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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Mar 03. 2021

사람이 외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어딘가에서 이런 구절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혼자가 외로운 이유는 혼자가 아닌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얼마 전, 나는 내 생일을 맞이하여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나는 생일을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만 어쩐지 이혼 후에 맞이하는 생일은  '외롭다'라고 느껴져서 별로 달갑지 않은 편이다. 작년에 특히 그런 기분이 많이 들었는데, 그게 너무나 싫어서 이번엔 아예 좋아하는 여행을 가리라 마음먹고 일찍이 제주도행 티켓을 끊어두었다. 때마침 제주도에 관련해 글을 쓸 생각이라 여기저기 취재도 겸해 돌아다니기로 했다.

성산일출봉 근처와 금능 해변에 좋아하는 숙소가 있어서 처음 이틀은 성산일출봉 쪽에서 묵고 남은 3일은 금능 해변가 숙소에서 편안히 쉬기로 정했다. 첫날, 제주도에 도착해 렌터카를 찾은 뒤, 제주에 갈 때마다 꼭 들리는 우진 해장국의 구수한 고사리육개장을 먹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뜨끈하고 구수한 제주만의 맛.

 

우진 해장국의 고사리육개장


택배로도 시켜 먹어보았지만 현지에서 뚝배기에 내어주는 그 맛은 안 나서, 오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려서라도 꼭 먹게 된다.


2,3일째 날은 나름의 관광을 했다.

비자림은 언제 들러도 좋은 곳이다. 여긴 내게 약간 원시밀림(?) 같은 느낌이 드는데, 여기저기 우거진 나무들과 현무암 가득한 바닥, 나무를 덮은 이끼들, 숨골들이 있어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좋아한다. 길도 잘 닦여 있어서 슬슬 산책하며 숲을 느껴보기 좋다.

이후엔 빛의 벙커에 갔다. 반 고흐의 그림들과 고갱의 그림을 빛으로 재구성해 일종의 스크린 쇼를 보여주는 전시였는데 고흐를 좋아하다 보니 가서 30분간 바닥에 앉아 쇼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전시장 전체를 뒤덮은 스크린에 일렁이는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저 시대 저 밀밭 앞에 앉아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성산일출봉에 들러 일출봉의 초록과 푸른 바다와 멀리의 도시를 바라보았고 절물 자연휴양림으로 이동해 삼나무 가득한 숲길을 걸었다.

절물 자연휴양림의 삼나무 숲길


야트막한 오름을 올라 크게 숨을 쉬어보기도 하고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나무들을 보며 이 나무가 자라왔을 시간들을 생각했다. 휴양림을 나와서는 관음사에 들러 절 구경도 하고 정성을 다해 기도하면 들어준다는 설문대 할망 소원 돌에 소원도 빌었다. 설문대 할망 소원 돌에게 소원을 비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돌을 두 손으로 어루만져 돌의 온기를 느낀 뒤 한 번 들었다 내려놓는다. 이후 자신의 이름, 생년월일, 사는 곳을 말하고 정성을 다해 소원을 빈다. 그 후에 다시 돌을 들어보면 아까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지거나 들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기분 탓 일진 모르겠지만 나 역시 기도 후에 돌이 훨씬 무겁게 느껴져서 깜짝 놀랐다. 아마도 소원을 들어주실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로또 되게 해달라고 빌 걸 그랬다.)

불교는 아니지만 여행지에서 절에 들리는 것을 좋아한다.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절이 가진 고요한 풍경과 그 고요함에 어울리게 나지막이 울리는 풍경소리, 목탁소리를 들으면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관음사 내에 있던 소원탑. 사람들이 금색 잎사귀에 소원을 적어 달아 두었다.




내가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묻는다.

혼자 가면 재밌어?

뭐가 좋냐 혼자서.

가면 뭐해?

왜 혼자 다녀?

사실 처음에 혼자 여행을 가게 된 건 우연과 오기에서였다. 친구랑 계획하고 오랜 시간 기다렸던 해외여행이 무산되었을 때, 실망감으로 잠이 오지 않아 이대론 안 되겠다며 일본 여행 티켓을 끊은 것이 내 나홀로 여행의 시작이었다. 근데, 생각보다 혼자 여행 가는 게 나름 재미가 있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스케줄을 맞출 필요도 없으며 원할 때 먹고 원할 때 쉬고 원하는 곳에 가서 내 기분대로 하고 싶은 걸 한다.

두렵고 떨렸던 나홀로 여행은 생각보다 더 여유롭고 편안했으며 즐거웠다.

물론 혼자 가면 가끔 관광지에서 외로움을 느낀다거나 식당에 들어가기 조금 신경 쓰인다거나 맛집에서 두 개의 메뉴를 시켜 나눠먹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둘이 가면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를 다 가볼 수 없고 상대가 어떤 음식을 먹지 못하면 그 가게를 피해야 하기도 하며 더 머무르고 싶은 곳에서 지체 없이 스케줄에 따라 이동해야 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무엇이든 다 장단점이 있다.


나에게 나홀로 여행이란 편안함, 즐거움, 외로움, 행복함이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힘든 나에게 여행은 온전한 혼자로서의 편안함을 준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해진다.

하지만 더불어, 외로움도 항상 함께 한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여행하는 유명 관광지에서, 어느 맛집 식당에서, 함께 사진을 찍는 친구들 무리를 보면서, 혹은 너무나 괜찮은 장소나 맛있는 음식을 발견했을 때 집에 있는 가족이 그립고 함께 오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끔은 숙소에 돌아와서 맥주를 한 캔 따면서 이국의 낯선 TV 프로그램을 보며 내가 왜 여기에 혼자 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도 있다. 나홀로 여행에서 외로움은 떼어놓을 수 없는 동반자다.


혼자일 때 외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웹툰에서 읽은 적이 있다.

'혼자가 외로운 이유는 혼자가 아닌 적이 있었기 때문이야'라는 말을.

우리는 보통 누군가와 함께 있는 생활을 많이 하게 된다. 학교, 직장 동료, 가족, 친구들, 연인.

내 주변의 빈 공기를 채워주는 어떤 것들. 하지만 그것들을 벗어나 온전히 혼자가 되었을 때 텅 비어버린 그 기분을 우리는 외로움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혼자이기에 생겨나는 외로움은 무엇으로 메꾸어야 할까. 나는 이번 여행을 하다 문득, 그것들을 '나를 사랑하는 일'로 메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롭기 때문에, 외롭지 않고 혼자서도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고 실행하는 것. 이를테면 풍경 좋은 곳에 가고 자그마한 기념품을 사 추억을 담아두고 가보고 싶던 맛집에 찾아가는 일. 한가로이 공원을 산책하거나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씩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한다. 별거 아니더래도 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내 실행하고, 더 크게는 꿈을 탐구하고 찾아서 해내는 것. 나라는 사람이 원하는 일과 그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온전히 나 자신을 사랑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홀로 여행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행복감에서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 외로운 이유는 누군가와 함께 있던 때를 그리워해서가 아니라,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금능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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