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한 달간, 프렌치들의 긴 휴가가 끝나고 주말 벼룩 시장에도 다시 활기가 돌았다.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도 소비 패턴이 보수적이다. 의류 소비는 영국/이태리의 절반 수준이고, 호텔/레스토랑 소비도 유럽 평균보다 20% 이상 낮고, 스페인/독일 대비 3배 이상 낮은 규모로 조사됐다 (2022년, KOTRA).
아니나 다를까, 있는 물건을 고쳐 쓰고, 나눠 쓰고, 중고를 사고 파는 문화가 있다. 동네마다 고가구 등 예전 물건을 파는 곳도 있고, 벼룩 시장이 곳곳에서 열리고, 그곳엔 꽤 많은 판매자와 소비자가 늘 정기적으로 모인다. 주말 아침부터 벼룩 시장에 가서 물건을 전시부터 하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누렇게 색이 바랜 엽서, 먼지 때가 꽤 쌓인 옛날 물병, 은 촛대, 할머니의 할머니부터 썼을 것 같은 서랍장. 도대체 누가 살까 싶은 물건들도 꽤 있지만, 판매자들은 사뭇 진지하고 또 친근하다. 탁자 위에 천을 깔고 각자가 가져온 물건을 신중하게 배치한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은 대로, 무심코 놓기도 하고 규칙을 갖고 착착 잘 보이게 쌓아두기도 한다. 누군가 사주면 좋지만, 안 사주더라도 나름의 재미가 있어 보인다. 물건을 챙겨 나와서 바지런히 전시를 하고, 손님과 인사도 하고 대화도 하고, 옆 가게 사람과 체스도 둔다. 여기서 물건을 팔아서 한 몫 잡아야겠다 보단, 주말을 나름의 재미있게 보내기 위한 소일거리로 보인다.
몇 년 전, 왜 사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 게 아닐텐데 왜 살아가고 있는지, 무얼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방황하던 나를 지켜보던 선배가 새벽에 시장을 가보고, 새벽 첫 차를 타고 사람들을 관찰하라고 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보라고.
치열하게 살지 않아서 그런 고민이 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열심히 살다 보면, 의미가 찾아진다고 말이다.
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촘촘하게 살고 있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자기 계발에 정진하고, 생업의 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배부른 소리는 그만 해야지, 비핀의식 없이 쉽게 감화되는 스타일이던 나도 개미처럼 경주마처럼 시간을 아껴쓰고 부단히 달렸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 지는 모르는 채 일단 부지런히 전속력으로 가는 것처럼 부질없고 멍청한 일이 없다.
첫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면, 당연히 타야 한다. 그 때, 나의 부귀영화로 향하는 길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싹 없애겠다는 비장함, 누구라도 나를 건드리면 폭파시켜버리겠다는 썩은 마음, 나보다 잘 하는 것들에 대한 질투, 이런 것들로부터 좀 벗어났었어야 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데, 자꾸 빨리 열심히 가라고 하니. 속도가 마음같지 않으면 비뚫어지기 쉽상이었다.
누가 사주든 안 사주든,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닦고 하나씩 차분히 전시한다는 마음으로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을. 하나도 못 팔고 돌아가더라도. 굳이 닦은 것을 다시 박스에 담아 다음 주에 또 늘어놓는 일이 있더라도, 쌓고 푸는 과정을 좀 더 즐겼다면 좋았을 것을.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걸 정말 원하는 것인지 스스로에 대해 더 생각을 했다면 좋았을 것을. 그런 “과거에 했다면 좋았을 것을“ 생각해보는 그런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