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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융 Nov 15. 2017

나약함 나누기

연못 주위에 앉아 잉어들에게 밥을 던져 주고 있는데, 활짝 열린 대문 사이로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 봐도 태국인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대문 앞에서 고개를 두리번 거리고 있던 그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선 나를 보고 그녀가 귀가 말린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서 며칠만 묵을 수 있을까요?” 


나는 대답 대신 그녀를 파파의 작업실로 데려갔다. 그녀를 발견한 파파는 낯선 외국인 손님에 신이 난 듯 다짜고짜 그녀의 그림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파파가 그림을 다 그리고, 그제서야 우리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상황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안나였다. 그녀는 벨기에로부터 왔으며, 한달 간 근처의 절에서 위빠사나 명상 수행을 했고, 며칠 뒤에 여기서 기차를 타고 방콕 공항으로 향한 뒤 거기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안나는 덧붙였다. "근데 돈이 없어요…." 이미 길가의 여러 집에 며칠간 머물 수 있는지 부탁해 보았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고 했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얘기를 듣던 파파가 나에게 빈 방에 이부자리를 좀 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안나를 데리고 비어 있는 갤러리로 향했다. 맨 바닥에 푹신한 이불 몇 장을 겹쳐 놓고, 베개를 올리고, 그 위에 모기장까지 쳐주니 금방 이부자리가 마련됐다. 그녀는 그 동안 어쩔 줄을 모르는 듯 몸을 잠시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있었다. 불안해 보였다. 사실 대문 앞에서 그녀를 본 그 순간부터 느꼈다. 그녀는 뭔가 불안해 보였으며, 그녀의 눈빛에는 힘이 없었다. 잠시 뭔가 해줄 게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녀를 두고 갤러리를 나왔다.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한 것일지도 몰랐다.


몇 시간 뒤에 다시 안나가 있는 갤러리를 방문했다. 그녀는 조그만 공책에 붓을 꺼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 공책에는 빽빽하게 그날 그날의 생각과 감정이 적혀있었다. 그녀의 그림은 자신을 기분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물이 가득 섞인 파란색으로 가득했다. 나도 옆에 앉아 붓을 들고 그녀와 나란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안나에게 물었다.


“왜 태국까지 온 거야?”


“그냥…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도, 내가 뭘 맞게 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몰랐어… 여기 오면 뭔가 답이 보일 것 같았는데…”


“그래서 답은 찾은 것 같아?”


“모르겠어.”


먼 곳으로 떠나와서도 그녀의 방황은 멈출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게 괴로웠다. 그녀의 모습에서 몇 년 전에 내가 앓던 심한 방황이 떠올랐다. 그땐 삶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나날들의 반복이었다. 나는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누군가의 방황에 대해 내 잣대로 무언가를 덧붙인다는 것은 오만인 것 같았다. 나는 그대신 나를 지나쳐갔고, 지금도 종종 돌아오는 방황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열어 보이니 그녀도 점점 자신을 열어 보였다.


 누군가 내 앞에서 자신의 약점과 슬픔, 고통을 솔직히 드러낼 때, 우리는 오히려 위로감을 얻는다. 자신의 안에도 그것들이 분명히 존재함을 알기 때문이다. 상대가 먼저 자신의 것을 솔직히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어떤 동질감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나의 것도 솔직히 드러내도 된다는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이것은 ‘나눔’의 행위가 된다. 나의 것을 나누는 게 아닌, 나의 일부와 너의 일부를 서로 나누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녀가 기차를 타야 하는 날이 왔다. 나는 버스를 타고 그녀를 기차역에 데려다 주었다. 방콕행 기차가 도착하고 플랫폼으로 향했다. 그녀가 기차에 올라타려다가, 갑자기 군인이 서있는 기차 끝 쪽으로 가더니 무어라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군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알고 보니, 그녀에게는 기차표가 없었다. 

그녀는 군인에게 사정을 하며 기차를 태워달라 부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인은 단호히 거절했고, 방콕행 기차는 안나를 기다리기는커녕 곧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떠났다. 내가 그녀에게 기차표를 끊어주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한사코 거절했지만, 거절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시간표를 보니, 방콕행 기차는 아까 전 그 기차가 마지막이었다. 오늘 안에 그녀가 방콕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그녀는 벨기에로 돌아갈 비행기표도 잃게 될 것이었다.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사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자신에게 진짜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녀처럼 미안해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나에게도 종종 그런 갈등이 찾아온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생각보다 훨씬 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상대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실제로 그녀의 기차표를 사는 일은 나에게 큰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나약하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누군가는 나는 신체적으로 혼자 잘 살아간다고 하지만,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는 누군가가 재배한 식물을 먹고,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가구를 쓰고, 누군가가 창조해낸 음악을 듣는다.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들 또한 이 생각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거기 존재하는 나무가, 식물이, 햇빛과 공기가 우리를 이 순간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기 싫어 많은 순간 어려움을 겪는다. 어떤 일을 배우다가 모르는 점에 대해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어려워 입을 꼭 다물고,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어려워 입을 꼭 다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속은 곪는다. 기차를 타기 전 며칠 동안 그녀의 속도 곪았을 거라 생각하고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기차역을 나와,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마음이 조급했다. 도착해서 시간표를 보니, 다행히도 비행기 시간까지 넉넉하게 방콕에 도착하는 버스가 있었다. 우리는 안도했다. 그녀가 버스 기사에게 또 부탁을 하려 하는 것을 단호히 말리고는 버스표를 끊어 건넸다. 공항에서 혹시라도 필요할지 모르는 여비도 조금 더 보태 건네었다. 그녀가 미안해하며 고맙다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분명히 언젠가 도움을 요청 할거야. 누군가는 나를 도울 거고. 언젠간 너한테 도와달라고 할 수도 있지. 누구나 도움이 필요해. 그러니까 걱정 마.”

 

그녀가 버스에 올라타기 전 벨기에로 오면 꼭 찾아 오라고 말하며 이메일 주소를 내 수첩 한 구석에 적어 주었다. 이내 버스에 올라탄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마주 흔들었다. 버스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버스 터미널에서 빠져 나갔다.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오래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지만, 지금도 가끔씩 방황을 담고 있던 그녀의 큰 눈망울이 생각난다. 그녀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 오래된 수첩 한 구석에는 아직도 그녀의 이메일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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