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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융 Oct 29. 2017

상처를 돌보는 법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만들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가, 식탁 위에 내 얼굴만 한 호박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빅터가 주방으로 들어서면서 물었다. 


“너 그게 어디서 난 건 줄 알아?”

“아니, 어디서?”

“내가 얼마 전에 버린 거야. 

얼마 전에 호박을 사서 먹고 속을 파낸 걸 비료 퇴비에 넣어 놨는데, 오늘 가보니까 호박이 나있더라.”


사연이 있는 호박이었다. 내가 신기해하며 호박을 보는데, 그 겉모양을 보다가 어느 한 부분이 마치 그곳에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듯, 나머지 부분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이번엔 빅터의 옆에 있던 다른 친구 티아고가 덧붙였다.


“그게 어떻게 생긴 줄 알아?”

이번에도 나는 몰랐으므로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대답했다.

“호박이 자랄 때, 짐승들이 와서 호박을 물면서 상처가 생기면, 호박이 자라면서 그걸 스스로 그림을 그리면서 덮는 거야.”


호박은 자신에게 난 상처를 그림을 그리는 행위로써 치유해 낸 것이었다. 나는 다시 그 호박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곧 나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부수였다. 


부수는 내가 태국의 치앙라이에서 만난 화가였다. 그녀는 파파의 소개로 인해 내가 만난 인연이었는데, 파파는 몇 년 전부터 그녀의 그림을 우연히 보고는 그녀의 작품 활동을 후원하고 있었다. 파파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녀의 작품을 사들이고 그 작품들을 나에게 보여주고는 했는데, 나는 그녀의 그림을 보면서, 내가 몇 년 전 노르웨이에 있는 뭉크 미술관에서 비명이라는 작품을 바라보며 느꼈던 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녀의 그림을 보면 내 마음은 이상해졌다. 마음이 불에 데인 것처럼 후끈대며 아려왔다. 게다가 어떤 아픈 감정을 열렬히 토로해 놓은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우리가 hill tribe라고 부르는 부족 출신으로써, 많은 부족 출신민들이 그렇듯 주민등록증도 없었고, 치앙 라이를 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에 공문을 보내서 협조를 받아야만 했다. 때문에 그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치앙라이 지역을 벗어난 적이 없었고, 어떤 정규 교육도 받지 못했다. 


그 지역의 화가들은 부수를 마치 자신들보다 한참 밑인 양 대했다. 아마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다는 점과 부족 출신이라는 점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소견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그림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을 단순히 재현해 내려는 그 노력’과는 달리, 부수의 그림에는 진짜가 있었다. 


“이런저런 유파에 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진정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남기고 싶다”는 반 고흐의 말처럼, 그녀가 자신의 그림 안에 가장 담아내고자 하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니고, ‘진짜’였다. 자신 안에 살아있는 그 무언가였다. 


어떤 예술 작품들을 보면 그 작품을 넘어서서 그것을 창조해낸 인간의 감정이나 영혼이 보인다. 뭉크와 반 고흐의 작품들, 펠리니와 파울로 소렌티노의 영화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 그리고 부수의 작품들이 나에게는 그랬다. 그녀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대화는 별로 필요치 않았다.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내가 만난 부수는 아주 조용했고 우리는 같이 보낸 대부분의 시간을 정적 속에 보냈다. 그녀에 삶에 대해 내가 아는 것 또한 별로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만남은 그것으로 충만했다. 나는 말 대신 그림 속에서 그녀의 고통과, 슬픔, 희망, 그리고 삶에 대한 의지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보며, 내 자신의 안에서 똑같은 존재들을 발견해냈다.

 

부수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단순히 어떤 직업을 말하거나 기술적으로 어떤 그림을 ‘잘’ 흉내 내거나 그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의 깊은 원천으로 들어가 상처를 달래며 치유하는 일이었고, 자신의 영혼에 닿는 행위였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대부분 내면에 나있는 자신의 상처를 조그만 밴드로 붙인 뒤, 마냥 모른 척하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그 방치된 상처는 더 깊은 내면으로 흡수되어 주체하지 못하고 문득문득 우리의 혀를 통해서, 손과 발을 통해서 토해내듯 터져 나온다. 그 순간 우리는 놀란다. 자신이 그럴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 마치 우리가 매일 입는 옷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린다. 결국 우리는 그 상처의 유무조차 잊고 살아간다. 내가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엔,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 어른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변의 어른들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무의 뿌리가 우리가 볼 수 없는 땅 밑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갈래로 뿌리를 뻗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상처를 좀 더 빨리 돌보지 않으면 이 상처는 여러 가지를 뻗어, 마침내는 우리 인생의 전반에 적든 크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당장 상처를 알아채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상처를 돌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나의 경우처럼 노래와 연극으로써, 도스토옙스키의 경우처럼 글로써, 부수와 호박의 경우처럼 그림으로써 상처를 토해내고 그 행위 속에 자신의 상처를 돌아볼 수 있다. 어떤 거창한 작품 활동이 될 필요도 없다. 일기장에 끄적이는 글에서, 누군가와 꾸밈 없이 진정으로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우리는 치유로 통하는 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만약 우리의 상처를 들여다본다면, 그 뒤의 흔적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정말 아름다울 것이다. 부수의 그림이 그랬고, 호박의 무늬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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