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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융 Nov 14. 2017

나에게 달린 것, 나에게 달리지 않은 것

브라질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첫 번째로 흥이 많은 나라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러한 인상은 내가 브라질에 세 번을 왔다 갔다 하며 체류한 기간이 일 년 반을 넘는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브라질의 어디서나, 역 앞의 공원에서건, 식당에서건, 공터에서건, 번화가에서건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고, 한 무리의 춤추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의 삶에는 음악이 녹아있다. 두 번째 인상은 삶이 여유롭다는 것이다. 내가 여유롭다고 할 때, 그것은 단지 경제적인 풍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브라질인들에게는 특유의 ‘느림의 미학’이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시간을 들여서 하며, ‘다 괜찮아’라는 낙천적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돈을 더 벌기 위해 가게에 나와있는 시간을 늘리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들은 아침 느지막이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갈 때가 되면 재빨리 문을 닫는다.


당연하게도 나는 브라질에서 생활을 하며 그 외 다른 점들 또한 알아가게 되었다. 그건 꼭 길거리의 음악과 춤을 보는 것처럼 행복한 일만은 아니었다. 브라질에서 ‘느림의 미학’은 알고 보니 사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컸던 것이다. 빨리빨리의 대명사 한국인으로서 이탈리아에서 생활을 하며 어느 정도 느린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자부했는데, 브라질은 이탈리아의 세배는 더 했다. 슈퍼마켓에 가서 계산대에 물건을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직원이 갑자기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생각났는지 나를 앞에 세워 둔 채로 다른 직원과 십 분 이상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었고, 배 시간은 제 시간인 법이 없었으며, 지인과 약속을 하면 짧게는 한 시간에서 길게는 몇 시간을 늦는 때도 허다했다. 도움이 필요해 찾아간 경찰서에서 경찰들은 새로 산 핸드폰 이야기를 삼십 분간하며 나를 대기하게 했고, 작업을 같이 하고 있는 배우들은 작업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모이기로 한 시간보다 한참이나 지나서 휴대폰에 문자를 받곤 했는데, 문자의 내용은 다양했지만 어쨌든 담고 있는 내용은 결국 가지 못한다는 거였다. 대체 이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화를 내는 나와 달리 그들은 이런 저러한 상황이 닥쳤을 때에도 마치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느낀 바로는, 브라질은 의무보다 개인의 자유가 한참 위에 있는 나라였다. 혹자는 그 이유를 분석하며 오랜 기간의 노예제도 때문이라고 했다. 그 시절에 일은 누군가가 강제로 시켜서 하는 것이었고, 노예 해방이 되고 난 이후부터는 그전부터 쌓여 있던 일과 의무에 대한 반감이 터져 나오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하기에는 노예제가 폐지된 한참 후에 브라질로 이민을 온 이탈리아 가족 직계 후손인 내 친구도, 일이나 의무에 마치 일말의 책임감도 가지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그뿐만 아니라, 흑인이 아니면서도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주위에 수 없이 찾아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참았지만, 여러 상황에서 이런 태도들을 수없이 마주할 때마다 맘 속으로 분노가 쌓여갔다. 무엇보다 참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앞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때였다. 아무 말 없이 작업실에 나오지 않거나,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네 시간이 지나 모습을 드러내도, 배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 선장이 도착해도, 그들은 미안한 기색이 별로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구는 그런 태도는 상대방의 처지에 대해서 관심이 전혀 없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리고 나로선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고 심지어 몇 번은 참다못해 언쟁을 벌인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지인이 옆 도시로 향한다며 같이 갈 의사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가고 싶었지만, 그때까지 쌓여 온 경험으로 인해 나는 바로 예스를 외치는 대신 언제 돌아올 거냐고 되물었다. 그가 늦어도 삼일 안에는 꼭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같이 가겠다는 결심을 했고, 빠르게 준비를 하고는 그의 차에 올라탔다. 내가 지내던 곳은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듯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이었기 때문에 나는 산에서 나갈 때나 들어올 때 지인들의 차에 의존해야 했다. 


우리는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시에 도착했고, 그와 나는 삼일 후에 만나기로 하고는 각자 헤어졌다. 삼 일이 지나고, 돌아갈 날이 밝았을 때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얼마 들리지 않고 그가 전화를 받았다.


‘언제 가나?’


‘어딜?’


‘오늘 돌아간다고 했잖아.’


‘아, 오늘이야? 아, 근데 어쩌지. 나 하루 더 머물고 싶은데.’


사실 예상한 일이었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다 보니, 이제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전화를 끊고 급하게 하루 더 잘 곳을 알아보다가, 다행히도 지인이 자기가 지내는 집에 있는 방 한 칸을 내어주기로 했다. 다음 날이 밝았다.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근데 하루만 더 있다 가자’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인에게 하루를 더 지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참 고맙게도 그녀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다시 다음 날이 되어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마침내 그가 돌아가겠다며 세시쯤 만나자고 했다. 나는 집을 흔쾌히 내어준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그녀의 집에서 나왔다. 돌아가기 전에 친구를 만날 생각이었다. 세시라면 아직 네 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심결에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메시지가 몇 개 도착해 있었다.


‘미안한데, 나 삽 십분 안에 가봐야 하는데. 만날 수 있어?’


‘나 가야 돼.’


메시지에 답하는 대신 전화를 걸었다.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어디냐고 묻자, 그는 이미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중요한 일이 생겼다며… 버스에서 내린 뒤 숲 앞에서 전화를 걸면 자기가 숲 초입으로 나오겠다고 했다. 그러냐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반대로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가서 얼굴을 마주하면 뭐라고 따지기라도 할 작정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먼저 두 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가야 했고, 기차에서 내려서는 한 시간에 한 대가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또 그 뒤로 한 시간을 더 가야 했다. 


숲길 초입에 이르러 나는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반가운 목소리로 그가 전화를 받았다. 내가 숲 초입이라고 하니 그가 바로 나가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바로 나오겠다는 그 말에 크게 신뢰가 가진 않았다. 한 시간 이상을 분명 더 기다려야 할 터였다. 나는 털썩,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건너편에 보이는 고속도로 위로 차들이 쌩쌩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한 생각이나 감정에 몰두하다 보면, 분명 지치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안고 네 시간이 넘는 여정을 오다 보니, 화가 났던 마음도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이제는 거의 해탈한 경지가 되었다. 나에게 있어 더 이상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그가 늦는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제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느냐’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나는 핸드폰에 저장해 두었던 음악을 틀었다. 내가 좋아하는 테테 에스핀돌라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모든 곳에서 난 경이를 노래하네, 그러면 비의 냄새가 나고, 불이 켜지고, 맥박이 뛰기 시작하고, 햇빛이 나지. 모든 음을 내는 건 물 한 방울, 바람처럼 잎사귀를 만지는 일… 이 순간 모든 것은 변하고 사랑을 불어넣네.”


귀에서 들리는 음악을 따라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사람들 외에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어느새 웅얼거리던 소리는 노래방이라도 온 것처럼 쩌렁쩌렁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나는 몸까지 일으켜 스텝도 밟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콘서트였다고 하면 어감상 더 좋았겠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혼자만의 生쇼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 몇 대가 속도를 줄이더니 창문을 내려 나 하는 양을 유심히도 보았다. 무아지경에 빠진 나에게는 창피함도 없었다. 누군가는 창 밖으로 손을 내밀고 환하게 웃으며 박수까지 쳐주었다. 나는 고개를 까닥하고 마주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노랫말이 마치 주문이기라도 했던 건지, 한껏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生쇼를 하던 그 순간 모든 게 변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했다’는 말은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 사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변한 것이다. 내가 나의 지금을 충만하게 만드는 순간, 어떤 원망이나 짜증 같은 감정은 사라진다. 사실, 아무리 친구를 원망하고 짜증을 내도 바뀌는 것은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있다면 타인인 그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나의 기분일 것이다. 


에픽테투스는 말했다.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린 일이고,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린 일이 아니라고…. 

그는 나에게 달린 게 아닌 것을 나에게 달린 것이라 생각한다면, 거기에는 좌절감과 비참함이 있을 것이며, 화가 나서 신과 인간을 모두 비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만약 우리가 자신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반면에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도 우리에게 강요할 수 없을 것이고 방해하지도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혀 해를 입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에픽테투스의 말처럼 우리의 분노와 짜증은, 기대로부터 동 떨어진 현실과의 괴리를 메우려는 우리의 노력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일지 모른다. 내가 화가 난 것은 그가 내 예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는 배신감에 있었다. 그에게 배려심이 없다며 탓할 수도 없었다. 그의 배려심 이야말로 나에게 달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 대부분의 것이 나에게 달린 것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내 기대대로 움직여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순간에 나에게 달리지 않은 것들을 바꾸고 싶어 하고, 그것들이 당연히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엉뚱한 대상을 원망하며 그 대상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지금'마저 망친다.



어느 정도 쇼가 끝나니, 저 멀리서 차 한 대가 울퉁불퉁한 숲길로부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내가 손을 흔들었다. 차 밖으로 한 손이 나오더니 손을 마주 흔들어 주었다. 마침내 도착한 차에서 친구가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내렸다. 그리고는 정말로 미안하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오히려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그 이후로도 브라질에서 생활하면서 비슷한 일들이 수도 없이 생겼다. 하지만 그 상황 안에 존재하는 내 태도는 브라질 특유의 그 여유로운 태도에 한걸음 더 다가간 것 같았다. 이제 웬만한 상황에는 화를 내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하늘이 나를 시험하려 하는 것일까? 다음 이야기에 나올 ‘그’를 만나면서 나의 여유로움에는 위기가 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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