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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박 Jun 11. 2019

팩트는 기분이 나쁘다

영화 <기생충>

 원래 맞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백수한테 '백수'라고 하면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건물주를 백수라고 놀리는 건 별 소용이 없다.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 스스로를 잘 안다. 무엇이 나를 잠식하고 있는지, 평생 메꿀 수 없는 구멍은 무엇인지. 그래서 기생충을 보고 나면 기분이 나쁘다. 칸의 사람들이 상을 줬다니까 더 기분이 나쁘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생각했다. 밤새 총소리가 끊이지 않는 위험한 할렘가에서 태어난 작은 아이가 래퍼의 꿈을 버리지 않고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되는 일대기를 그려낸 영화가 있다면. 그리고 내가 그 영화를 보고 감명받는다면. 나는 목숨만큼은 위협받지 않으니까 그 영화를 보고 감동받을 수 있는 건가? 기생충을 보고 '감동받는다'는 감정에 대해 조심스러워졌다. 그리고 칸에서 상을 받는 바람에 엄마가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해서 큰일이다. 아무튼 팩트 폭행이 아픈 영화, 기생충이다.






견물생심

 여기 한 가족이 있다. 기택(송강호)네 가족이다. 네 가족이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 요새는 국가장학금이 잘 되어있다. 굳이 국가장학금 아니어도, 요새는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지원해주는 부자들이 많다. 이게 우리 부모님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돈이 없어서 공부 못한다는 건 어쩌면 텔레비전으로 세상을 보는 우리 부모님들에게는 핑계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찾아보면 정말 있긴 하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겠지만. 아무튼 저것도 의지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일부러 욕망을 거세시키기도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염원하는 건 비참한 일이기 때문이다.

 기택은 일부러 욕망하지 않는다. 계획하지 않는다. 실망하는 것에 지쳤기 때문이다. 사람이 기대를 10번 하면 5번은 이루어져야 살 맛이 나는데, 하는 일마다 족족 망하니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기택의 눈빛은 멍하고, 정신은 어디 따로 빼놓은 것 같다. 하지만 기택도 사람인데 왜 욕심이 없을까. 기택도 잘하고 싶다.

 피자 박스를 다 같이 접는다. 기택의 가족은 전원 백수이기에, 피자 박스 접기는 일시적으로 가족 사업이 된다. 소독차가 집안 가득 소독약을 뿌린다. 다른 가족들은 콜록거리느라 바쁜데, 기택만은 눈을 똑바로 뜨고 핸드폰을 바라본다. 핸드폰 속에는 피자 박스 접기의 달인인 듯 보이는 여자가 빠른 속도로 박스를 접는 영상이 나온다. 누가 잘하고 싶지 않을까. 기택도 잘하고 싶다. 저 영상에 나오는 여자처럼, 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가족들을 부족함 없이 부양하는 가장이 되고 싶다. 견물생심이라 했던가. 거세했던 욕망은 박 사장(이선균)네 가족을 만나면서 조금씩 살아난다.





그래도 사랑하시죠?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나는 깔끔한 아파트를 사랑하지만 살 수 없고, 엄마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엄마에게 용돈을 많이 줄 수 없다. 남자 친구를 사랑하지만 당장 결혼하자고 할 수 없고, 컴퓨터활용능력시험을 싫어하지만 하루 종일 책을 들여다보며 공부한다. 취향 따라 살 수 없는 세상이다.

 기택네 가족은 서로를 사랑한다. 가끔 험한 말투가 오고 가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를 사랑한다. 그런데 아들이 아빠를 존경하고, 엄마가 딸을 사랑하는 건 이 영화에서 아무런 힘이 없다. 화목한 가정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박 사장네 가족도 화목하다. 그래서 기택의 "그래도 사랑하시죠?"는 박 사장에게 공격이 되지 않는다. 박 사장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만 박 사장네는 돈이 많다. 두 가족의 유일한 차이점이자 모든 차이점이다. 

 박 사장네가 캠핑을 간 후, 기택네 가족은 박 사장네서 나름의 휴가를 보낸다. 커다란 거실에서 비싼 술을 따르고 마시며. 기택은 충숙(장혜진)의 '바퀴벌레' 발언에 욱 하여 충숙의 멱살을 잡는다. 한낱 지나가는 꿈같은 순간임을 알지만, 그 순간만큼은 기택도 건실한 가장이 되고 싶다. 충숙도 정색을 하다가, 이내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으로 상황을 무마한다. 충숙은 어쩌다가 기택과 결혼하게 됐을까? 그 미묘한 표정에 충숙의 고생이 압축되어 있는 듯하다.


 사랑은 옆으로 퍼지고, 혐오는 아래로 꽂힌다. 갑작스러운 전前 가정부 문광(이정은)의 등장에 영화의 흐름은 반전된다. 문광네 가족과 기택네 가족의 벌레 같은 움직임에 어쩐지 맘 놓고 웃을 수 없는 장면들이 지나가고, 불길한 예상은 틀리지 않듯 박 사장네 가족이 캠핑을 취소하고 돌아온다. 계급투쟁은 상위와 하위의 싸움이 아닌, 하위와 최하위의 싸움이 된다. 기택네는 "우리는 불우이웃 아니야", "여기서 살아지기는 하나 보지?" 등의 말들로 대놓고 문광네 부부를 혐오한다. 박 사장 역시 '냄새'로 기택을 혐오하고, 기택의 마음에는 애써 외면해왔던 열등감이 쌓이게 된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기택의 열등감은 결국 폭발한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죽인다. 생각해보면 그냥 기택네와 문광네는 돈이 없었을 뿐인데... 박 사장네는 그냥 사람을 고용했을 뿐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 사장네와 기택네 사이에 있다. 기정(박소담)처럼 똑 부러질 수도 있고, 기우(최우식)처럼 욕망할 수도 있다. 누구는 기택처럼 결국은 지하실로 들어가 최소한의 인간으로만 살아갈 수도 있다.

 봉준호 감독에게 "당신이 뭘 아시나요?"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이내 '몰라도 영화는 만들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영화지만 좋아할 수는 없다. <설국열차>에서 커티스는 아예 열차를 벗어났고, <옥자>에서 미자는 다시 옥자를 데리고 밑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기생충>에서는 행복할 사람이 없어 보인다. 봉준호는 희망의 문을 닫아버렸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창문을 바라보면서 기택네 가족을 생각한다. 물이 콸콸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면 혹시라도 비가 샐까 봐 걱정된다. 반지하의 변기가 왜 위에 있는지 난 이 영화를 보고 알았다. 칸에서 기립박수를 받은 이유가 가난이 재밌기 때문이 아니라 슬프기 때문이면 좋겠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진짜 삶이니까. 가까울수록 비극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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