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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Nov 24. 2021

이혼을 알리고 싶지 않은 이유

사실은 쪽팔려서 그런거 아니에요?

요즘 내 관심사는 크게 두종류다.

첫번째는 현재 수정중인 뮤지컬 대본, 두번째는 다음주부터 시작될 방송작가교육원 드라마작가 수업이다.

수정중인 뮤지컬 대본은 전에 한 번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1차로 개발했던 작품인데 이번에 좋은 작곡가를 만나 다시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늘 그렇듯이 고친 시놉을 또 고쳐서 다시 쓰는 중이다.

드라마작가 수업은 얼마전에 기초반 수업이 끝났고 곧 연수반 수업 시작을 앞두고 있다. 방송작가교육원은 기초반-연수반-전문반-창작반의 네 과정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연수반까지 올라가는건 어느정도의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가능하나 전문반부터는 정말 실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어렵다고 한다.

 기초반에서 70분짜리 드라마 단막 대본을 1개 써봤다면, 연수반에선 2개를 써야하는데 이것때문에 함께 기초반을 들었던 친구 몇 명과 미리 시놉을 써보기로 했다. 본래 구상중이었던 얘기가 있어 머릿속으로 시놉을 대충 짜고, 이제 구체적으로 적어들어가면 되는 상황. 그런데 문득, 이번에는 진짜 내 얘기가 해보고 싶어졌다.


-새로운 얘기가 하고 싶어졌어. 나 하루만 늦게 낼게.


나는 그렇게 툭 던지고 이틀만에 새 시놉을 써냈다. 아마도 이토록 짧은 시간에 구상한 시놉은 처음인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이 이야기의 주제가 바로 내가 경험했던, '이혼'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순탄한 삶을 살며 남들 하듯이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한 여자는 다들 그렇게 사는 짜여진 '인생 계획표'처럼,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살아온 방식도, 생각도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었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했던 결혼은 둘에게 끝없는 불행과 절망만을 안겨주었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일때 행복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혼을 선택하지만 여자는 이혼에 대한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마음 한편으론 이혼따위 요즘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직은 사회적인 시선이 두렵고 본인 스스로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이혼을 밝히길 꺼려하고 있다.


자세한 시놉시스는 적을 수 없지만 내가 작성한 단막극 이야기의 포인트는 '평범한 사람에게 닥친 이혼이라는 시련'이었다. 거기에 치중하다보니 시놉은 그다지 큰 사건이랄게 없이 잔잔하게 흘러갔고, 나중에 타인에 의해 회사 사람들에게 이혼 사실이 밝혀지는 부분이 하이라이트로 잡혔다. 내가 썼지만 재미가 없는 얘기란걸 알면서도 어쩐지 일단은 한번 써보고 싶어 쓴 글. 당연히 문제가 많은 (아니 매우 텅텅빈) 얘기였고 동료들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동료들의 다양한 의견들 중에서 내가 굉장히 날카롭게 들은 이야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 말이었다.


"난 이해가 잘 안돼. 주인공이 이렇게까지 이혼 사실을 숨기는 이유가 뭐죠? 요즘에 그게 뭐 대수라고.

결국 주인공이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거 아니에요? 쪽팔린거? "


쪽팔린거!

정말 생각지도 못한 단어였다. 쪽팔림. 내 글을 읽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결국 이 여자는 결혼에 실패해서 쪽팔린거라고.

스터디때는 웃으면서 아아, 하고 넘겼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른다.

스터디가 끝나고 혼자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 저것 다른 이유는 다 제쳐두고,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혼에 대해 말하기 싫은 첫번째 이유에는 분명 사회적인 편견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또다른 하나는 내가 스스로 결혼에 '실패'했다고 인지하고 있는 것이고 이때문에 내면에서는 타인에게 내 실패에 대해 말하기 싫은 마음이 존재한다.  즉 그의 말대로 실패한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쪽팔림'인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왠지 헛웃음이 나왔다. 이혼이 이렇게 간단한 문젠가? 쪽팔림으로 치부될만큼 별거 아닌 문제였나?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본다. 내가 그의 말에 마음이 동한 이유는 그의 말이 일부 맞다고 느끼기 때문이고, 그렇다면 정말 이것은 인생의 거대한 실패와 오점이라기보단 그냥 한 번의 쪽팔림 정도로 치부하면 되는 일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 쪽팔림이 싫어서 나는 몇달이고 말안하고 버텼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딱히 숨긴것도 아니었지만 말하려하지도 않았다. 뭔가 눈치채고 에둘러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어도 말하기싫어 모른척 넘기면서 넘어갔다. 내 이혼을 알고 있는 사촌언니나 친구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내 결혼생활에 대해) 물어오자 곤란해했고 그래도 난 말하지 않아줬으면 한다며 못을 박았다. 결국 지금은 웬만큼 알려졌지만.

생각해보면 언니도, 엄마도, 친구도 주변사람들에게 숨겨주기 곤란했을것이다. 결국은 거짓말을 해야하니까.

그래도 이혼 후 시간이 꽤 많이 지나자 어느정도 내 이혼을 받아 들일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누가 물어오면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용기(=무던함)도 꽤 생겼다. 이혼이란 단어의 무게를 꽤 덜어낼 수 있게 된 것 이다.

하지만 시놉시스를 본 다른 친구가 "주변에 이혼한 사람들 있지 않아요? 그 사람들에게 레퍼런스를 얻으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을때에도 나는 이것이 나의 경험임을 말하지 못했다.

시놉시스를 읽은 동기들은 내 이야기가 너무 평범한 사람의 이혼얘기라며 드라마적으로 재미없다는 이야기를 했고 난 그 의견에 동의했다. 정말 평범하고 순탄하게 살던 나에게 닥친 시련에 대해 쓴거니까.


내 인생에서 이혼은 너무나 큰 일이었지만, 사람들의 흥미와 재미를 위해 글을 쓰는 이야기꾼들에게 평범한 사람의 이혼은 별거 아닌 일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이것보다 더 크고, 신선하고, 재밌는 사건들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평범하고 흔한'일 말고.

뒤집어 말하면 사실 나에게 이혼이 크고 충격적인 일이었을지몰라도 남들에겐 이야깃거리로도 될 수 없는, 살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중에 하나일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혼은 인생에서 생각보다 별거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고, 약간은 그런 생각이 들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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