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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Oct 12. 2020

20.10.12 오늘의 일기

정말로 그냥 개인적인 일기.

나름대로 평범하고 순탄하게 살아왔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을 했고, 생각지 못하게 내 인생에는 없을 것 같았던 이혼이란 과정을 겪게 됐고 그 시간들을 힘겹게 지나며, 꿈이었기에, 어쩌면 이혼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극작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생각해보면 사람의 운명이란 그 누구도 알 수 없어서, 그래서 재밌지만 그래서 두려운 게 아닐까 생각한다.  


몇 년 전 엄마가 갑작스레 병으로 생사를 오가시던 시간, 예상치 못한 반려동물의 죽음과 나 자신에게 생긴 이혼이라는 일. 평생 해온 직업 외에 극작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고 그것으로 결과를 이뤄내기까지.

나에게 일어났던 좌절, 기쁨, 슬픔, 실패, 성공 중 난 단 한 가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공연 준비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나는 공연을 잘 올리고 싶어서 이것에만 매진 중이고 아예 개인 사업자를 내서 작업 중이다.

말이 개인사업자이지, 원활한 일 진행을 위해 사업자만 냈을 뿐이므로 여전히 나의 포지션은 컴퍼니 대표라기보단 작가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 한가득이며, 행정적으로 처리할 일 또한 산더미인 데다가 내 대본은 연습과정에서 끊임없이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


낯선 분야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일을 진행하면서 모두를 만족스럽게 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기에 그로 인해 함께 작업 중인 사람들에게 미안함도 고마움도 생기곤 한다.  

실수에서는 다음엔 그러지 않겠다는 배움을 얻을 수 있으며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는 시도를 해볼 수 있으나, 사고가 생겨 버리는 것은  나로서도 정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생각지 못한 부상, 그로 인한 한 사람의 중도 하차, 서로 간에 상처 받은 마음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올라가야 하기에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하는 상황. 개인적인 인연으로 시작해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작업해보고자 손을 내민 일이 지금은 내게 칼이 되어 돌아와 버렸다.


함께 작업하는 연출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누구도 상처 받지 않게 작업하고 싶다고.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여러 사람이 여기저기 누더기가 된 마음이지만 할 수 없이 공연을 위해 달려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믿음을 갖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좋은 마음으로 건네었던 선의, 기회를 준다는 생각으로 제안한 일이 사고라는 이름 앞에 나에 대한 원망으로 돌변해 버린 지금.

무얼 위해 난 기회를 줬으며, 왜 그 사람은 나를 원망하고 있는지.

예측할 수 없기에 손을 내밀었고, 예측할 수 없어서 독이 된 지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다친 마음을 모른 척하며 목표를 위해 매진하는 수밖에 없다.



 

이혼을 겪고 나면서 스스로가 성장했다고 느끼기에 이번 일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혼보다 더 하겠어. 그런 생각으로 어떻게든 괜찮아, 할 수 있어, 라며 상황을 수습하려고 애를 써보지만, 그럼에도 생각처럼 일이 잘 풀리는지 않기에 힘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또다시 브런치로 도망쳐와 있으니.

사고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하다, 잘게.하고 전화를 끊은 친구의 말을 난 믿지 않는다.

그는 나와의 대화에서 상처를 받았을 것이고 그로 인해 잘 거란 거짓말로 황급히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전화를 끊었을 것이다.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상처 받지않길 바라는 마음,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그들과, 혹은 그들에게 해야만 하는 힘겨운 일들.

내가 조금 더 현명한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괴로움을 겪은 뒤 마음이 성장한다는 걸 난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역으로, 그것이 결국 큰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 또한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이제 이런 괴로움은 더 이상 겪고 싶지 않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달려 나가야 하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허공에다 욕이나 뱉으며 다시 정신을  차리는 것뿐이다. 이 시간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너도, 나도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기를 바란다.


p.s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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