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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박 Apr 21. 2023

3주 만에 퇴사선언

구남친같은 회사

오늘이야말로...! 퇴사를 말할 거야.


회사 앞 스타벅스에서 바닐라라떼를 포장했다. 우리 과장님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다. 이걸 드리면서 "저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예정이었다. 입사한 지 3주 만이었다.


우리 팀은 8시 출근, 다른 팀은 재택이거나 9시 출근이다. 사무실에 과장님과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30분 남짓. 아침에 내가 드린 바닐라라떼를 손에 꼭 쥐고 있는 과장님께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 과장님"

"네!?" (그녀의 "네"는 항상 경쾌하고 기분이 좋다)

"저 퇴사하고 싶습니다"

"네?!" (이때의 "네"는 경쾌하진 않았다)

"제가 요즘 잠도 못 자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고, 앞으로도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러 가고 싶습니다"

"잠을 못 잔다고요? 그건 큰일인데..."


우리는 전 회사 동료였다. 나는 과장님을 좋아했고 존경했다. 전 회사를 나보다 6개월 먼저 떠난 그녀는 어느 날 카카오톡으로 '퇴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바로 일하는 건 싫지?'라고 물어봤다. 퇴사한 지 2주 만이었다. 그녀와 오랜 시간 통화를 한 후, 그녀가 제안한 자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에게 우리 과장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둘이 같이 있으면 사막에서도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이 말하는 곳이라면 '일단 가보자'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3주 만에 퇴사를 결심한 첫 번째 이유는 도저히 이 일을 사랑, 아니 좋아하기도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밥벌이는 다 그런 것이므로 그것까지는 어떻게든 참아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전 회사를 퇴사하면서 다짐했던 세 가지를 모두 지킬 수 없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1. 돈 관련된 일은 하지 말자 -> 경리임

2. 법 공부해야 하는 일은 하지 말자 -> 법 만드는 연구소임

3. 자율성이 없는 곳에서는 일하지 말자 -> 내가 회사 만들지 않고는 불가능함


회사란 어느 면에서는 전 애인과 같다. 지긋지긋하지만 나의 밑바닥을 보게 해 준다. 나 이렇게 구리고 별로인 사람이었구나를 깨닫게 해준다. 내가 뭘 좋아하고, 나에게 뭐가 중요하며, 앞으로는 절대 이런 새끼만은 안 만나야지 다짐하게 해준다. 그렇다... 나는 아직 경리와 헤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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