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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박 Feb 24. 2020

겨울에는 눈이 와야죠

 차가운 바람이 불고 눈이 펑펑 내렸다. 이번 겨울은 유독 춥지 않아서 견딜만했다. 이렇게 봄이 오나 싶었는데, 역시 그냥 지나갈 리가 없다. 오랜만에 겨울 같은 겨울날이었다.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을 봤다. 예전에는 밤을 새우고 영화를 봐도 졸지 않았는데, 요즘엔 앉기만 하면 눈이 감긴다. 졸고 싶지 않아서 설탕을 잔뜩 넣은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아마 커피를 안 마셨어도 졸지 않았을 거다. 재밌고 따스하다. 많이 울었다.


 영화를 다 보고 아이스 녹차라떼를 마셨다. 맛이 없었다. 이 카페의 음료는 기가 막히게 맛이 없다는 걸 알면서 왔다. 특히 아이스 녹차라떼는 엉망인데 또 시켰다. 반도 못 마셨다. 그래도 이 동네에서 이 사람이랑 함께 카페에 간다면 이 곳이 제일 좋다.

 당신과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일상만큼이나 쉽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와는 가벼운 이야기조차 무거운 볼링공 같아서 대화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또랑에 빠지기 일쑤다. 모두 이런 '당신'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당신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당연한 듯 보여도, 사실은 우리 사이에 쑥스러운 노력과 수많은 솔직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됐다. 눈 내리는 오늘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고 반갑고 고마운 이유는 당신과 나처럼 이대로 겨울을 보낼 수 없다는 자연의 의지와 노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봄에는 꽃이 필 것이다. 이번 여름에는 나시를 입고 돌아다니고 싶다. 가을이 오면 다시 슬퍼질 테고, 겨울에는 눈이 올 것이다. 꽃, 나시, 슬픔, 눈 중 당연한 것은 없다. 그래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것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가장 변하기 쉬운 존재지만, 변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당신도 있다. 나도 그렇다. 나아지려고 노력할 테지만, 변함은 없기를 소망한다. 눈이 안 내리는 겨울이 오더라도 당신을 사랑한다.




* 100일 동안 '하루에 한 개'의 글을 쓰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이 글은 45번째 글이다. 갑자기 눈이 펑펑 내렸던 2020년 2월 17일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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