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에서 인종차별을 했다고, 1시간 수업 대신 외딴 방에 분리 조치를 당했다. 학교에서 알려온 이 이메일을 받고는 솔찬히 놀랐다.
우리 아이가? 프랑스에서 소수인 우리 같은 동양인이? 대체 누구를?
알고 보니, 케냐에서 온 샘이란 아이가 계속 아이 의자를 발로 툭툭 차고, 끊임없이 큰 목소리로 말을 하고, 그래도 반 아이들이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자, 더 크게 다른 친구들이 불편해 하더라도 떠들었다고 한다. 그 광경을 못 참고, 아이는 샘에게 조용히 하라고, 너희 나라로 가버리라고. 했다고 한다.
1분 남짓으로 추정되는 이 사실 관계를 다 파악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아이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별 말을 안 했고, 학교는 아이가 인종차별적 문장을 썼다는 것 외에는 명확한 상황 설명이 없었다. 학교와 몇 번의 이메일이 오고 갔고, 남편이 아이를 붙잡고 차근차근 물어봤다.
아이에게서 다 듣고 난 후, 아이가 잘못한 부분이 있어서, 절대로 그러면 안된다고 따끔하게 일러줬고, 아이는 펑펑 울면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했다.
나 역시, 그 아이 엄마를 따로 만나서 우리 아이가 잘못한 점에 대해서 이렇게 혼을 냈고,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헬렌이란 이름을 가진 샘의 엄마는 애들이 크면서 그럴 수 있다고 희미하게 웃어주기까지 했다.
아이를 다잡는 것도 내 할 일이었지만, 학교에도 집요하게 따져 물었다.
세계 10대 국제 학교로 손꼽히는 곳이지만, 대답은 허술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정확한 이야기를 안 해서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아이가 상대방이 들으면 기분 나쁜 말을 했다는 것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으니, 인종차별을 했다고 판단할 수 있고 그래서 벌을 줬다는 것이다.
이렇게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정신을 다잡고 어려운 단어 위주로 골라 정식으로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인종 차별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판단에 대한 매뉴얼은 있는 것인가? 있으면 그걸 토대로 다음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을 하겠다,
이런 일이 왜 발생했는지 학교는 알고 있는가? 샘이라는 아이로 인해 다른 학급 아이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생기는지 알고 있는 것인가, 이 아이들이 이렇게 언쟁을 벌인 것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나의 집요한 질문들은 하등 쓸모가 없었다. 학교의 답은 단순했다.
"인종차별에 관한 매뉴얼은 없다. 당한 아이가 울면서 들은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전했고, 아이는 본인의 말을 인정했고, 샘은 아이의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인종차별이다. 이 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인종차별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동양인 우리 아이가 다른 나라 아이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도 역시 인종차별을 당한 것인가? 역으로 물었다. 매번 그렇지 않고, 들은 아이가 기분이 나쁘면 인종 차별이라고 한다.
8번에 걸쳐 오고 간 이메일을 마무리를 하면서, 나는 나도 아이를 잘 가르치겠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무슨 일이 왜 벌어졌는지 정확히 먼저 파악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대문자에 굵은 글씨로 써서 보냈다.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으나, 감정이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진 않은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아이 학교의 학년 주임 선생님은 내 눈을 쳐다보지 않고 나를 투명인간 취급 한다.
왜일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한 편으로는 내가 무식하게 몰라서 미리 가르치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정황 파악을 안 하고 대뜸 인정했다고 벌을 주는 학교가 원망스럽기도 해서, 한 동안 기분이 꽤 나빴다. 그러다가, 내가 금발의 유럽인이더라도 이렇게 대했을까, 예상치도 못하게 동양 여자가 죽자고 달려들어서 꼬치꼬치 캐물으니 귀찮았나, 라는 생각이 미치자 무력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후진 차별이 인종차별이다.
불가항력이고, 되돌릴 수도 없으며, 편견의 집약이다.
슬프게, 직관적이기도 하다. 딱 보면, 안다.
우리는 유럽 소도시 여행을 좋아한다. 다니다 보면, 살면서 동양인을 많이 못 만나본 유럽인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생각보다 자주 물어본다.
(유럽인) 어디에서 왔니?
(나) 파리에서 왔어.
여기서부터 반응이 갈린다.
(유럽인 1번 반응) (그걸 물어본 것이 아닌데) 그 전에는 어디에서 산 거냐?
(유럽인 2번 반응) 아니, 그게 아니라, 원래(Originally) 어디 살았냐고?
그게 왜 궁금할까. 나는 네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데.
(나) 대한민국에서 왔다.
(유럽인) 그렇구나,
(간혹가다 눈치없는 유럽인은 더 묻는다) 그럼, 넌 몇 개 국어 하니? 영어 말고. 스페인어? 독어?
(나) 중국어 할 줄 알아 (설마 중국어로 물어보진 않겠지)
(유럽인) 그렇구나. (대화 종료. 자동 단절)
다른 유럽 도시에서 왔다고 했는데, 굳이 캐묻는 것. 유럽인들 대다수가 신사적이고 좋은 사람들일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다, 사람 나름이다. 어디를 가든지 말이다. 앞으로는 "왜 물어보는데?"라고 웃으면서 되물을 요량이다.
지인의 5살 아이가 파리 시내 놀이터에서 다른 프렌치 아이들이 뱉는 침을 맞고, 중국인이라는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도 프렌치야, 라고 명료하게 얘기해 줬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이 그걸 찰떡같이 알아들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이 이야기를 듣던 한 엄마는 프렌치들에게는 서운한 일이 있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예를 들어, 나를 위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저않고 '데가쥬 (꺼져)'를 크게 외쳐야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고 한다. 비슷한 조언은 여기저기서 들었다. 코로나 이후로 집시들이 많이 철수해서, 이제는 파리 시내 강도들은 더 위험하다고 한다. 집시들은 한 두 명이 다가와서 지갑만 뺏고 달아났는데, 이제는 여러 명이 우르르 에워싸고 칼을 들이밀면서 강도짓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아무리 무서워도 한국어라도 소리를 크게 지르고 화를 크게 내서 내가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가로등만 없어도 그 길은 걸어가지 않는 쫄보라서, 나는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게 조심하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무섭다.
지금까지의 나는 왠만하면 내가 참고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은연중에 교육을 해왔다. 완전히 잘못 되었다.
감정을 섞지 않고 따져 물을 것은 논리적으로 기술적으로 잘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와 막말도 참았었고, 성희롱도 참았었다. 상사의 막말을 녹음해서 직장내 갑질이 불거져 나올 때, 속이 시원했다. 나만 당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소시민적 공감도 했다. 한 편으로는 내가 선봉에 설 수 있었는데, 피하기만 한 나는 현명하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도 했다.
#Me too 운동이 일어날 때는, 와, 저 사람들 진짜 용감하다 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 힘도 보태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다가 다시 개미같이 소시민적 삶을 이어갔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소수이자 이방인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 그렇다. 불특정 다수와 말만 놓고 극한으로 싸우는 것은 인생 낭비이다. 하지만, 적어도 옳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입 다물고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적절한 시점에, 현명한 방법으로 나의 권리를 찾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아이에게도 가르쳐야겠다.