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할테니까.
처음 극작을 해본 건 동호회 활동을 시작한 지 3년쯤 되었을 때였다.
뮤지컬 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 막연히 내가 직접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쓰기 시작했지만 기초도 없는, 글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온 직장인에게 뮤지컬 대본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참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결국 나는 한창 신나게 쓰다가 막막한 마음에 중도에 포기했지만 오히려 이 일을 계기로 극작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나는 결혼을 했고, 정말로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뮤지컬 극작 아카데미를 등록했고, 그 사이 위태롭던 결혼생활은 결국 종착역에 다다르고 말았다. 직접 발품 팔아 구한 신혼집을 나와 친정집에 돌아와 별거를 시작하고 이혼 서류를 접수했다. 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매일 울기만 했지만 막상 등록해둔 극작 아카데미 개강일이 다가오자 그래도 수업은 나가보고 싶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시기인데도 오랜시간 꿈이었던 글쓰기에 대한 미련은 놓지 못했던 것이다.
2017년 뮤지컬 아카데미에서 밤낮으로 글을 쓰며 매달려 처음 20분짜리 단편 극을 만들었다.
극작 자체가 처음이라 다 쓴 대본이 몇 번이나 엎어졌고 작곡가와도 매일 논의를 하며 밤을 새워야 했다.정말 힘들었지만 막상 배우들의 연기로 눈 앞에서 공연이 펼쳐질 때는 신기하고 재밌어서 신이 났다. (머릿속에서만 상상하던 것이 현실화되었다고 생각해보라!) 그때 느낀 감정으로 인해 나는 이게 내가 계속해야 할 일이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공연이 끝난 뒤 단편을 확장시켜 장편으로 만들어보라고 하신 선생님의 말씀은 내 용기의 원동력이 되어 그로부터 세 달 뒤, 난 첫 장편의 초고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했던가. 분명히 내 대본은 대박이야! 를 속으로 외치며 야심 차게 공모전에 접수를 했다. 결과는 탈락. 빛의 속도로 1차 서류심사에서조차도 떨어졌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패기는 있고, 겁은 없고, 자신을 모르는 하룻강아지는 일단 화가 났다. 내 작품이 어때서! 안 해! 안 할 거야! 하지만, 그 생각은 두 달이 한계였다.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TV만 보면서 멍 때리는 시간이 지루했고 다시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결국 난 두 달 만에 나는 다시 대본을 꺼내서 읽고는 이제야 보이는 단점들에 한숨을 내쉬며 조급해하지 않고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수정한 작품으로 이듬 해인 18년 동일한 공모전인 스토리 작가 지원 프로그램에 1차 합격해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정말 되겠지! 어차피 50대 50이니까 붙지 않겠어? 하지만 웬걸, 여전히 내 대본은 부족했고 그걸 직접 심사위원들에게 매섭게 질책당하며 실컷 쭈그러지고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참 알 수 없는 거다. 이렇게 되니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나는 질책받은 부분을 포함해 작가 친구의 조언을 얻어 다시 대본을 고쳤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조금 더 꼼꼼하게. 한 편으론 우연히 읽게 된 책에서 힌트를 얻어 새로운 극을 구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이, 인터넷에서는 내가 떨어진 프로그램에서 당선된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의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기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속상해서, 한동안 관련 기사를 일부러 보지 않거나 팔로우했던 사이트를 끊어두기도 했고 올라온 공연을 보러 가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공연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던 마음은 언제가 될지 모를 아득함에 지쳐갔고 쓸 때마다 떨어지는 공모전은 넌 소질이 없다고 이제 그만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만 빼고 다들 앞으로 달려나가는 기분. 하루는 내가 떨어진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이 공연화 된다는 기사를 읽고는 우울한 마음에 글도 안 쓰고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는데, 우연히 SNS에서 한 유명 작가가 했다는 말을 읽게 되었다.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15년이 걸렸다. 그러나 난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는 이미 너무 유명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버트 C. 벤츨리.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모두가 인정하는 유명 작가가 아직까지도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니. 아마도 이 작가는 나처럼 수없이 공모전에 떨어지고, 출판이 좌절되거나 누군가에게 매섭게 질책당하며 자신감이 점점 사라져 버렸던 게 아닐까?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수많은 실패를 발판 삼아 결국 성공한 게 아닐까.
그때, 극작 아카데미 마지막 수업 때 선생님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딱 3년만 해보라는 거예요. 노력도 안 해보고 너무 쉽게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아. 처음부터 붙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떨어지더라도, 힘들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3년만 해봐요. "
나는 SNS 화면을 캡처해 핸드폰에 저장해 두었다. 폰 배경화면에 해 두고 수시로 들여다본다. 그래 해보자. 3년만, 딱 3년만 노력하고, 그다음에 그만둬도 그만두자. 그래도 여전히 떨어진 기존 작품은 왠지 만지기 싫어서 대신 새로운 소재의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 친구에게 끊임없이 조언을 구하고 다시 고치기를 반복하며 매일 같이 카페에 출근한다. 그리고 작년이었던 19년, 최종에서 떨어졌던 작가 지원 프로그램에 마침내 합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극작가로서 탄탄대로가 펼쳐진다... 는 꿈이다. 지원 프로그램으로 멘토링 기회를 얻어 극을 수정해나갔지만 나는 거기까지였다. 지원작 6개 작품 중 2개만 뽑아서 올려주는 쇼케이스 작품에 선정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내 작품은 최종 공연화에는 실패했고, 그렇게 난 일상으로 돌아왔다.
사실 멘토링을 하는 동안에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이제 나도 잘 되려나 봐. 이제 나도 공연 올리려나 봐! 하지만 작품은 최종 선택을 받지 못했고 또다시 언제가 될지 모를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만둘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신 멘토링 경험을 바탕으로 첫 번째 장편 작품을 고치기 시작했다. 이미 두 차례나 떨어졌던 그 작품 말이다. 몇 달에 걸쳐 거의 전체를 뜯어고치는 수정 작업 끝에 나는 이 작품으로 올해 2월 뮤지컬 페스티벌에서 창작지원작으로 최종 선정되는 행운을 얻었다. 매섭던 질책과 수많은 실패 끝에 마침내 뽑힌 나의 첫 작품. 극작을 시작한 17년부터 3년이 되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6월이 되었다. 하나의 작품이 뽑혔으니 이제는 정말 잘 풀리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것이다. 아니. 당연히 아니다. 여전히 나는 햇병아리 작가일 뿐이고, 이제 겨우 첫 작품 하나가 올라갈 뿐이다. 그 후로도 올봄 내내 준비했던 작품이 6월 공모전에 떨어졌고, 2월에 붙은 작품은 계속 일정이 연기되고 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또 떨어져 버린 공모전에 자신감은 하락한다. 기쁨이 주는 긍정적 효과는 이미 다 했고 올라갔던 자존감은 자꾸 작아지고 있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카페에 나가 자판을 두드린다. 그래, 또 떨어지라지. 계속하다 보면 나도 성장할 거고 그럼 어딘가는 붙겠지. 미래를 알 수 없고, 앞이 보이지 않는 혼자만의 외로운 작업.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반대로 내가 놓지 않는 이상 나의 기회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소설 쓰기는 한밤중에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은 오로지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볼 수 있지만, 그런 방법으로 여행지까지 다다를 수 있다. -E.L닥터로
힘들다. 힘들지만, 또 실패하겠지만, 그래도 난 내 앞을 비추는 헤드라이트를 끄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게 가다 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다다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