도 하고, 누적으로 17km까지는 뛰어뒀으니, 내일까지 조금 더 뛰면 금요일 수업 전까진 괜찮겠지 싶기도 하다.

물론 "작은 사탕 하나, 초콜릿 한 조각에도 몸은 달라집니다. 세상에 몸만큼 정직한 건 없습니다"라고 계속해서 일깨워주는 열정의 트레이너 쌤 덕에, 앞으로도 꾸준히 운동하고, 식단도 건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글쎄 뭐랄까.

90일 이전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훨씬 더 건강해진 것만으로도, 운동을 그날 당장 시작한 것이 참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해준 트레이너 쌤이, 조금 보태어 말하면 생명의 은인 같다.


2022년 1월, 바디 프로필을 찍어볼 것이다. 그로부터 90일 뒤인 4월에도, 또 90일 뒤인 7월에도.


처음부터 바프를 찍기 위해 운동한 게 아니라, 건강해지려고 운동을 하다 보니 변화가 보이고, 성취감이 느껴지고, 재미있어서, 이대로 계속 열심히 해서 한번 촬영해볼까 하는 맘으로 결정했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쩍쩍 갈라지는 데피니션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어느덧 마흔한 살인 내가, 일상의 쳇바퀴에서 잠시 빠져나와, 내 선택으로, 아직까지 질리지 않고 - 닭고기 먹는 걸 좋아해서 진짜 다행 - 힘들고, 졸리고, 피곤할 때도, 꾸준히 이 길을 걸어왔구나 하는 뿌듯한 이정표쯤으로 여겨볼 요량이다.

물론 생각보다 뿌듯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나를 다독거려볼 이유 하나쯤은 만들었으니, 이 길의 끝에선, 뭐 조금이라도 나은 뭐라도 되어 있지 않을까.


역시, 뭐라도 즐겁게 해야지. 잘 살려면.


닭가슴살이 지겨울 땐, 역시 오리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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