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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Jan 15. 2021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 이혼 했어요를 보고


처음에 1화를 보게 된 건 우연이었다.

채널을 돌리다 우리 이혼했어요 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이게 뭐지? 싶어서 멈추고 바라보았다.

그것은 특이하게도, 이미 이혼한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하는 관찰 예능이었다.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이혼하고 다시 만난 사이라. 저 사람들은 어떨까?

여러 커플들이 나오고 있었는데 나는 사실 그 커플들이 각각 왜 이혼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계속 보다 보면 조금씩 이혼의 이유가 보이기 시작한다. 남편의 외도, 시부모와의 갈등,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가면서 생긴 이질적인 감정을 극복하지 못한 커플 등...

최근에 합류한 커플 중에 가수 이하늘 커플이 있었다. (이들을 커플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10년 넘게 연애를 하고도 2년도 안 되는 시간만에 이혼을 했는데, 오늘 두 사람이 모처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우리가 왜 이혼했을까. 왜 그땐 별거 아닌 일도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까. 그러다 이하늘이 말했다. 그렇게 홀로 지내던 어느 날 조금씩 깨닫게 되더라고. 아, 내가 그때 그랬구나. 그래서 네가 상처 받았겠구나 하고. 이에 여자도 솔직히 당시의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뒤늦게나마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알아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예전의 내가 떠오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을 만났던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지독히 사랑했지만 지겹게 싸우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너무나 힘이 들어서 포기하려고 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우리 연애의 불꽃은 꺼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싸움 속에서도 끈질기게 타오르고 이어져나갔다.

그 사람은 자기 확신에 찬 사람이라 항상 내가 옳고 넌 그르다. 내가 맞고, 넌 틀렸다, 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다. 허나 나도 그에 지지 않을 만큼의 자기주장이 확실한 타입이다 보니 우린 작은 일로도 꽤 크게, 많이 싸웠다.

우리가 제대로 싸우는 날이면 엄청나게 감정이 소모되었고, 그는 자기에게 맞춰달라는 성향이 강해서 내가 결국 맞추게 되곤 했다.  간혹 그는 내가 뭔가를 잘못하면(사실 내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그에겐 항상 모든 일이 내 잘못이었으니까.) "넌 쓰레기야"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처음엔 화가 나고 상처가 되다가도 나중에는 정말 내가 쓰레기인가? 사랑할 가치가 없는 나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자존감을 무너트리는 말을 자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매우 부적절하고 나쁘다는 것을 분명히 알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이 잘못된 거라는 생각조차 못할 만큼 이런 지독하고 강렬한 사랑이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그걸 받아들이고 맞춰주며 시간이 지나는 사이 어느새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괴로운 마음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분명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한 사람을 사랑하는 처음엔 사랑의 크기가 90 괴로움의 크기가 10였던 것이 점점 시간이 갈수록 괴로움의 크기가 더 커져서, 나중엔 60,80  마침내 90, 다다랐을 때쯤 나는 이별을 선언했다.

웃긴 건, 그래 놓고 정작 나는 그 사람을 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그를 사랑했던 마음의 크기는 여전했기에. 다만 괴로움의 크기가 너무 커져서 사랑의 마음을 짓눌려 이겨버리자 내가 지쳐 도망가버린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사랑에 너무나 무지한 어린아이였고 나의 사랑은 이제 막 그 사람으로 인해 피어나기 시작한 미성숙한 단계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서 조금의 핑계를 대자면, 내 인생에 그 정도로 지독한 사랑은 그 사람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헤어지고 몇 달 뒤, 결국 나는 그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우린 한 카페에서 만나서 한참을 지난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는 서로의 안부를 간단히 물으며 문득, 우리 그때 이런 일 있었잖아.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아, 네가 이래서 이랬구나. 상처였겠구나싶었어 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덤덤히 옛날 얘기를 떠올리며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해보려 노력했던 일들을 얘기해가니 오랜 시간 묵혀두었던 마음의 응어리들이 사르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꽤 긴 시간을 마음속에 숨어있던 얽힌 매듭들을 찾아내 하나씩 풀어나갔다. 어쩌면 이미 헤어져버린 때에 부질없다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정리되기 시작하자 비로소 마음에 남아있던 아픔들이 사라져 가는 걸 느꼈다.  오랫동안 내 마음 한편에 무겁게 가라앉아있던 돌이 조금씩 풍화되어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날 일을 계기로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조금씩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얼마 못가 다시 헤어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사람은 성장할 순 있어도, 변하긴 어렵기 때문에.




나는 괴롭던 사랑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 뒤 마음의 안정을 찾고서야 그 사람과의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그 사람과 완전히 끝나버린 관계가 아니었고 시간을 갖는 중이었다면, 나는 그에 대해 어느 날 문득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역시도 생각지 못한 어떤 일로 인해  나를 이해하는 계기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완전한 타인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최근 들어 연애가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놀랍게도!)

끔찍한 고통과 아픔에 다시는 연애도 결혼도 없을 거야 라는 생각을 했었던 나인데도, 오랜 시간이 지나며 상처를 극복하고 나자 어느 날 문득 누군가 만나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내 지난 사랑의 완전한 끝, 미련도 후회도 아픔도 모두 극복한 '끝의 완성'에 이르러서야 다시 사랑을 하고 싶어 진 것이다. 결국은 완전한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

우리 이혼했어요의 커플들은 뜻하지 않게 오랜만에 만난 상대방을 보며 속 깊은 마음들을 드러내고, 성장한 마음을 말미암아 상대를 이해하고 있었다. 지나간 나의 시간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성찰하고 솔직히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혼이란 과정을 통해 상대방과 완전한 타인이 되면서 가장 객관적으로 자신의 결혼생활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그 과정을 겪고 나서 다시 만나자 비로소 얽힌 매듭까지 완전히 풀어버릴 수 있는 '끝의 완성'을 맞이할 수 있었다. 으로 말하면, 그렇게 완전히 끝나버린 상태이기에 그들은 이제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이혼에는 아직 서로에 대한 사랑이 가슴 한편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커플들이 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이별의 완전한 끝을 맞이한 그들은 서로를 다시 사랑하게 될까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꿈꾸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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