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과 틀린 것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외않됀데?” “일해라 절해라 하지 마” “정말 어의없네” “갈수록 미모가 일치얼짱”
관련된 이모티콘까지 나올 정도로 소위 ‘황당한 맞춤법 사례’들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실, 실소를 일으키는 이러한 맞춤법들은 웬만한 사람들이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떻게 써야 바른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한번 웃고 넘길 수 있다. ‘되’ 와 ‘돼’의 구분처럼 몇몇 맞춤법들이 가끔 헷갈릴 수는 있어도, 실제로 맨 첫 줄에 적은 것처럼 쓰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평소 맞춤법에 예민한 나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틀린 맞춤법을 쓰는 경우를 실질적으로 체감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요즘 들어 꽤나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 이번 학기 수업 중에 어느 교수님이 항상 ‘다르다’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틀리다’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었다. 수업의 특성상 이 단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은데, 한 번도 이 단어를 바르게 사용하신 적이 없었다. 심지어 교수님께서 “A랑 B랑 의미가 같아요? 틀려요?”라는 대답에 어떤 학생이 “달라요”라고 대답했는데 “틀리죠?”라고 말씀했던 적도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 학생의 대답이 틀렸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 수업이 우리말의 바른 사용을 다루는 수업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교수님의 언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러면서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다른 교수님들은 어떻게 사용하고 계실까?’ 다른 수업에서도 교수님들이 어떻게 사용하시는지 수업을 들으며 확인해보았다. 놀랍게도, 내가 듣고 있던 수업의 다섯 과목 중, 세 분의 교수님들께서 ‘다르다’를 ‘틀리다’로 잘못 사용하고 계셨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연배가 있으신 교수님일수록 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몇 분의 교수님을 통해서 본 이 사실을 토대로 일반화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우리말을 올바르게 쓰는 방법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유난히도 이 표현을 틀리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평소에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자’라는 가치관을 두고 살아왔었기 때문에, 다른 것을 틀리다고 말할 때 그것이 틀린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발심 때문일 것이다. 영어로 ‘Different’와 ‘Wrong’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는 없는데, 왜 우리말에서는 이를 잘못 사용하고 있을까? 나는 이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여겼다.
이러한 원인은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주입식 교육’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학생 때부터 어떤 주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논의하는 시간을 갖기보다 어떤 것을 외우고 그것을 시험 치르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있다. 그러면서 정답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며 일희일비하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다른 생각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별로 없으며, ‘이건 맞는 것’, ‘이건 틀린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거기에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고 남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가 한몫했다. 윗사람에게 질문을 하면 상부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라고 생각하고, 다수가 지닌 생각과 다른 생각을 얘기하면 질타를 받게 되었다. 어느 입장에서 골고루 생각하기보다 하나의 입장만을 고수하는 환경을 만들어서 ‘다른’생각을 하는 사람을 ‘틀린’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각자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퍼지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표현이 매스컴을 통해 집중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인식을 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 같다. 잘못 사용하고 있는 말은 바로 인지하고 고치면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분위기는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사실, 나 같은 경우도 교수님의 발언이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곧바로 지적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수업시간에 말한다면 수업에 방해가 될 것 같고, 다른 학생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교수님께 따로 가서 말하기에도 교수님과의 사이에 괜한 부스럼을 만들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름’을 ‘틀림’이라 표현해도 그것이 틀리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이러한 걱정들을 만드는데 작용했을 것이다.
다름을 다르다고 인정하는 사회,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생각의 전환과 용기가 동시에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앞으로 교수님의 맞춤법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난감한 상황에 직면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바뀐다면, 그 상황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한 사회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한두 사람의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은 주변 사례를 통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소한 것이라도 한 번쯤 실생활에서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의 행동이 다른 누군가의 행동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