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비현실적 이게도.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당신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모릅니다,라고 말하면 너무 매정해 보이기에 같습니다, 라는 핑계로 문장의 끝을 맺어 봅니다.
당신의 부고를 듣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붉은 달을 만났습니다. 처음엔 제가 해가 지는 것을 본 줄 알았지요. 하지만 병원을 나와 집으로 향하던 길에 다시 보니, 그것은 분명 달이었습니다. 달이 이렇게 컸던가, 싶을 만큼 크고 붉은 달이요. 마치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그 달에 저는 아빠, 저게 뭐야? 하고 물었습니다. 아빠는 대답하셨어요. 달이지 저게 뭐야, 하고요. 그 순간에 저는, 제 바보같은 질문에 답해주시는 아빠에게 감사했습니다. 제 곁에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에요.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저는 감히 아버지가 없는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요. 이모부처럼 올해로 70세가 되시는 나이신데도 말이죠.
아마 사람은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모든 삶이 죽음에 맞닿아 있는데도 그걸 잊고 사는, 망각의 존재. 엄마가 울면서 전하는 당신의 비보에 저는 몇 초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나이 때분들이 흔히 가지신, 몇 개의 지병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건강하셨던 분. 다만 하나의 단점이라면 하루 한 갑 반으로도 모자라던 구름과자 정도였을까요. 가족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휴게소라도 들를라치면, 느긋하게 멀리서 담배를 태우며 걸어오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저쪽에 연못 있는 거 알았어? 허허- 하시면서 말이죠.
이모와 언니는 그런 이모부를 보고 한숨 쉬다 웃다 고개를 흔들곤 했었어요.
그래도 남들이 뭐라건, 그저 웃으며 나만의 시간을 한껏 즐기시던 그 모습이 어쩐지 저는 부럽기도 했습니다.
이모부, 저는 사실 당신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제가 아는 것은 이모부는 두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훌륭히 키워내신 아버지이자, 손자 손녀들에겐 한없이 좋은 할아버지였다는 것.
외가에 처음 인사 오셨던 그 순간부터 세련되고 멋진, 잘생긴 형부로 엄마와 이모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신 다는 것. 노래방을 가면 마이크를 놓지 않으시고 유쾌하게 노래를 한 곡조 뽑으시는 멋쟁이 신사이셨다는 것.
아이들의 유년시절을 비디오로 꼼꼼히 기록하던 습관대로 스마트폰으로 매번 사진 찍기 바빴던,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남기길 좋아하는 분이셨다는 것. 그리하여 앨범 한가득 모두 가족들 사진이라는 것. 허나 그 사진들 사이에 정작 당신의 사진은 몇 장 없다는 것. 그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모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감히 말하고 싶어요. 대화 한 번 살갑게 나누지 못했던 저였지만, 그럼에도 당신을 좋아하고, 존경한단 사실을요.
오늘 이모부를 위해 슬퍼한 것 보다 남은 이모와 언니 동생들을 위해 더 슬퍼한 저를 용서해 주세요. 대신 당신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언젠가 옛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모와 동생들과 함께 추억하고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모부, 떠나는 사람은 말이 없다고들 하지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렇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신 이모부의 마음이 어떨지 걱정되는 건 소용없는 일일까요. 당신의 발걸음이 혹여나 무겁지 않으실는지요. 혹시 그러시다면 너무 걱정 마셔요. 당신의 아들 딸들은 이렇게도 훌륭히 잘 해내고 있습니다. 아빠가 원했던 걸 찾아 그 뜻대로 장례를 치르려고 열심히 대화도 나눴어요. 엄마의 떨리는 손을 잡고 잘 보내드리자고, 그렇게 달래드렸습니다. 돕고 싶었지만 도울 게 없던걸요. 그러니 이모부. 전 그저 모두의 곁에 있어주려고 합니다. 자꾸만 새어 나오는 울음을 감출 수 없을 때, 잠깐씩 안심하고 울 수 있게 안아주고 살펴주려고 해요. 그러니 부디 더딘 걸음이라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더라도 그리 무겁지 않게 평안히 떠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