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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Feb 03. 2021

그가 떠나던 날의 달은 유난히 붉었다.

너무나 비현실적 이게도.

그가 떠나던 날의 달은 유난히 붉었다.

차를 타고 병원을 나선 길목, 한 낯선 건물 바로 위까지 내려앉은 커다란 달이 너무 어색해서 나는, 아빠 저게 뭐야 하고 물었다. 아빠는 달이지 뭐야. 하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 순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아버지가 내 곁에 있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이모부가 돌아가셨대."

돌아가신 것 같아, 돌아가셨대.

건강하셨던 이모부의 비고를 듣고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소리야. 엄마. 하다가, 일순 돌아가셨다고? 하고 반문했다. 엄마 괜찮아? 진정해. 지금 갈게. 진정하고 있어.

기분이 이상했다. 지병 하나 없이 건강하셨던 이모부. 엄마는 바로 엊그제도 이모부네서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셨는데.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가 다시 뚝 멈췄다.

말도 안 되잖아. 뭐야 진짜. 뭔데.

섣불리 사촌 언니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어서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못하고 연신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겨우 형부를 생각해내고는 내가 들은 말이 진실이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 후에야 나는 겨우 마른 울음을 삼켰다. 정신없이 운전해 집에 들어서자 엄마가 벌건 눈으로 눈물자욱 가득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어떡하면 좋아-하고 기가 막혀버린 엄마의 눈물이 또다시 시작되고  뚝뚝 끊어지고 하는 사이에, 나는 아직 메마른 눈을 하고 엄마를 바라보았다. 조금 있으면 동생도 온대. 그때 같이 가 엄마.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보고 이모와 엄마를 챙기고, 아빠와 동생을 만나 함께 병원으로 가는 얘기를 하는 사이,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허망하게 앉아 울먹이는 엄마를 보며 내가 냉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늘, 커다란 위기에서 침착하게 행동하려 애쓴다. 그것만이 내가  그 순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온 식구들이 다 모여 병원으로 떠나는 길. 너무나 갑작스럽고 허망한 그분의 죽음에 이모와 엄마는 연신 누군가에게 하는지 모를 하소연을 했다. 며칠 전에도 봤는데, 아까 머리 아프다고 한 게 다라고 했는데, 병도 없이 건강했는데. 100세가 넘으신 아버지도 살아계시는데! 눈물 맺힌 말들을 들으며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어서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다시 형부와 전화를 하고, 이윽고 용기를 내 사촌 동생과 통화를 했다.


"언니...."


동생이 전화를 받더니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순간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 애쓰며, 어른들을 모시고 가고 있다고, 한 시간이면 갈 것이고 장례식장은 어찌 되었는지 묻고는 이내 이모를 잘 챙기고 있으라고 기다려, 곧 갈게. 겨우 그렇게 말하곤 다시 메마른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뜬 달이 이상하게 붉다고 생각하면서.




응급실에 도착하니 이미 친가 쪽 어른들이 와 계셨다. 코로나 검사도 해야 하고, 이런 원인불상의 급작스런 사망 사건은 경찰 조사도 받아야 한다고 해서 다들 복잡하고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여전히 눈물이 마른채로 가만히 서서 어른들과 사촌 언니 동생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그러다 말을 마친 사촌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가 말없이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이 그녀를 위한 위로였는지, 나를 위한 위로였는지는 모른다. 그저 그러고 싶었다.

나는 사촌 언니와 동생들이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울기 시작했다.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황망하고도 갑작스러운 사별을 한 이모의 날카로운 절규가 귀에 울렸다. 그 목소리에 모여 앉은 세 명의 자식들이 고개도 들지 못하고 이를 악문 채 끅끅, 숨넘어가는 눈물만 흘린다. 나는 이모의 절규와, 가족들의 못다 한 인사와, 애끓는 비통한 후회를 들으며 그저 가만히 서서 슬픔을 나눠보려 애쓸 뿐이었다. 아까 보았던 붉은 달처럼, 너무나 비현실적이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남은 자들이 다 감당할 수 없는 벼락같은 고통을 준 허망한 죽음.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한 채 이모부는 그렇게 떠나버리셨다. 그리고 엄마와 큰이모는 자신의 하늘이 무너져내려버린 이모 곁을 비울 수 없다며 나와 동생, 아빠만을 집으로 보내셨다.


하얀 눈이 자동차 앞 유리창을 덮는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히 달려 집에 돌아오니 몇 시간 만의 귀가를 환영하는 우리 집 강아지의 울음소리가 거칠었다. 그 모습에 얼마나 기다렸냐고, 얼마나 외로웠냐고 한참을 달래며 안아주었다. 그러면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아빠에게 늦은 끼니를 챙겨드리고는 소파에서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강아지를 어루만졌다. 녀석은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한껏 배를 보이고 편안하게 드러누웠다.

아까 느꼈던  슬픔들은 그 새 옅어지고, 나는, 우리는 각자 해야 할 일들을 하고, 못 본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문득,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결국 한 발자국 뒤의 타인이구나.

정말 묘한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그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이모부를 떠올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당신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모릅니다,라고 말하면 너무 매정해 보이기에 같습니다, 라는 핑계로 문장의 끝을 맺어 봅니다.

당신의 부고를 듣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붉은 달을 만났습니다. 처음엔 제가 해가 지는 것을 본 줄 알았지요. 하지만 병원을 나와 집으로 향하던 길에 다시 보니, 그것은 분명 달이었습니다. 달이 이렇게 컸던가, 싶을 만큼 크고 붉은 달이요. 마치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그 달에 저는 아빠, 저게 뭐야? 하고 물었습니다. 아빠는 대답하셨어요. 달이지 저게 뭐야, 하고요. 그 순간에 저는, 제 바보같은 질문에 답해주시는 아빠에게 감사했습니다. 제 곁에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에요.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저는 감히 아버지가 없는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요. 이모부처럼 올해로 70세가 되시는 나이신데도 말이죠.

아마 사람은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모든 삶이 죽음에 맞닿아 있는데도 그걸 잊고 사는, 망각의 존재. 엄마가 울면서 전하는 당신의 비보에 저는 몇 초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나이 때분들이 흔히 가지신, 몇 개의 지병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건강하셨던 분. 다만 하나의 단점이라면 하루 한 갑 반으로도 모자라던 구름과자 정도였을까요. 가족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휴게소라도 들를라치면, 느긋하게 멀리서 담배를 태우며 걸어오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저쪽에 연못 있는 거 알았어? 허허- 하시면서 말이죠.
이모와 언니는 그런 이모부를 보고 한숨 쉬다 웃다 고개를 흔들곤 했었어요.  
그래도 남들이 뭐라건, 그저 웃으며 나만의 시간을 한껏 즐기시던 그 모습이 어쩐지 저는 부럽기도 했습니다.      

이모부, 저는 사실 당신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제가 아는 것은 이모부는 두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훌륭히 키워내신 아버지이자, 손자 손녀들에겐 한없이 좋은 할아버지였다는 것.
외가에 처음 인사 오셨던 그 순간부터 세련되고 멋진, 잘생긴 형부로 엄마와 이모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신 다는 것. 노래방을 가면 마이크를 놓지 않으시고 유쾌하게 노래를 한 곡조 뽑으시는 멋쟁이 신사이셨다는 것.
아이들의 유년시절을 비디오로 꼼꼼히 기록하던 습관대로 스마트폰으로 매번 사진 찍기 바빴던,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남기길 좋아하는 분이셨다는 것. 그리하여 앨범 한가득 모두 가족들 사진이라는 것. 허나 그 사진들 사이에 정작 당신의 사진은 몇 장 없다는 것. 그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모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감히 말하고 싶어요. 대화 한 번 살갑게 나누지 못했던 저였지만, 그럼에도 당신을 좋아하고, 존경한단 사실을요.

오늘 이모부를 위해 슬퍼한 것 보다 남은 이모와 언니 동생들을 위해 더 슬퍼한 저를 용서해 주세요. 대신 당신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언젠가  옛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모와 동생들과 함께 추억하고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모부, 떠나는 사람은 말이 없다고들 하지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렇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신 이모부의 마음이 어떨지 걱정되는 건 소용없는 일일까요. 당신의 발걸음이 혹여나 무겁지 않으실는지요.  혹시 그러시다면 너무 걱정 마셔요. 당신의 아들 딸들은 이렇게도 훌륭히 잘 해내고 있습니다. 아빠가 원했던 걸 찾아 그 뜻대로 장례를 치르려고 열심히 대화도 나눴어요. 엄마의 떨리는 손을 잡고 잘 보내드리자고, 그렇게 달래드렸습니다. 돕고 싶었지만 도울 게 없던걸요. 그러니 이모부. 전 그저 모두의 곁에 있어주려고 합니다. 자꾸만 새어 나오는 울음을 감출 수 없을 때, 잠깐씩 안심하고 울 수 있게 안아주고 살펴주려고 해요. 그러니 부디 더딘 걸음이라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더라도 그리 무겁지 않게 평안히 떠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생은 유한하나 우린 살아있는 동안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한다. 그 누구도 이런 비극적인 일이 내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하루를 살아 갈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망각은 신이 주신 선물인 동시에 고통이기도 하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나는 유한한 생의 의미를 깨달아버린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서 빨리 망각을 맞이하게 되기를 빌고 또 빌었다. 아픔을 다 지울 수 없다하더라도,  망각의 신이여 부디 자애롭게, 조금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주소서.


오랜만에 본 깊은 밤의 달은 너무나 크고 붉었다.

비현실적인 달의 모습이 믿기지가 않아서, 나는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붉은 달을 바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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