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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박 Dec 26. 2018

춤과 자유의 상관관계

<스윙키즈>, 자유를 향한 발놀림


 나는 뮤지컬 영화를 싫어한다. 몇 년 동안 나는 영화 편식을 줄이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라라랜드>를 보면서 눈물 흘릴 수 있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스윙키즈>를 보면서 예전 같으면 '저거 좀 오바인데?'라고 생각했을 장면들도 별 다른 생각의 인터셉트 없이 매끄럽게 볼 수 있었다.

 춤이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울렁거린다. 평생 춤을 잘 춰 본 적이 없어서 춤 잘 추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몸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은 멋있다. 무엇보다도 춤은 자유롭다. 여기 모든 이데올로기를 박살 내고 싶은 자유의 몸부림이 있다. 이미 <마약왕>, <아쿠아맨>, <범블비> 그리고 오늘 개봉한 <PMC-더 벙커> 등 때문에 점유율은 한 물 간 것 같지만. 꽤나 기대작이었던 <스윙키즈>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다.





작지만 단단한 여성 캐릭터

 강형철 감독 영화의 여성 캐릭터는 대게 그렇다.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마음 한 구석에 주렁주렁 매달려있지만 씩씩하게 살아간다. 캔디형이라고 할까. 하지만 어떻게든 먹고살려고 뜬금없이 아버지 집에 들어가기도 하고(과속 스캔들), 사투리를 써서 놀림을 받아도 씩씩하게 학교를 다닌다(써니). 현실적인 캔디인 것이다. <스윙키즈>의 '양판래'도 그렇다. 전쟁통에 있는 여자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나. 통역을 할 수 있다. 먹고살려고 하다 보니 일본어, 중국어, 영어를 포함해 4개 국어를 한다. 춤도 춘다. 남자 주인공은 어디 가서 뭘 하는지 깽판도 치고 연습도 안 나오지만, 양판래는 계속 춤을 춘다. 잘한다. 야무지다. 사랑스럽다는 말로는 뭔가가 부족하다. 작지만 크다. 유연하지만 단단하다. 





관객의 페르소나

황기동

  이 작은 아이에게 이데올로기는 어떤 의미일까? 광국(이다윗)이 시뻘건 눈을 하고 남조선 놈들을 쳐 죽여야 한다고 외칠 때, 함께 고함지르던 이 아이에게 미국, 북한, 남한은 어떤 의미일까?

 기동이는 우리의 페르소나다. 기동이는 기수가 탭댄스에 매료되어 있다는 걸 꽤나 빨리 알아차린다. 광국의 말에 분노하기도 하고, 댄스팀의 앞날이 잘 되기를 빌어주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등장하여 어떤 이벤트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시종일관 옆에서 지켜보고 멀리서 훔쳐본다.

 나는 영화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건 어떤 감정이어도 좋고, 어떤 메시지여도 좋다. 단 하나의 명장면이어도 좋다. 나는 <스윙키즈>가 우리에게 황기동이라는 아이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안타깝게도 현재 진행형이다. 대한민국은 대외적으로 북한과 휴전상태고, 대내적으로는 우리끼리의 크고 작은 대립이 있다. 물론 모든 이념이 통일되어야 건강한 사회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크고 작은 트라우마로 병들어있다. IMF, 취업난, 학벌사회 등으로 말이다.

 스윙댄스팀이 무대에서 멋지게 춤을 춰냈을 때, 무대의 막이 내리려고 할 때, 모든 사람들이 돌아갔을 때, 우리는 기동이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동이가 무엇을 보고 배울지 마음 아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동이어야 할 것이다. 스윙키즈팀은 그렇게 춤을 추고 떠났지만 우리는 이 영화가 끝났어도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향하여

 자유롭지 않은 적이 없다. 우리 아빠는 머리가 길다고 나라의 간섭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나는 15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꽤나 자유로웠다. 다음카페를 만 14세가 넘으면 개설할 수 있었으니, 처음으로 내 개인 카페를 만들었을 때 나는 다 큰 느낌을 받았다. 이제 어느 사이트에 가입해도 부모님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됐으니 정말 다 큰 느낌을 받았다! 고등학생 때도 야자를 하지 않았으니 자유로웠다. 대학 원서도 내 마음대로 썼고, 다 떨어져서 재수를 할 때도 난 자유로웠다. 대학에 와서도 난 자유로웠다. 뭐랄까, 돌이켜보면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나라와 이념과 성별이 다른 네 명이 만나서 하는 일이 '탭댄스'다. 탭댄스는 춤이지만 소리가 난다.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자유에 대한 열망이다. 아무리 몰래 하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다. 우리는 자유롭다. 하지만 더 자유롭고 싶다. 성별에 대한 차별로부터, 금전적인 한계로부터, 무력함으로부터, 어릴 때 마음에 콕 박혀버린 트라우마로부터. 가만히 몸짓한다고 생각하지만 크게 크게 소리가 난다. 우리는 더 자유롭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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